합성 사진 만들었어도 보관만 했다면 처벌 어려워…피해자들 “우리가 유포 증거까지 찾아내야 하나” 답답
그런데 최근 매우 특이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한 여성이 자신의 나체를 지인의 태블릿 PC에서 발견했는데 당연히 촬영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런데 몰카 사건이라고 할 순 없는 게 엄밀히 ‘자신의 나체 사진’도 아니다. ‘합성 사진’이기 때문이다. 바로 최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화제가 된 과거 함께 영화관에서 아르바이트를 한 남성 A 씨가 여성 지인들의 합성 사진을 제작했다는 폭로 글이다.
이 글을 올린 20대 직장인 여성 B 씨는 A 씨에 대해 “사교성이 좋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평판도 좋았다. 동료와 잘 지내며 나와도 6년째 연락하고 지낼 정도로 친한 사이”라고 소개했다. 문제는 과거 영화관에서 함께 아르바이트를 한 지인으로부터 “A 씨 태블릿 PC에 네 사진을 포함한 동료의 얼굴과 신체 등이 합성된 사진이 있다”는 얘기를 건네 들으면서 시작됐다. 확인 결과 A 씨의 태블릿 PC에서 무려 200여 장의 사진이 발견됐는데 여기에는 글을 올린 B 씨, 그리고 함께 아르바이트를 했던 여성들, 그리고 A 씨와 같은 대학교 학생들과 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들의 사진들이었다.
문제의 사진은 성적 수치심을 주는 다양한 모습이었는데 모두 실제로 찍은 것은 아니다. 몰래 촬영한 몰카나 상호 동의하에 촬영한 나체 사진이 아닌, 합성이었다. B 씨는 “합성된 사진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정교했다. 변호사도 보고 놀랐다”고 밝혔다.
이런 합성 사진을 만들기 위해서는 지인들의 사진이 필요하다. A 씨는 지인들이 SNS(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을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B 씨는 이미 자신이 3년 전에 지운 사진까지 합성에 활용됐다며 A 씨가 오랜 기간 지인들의 사진을 꾸준히 모아 합성에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확보한 지인들의 사진에 다양한 노출 사진을 합성해 온 것으로 보인다.
B 씨에 따르면 A 씨는 국립대 출신으로 최근 대기업에 취업했다고 한다. 그가 이렇게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데 반해 자신은 피해 사실을 인지한 뒤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로 정신적 충격이 매우 큰 상태로 불면증까지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결국 B 씨는 A 씨를 허위영상물 제작 혐의로 고소했고 경찰이 수사에 돌입해 A 씨의 휴대전화와 클라우드, PC 등을 압수수색했다.
문제는 처벌 가능 여부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의2(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에 따르면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 사람의 얼굴·신체 또는 음성을 대상으로 한 촬영물·영상물 또는 음성물을 대상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형태로 편집·합성 또는 가공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나마도 ‘텔레그램 n번방’ 사건으로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면서 2020년 3월에서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돼 허위영상물 등의 반포 등을 다루는 처벌 조항이 신설된 것이다.
문제는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라는 단서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합성 사진은 유포 목적이 아니라 자기 위로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사법 처벌이 어려울 수 있다. 피해자 입장에선 유포까지 이뤄졌다면 훨씬 더 큰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터라 유포가 되지 않았다면 크게 다행이지만, 이 경우 ‘반포할 목적’을 입증할 방법이 없어 가해자도 처벌을 피해가기 때문이다.
B 씨는 폭로 글에서 “피해 사실만으로도 정신적 충격이 큰 데, 피해자가 유포하려 했다는 증거까지 찾아내야 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며 “허위영상물을 소지·시청한 자에 대해서도 처벌 규정이 마련돼 A 씨가 엄중한 처벌을 받길 바란다”고 밝혔다.
여전히 사회 변화, 범죄의 변화에 사법 체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합성사진 관련 성범죄는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계속돼 왔지만 당시만 해도 합성 여부가 쉽게 드러나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딥페이크 관련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이제는 합성 여부 구분이 힘든 수준까지 합성 사진 제작되고 있다.
이런 까닭에 2018년 즈음부터 딥페이크 성범죄가 급증했지만 2020년 3월까지는 관련법이 미비해 가해자 처벌조차 힘들었다. 2020년 3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개정되면서 2020년 9월에서야 법원 판결문에도 딥페이크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다.
게다가 ‘반포 등을 할 목적으로’라는 단서로 인해 피해자가 딥페이크로 정교하게 합성된 자신의 사진을 발견해 경찰에 고소해도 사법 처벌은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행여 유포가 이뤄졌을지라도 다크웹이나 텔레그램과 같은 SNS를 통해 은밀히 퍼져나갔다면 피해 사실 파악조차 어려울 수 있다.
전동선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