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 국내 선수 약세 500m서 1위 이력…얼음공주? 손세원 감독 “감정 풍부한 선수”
약체로 평가된 대표팀에서 가장 큰 성과를 거둔 선수는 쇼트트랙 여왕 최민정이다. 최민정은 대회 일정 초반 혼성 계주와 여자 500m 종목에서 고배를 마셨다.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효자종목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하지만 최민정은 마음을 다잡았다. 남은 종목인 1000m(은), 3000m 계주(은), 1500m(금)에서 모두 메달을 따내며 한국 선수단 중 가장 많은 메달을 획득했다. 역대 한국인 선수의 동계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기록이다.
#역사상 최고의 스케이터
금메달 1개, 은메달 2개를 딴 최민정은 경기 내용으로도 쇼트트랙 여왕의 면모를 보여줬다. 1000m와 3000m 계주에선 전략적으로 후방에 위치하다 경기 막판 선두권으로 치고 나가는 모습으로 시상대에 올랐다. 1500m에서는 초반부터 레이스를 이끄는 운영 능력을 보였다. 다재다능한 스케이터로서 능력을 유감없이 과시한 것이다.
최민정은 이번 대회를 통해 전이경-진선유-박승희 등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 쇼트트랙 계보에도 확실히 이름을 남겼다. 최민정은 지난 평창 대회를 포함 올림픽 메달 5개(금3, 은2)를 획득했다. 이는 전이경, 박승희 등 선배들과 같은 최다 메달 기록이다. 이들 모두 당대 최고 선수로 평가받던 인물들이다. 차기 대회 참가가 유력한 최민정은 새로운 기록도 작성할 것으로 보인다.
최민정은 '역대 최고의 쇼트트랙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폭발적인 스피드, 부드러운 추월 기술, 지치지 않는 체력을 겸비했다. 단거리 또는 장거리에 특화된 다수 선수들과 달리 최민정은 모든 종목에서 두각을 드러낸다. 유독 한국 선수들이 약세를 보이는 500m에서도 세계선수권 1위 이력을 가지고 있다.
최민정 소속팀 성남시청의 손세원 감독은 '역대 최강'이라는 평가에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최민정이 과거 선배들과 비교가 자주 되는데 활동 시기가 다르기에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며 "그런 선배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최민정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린 시절부터 최민정은 선배들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해왔다. 선배들의 장점을 자기 것으로 흡수하는 능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했다.
#역경 딛고 이뤄낸 성과
최민정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남다른 가슴앓이를 했다. 오랜 기간 동료로 활약한 심석희에 대한 폭로가 나오면서다. 지난 10월 심석희가 최민정 등 동료들에 대한 비방을 해왔던 것이 알려졌다. 승부조작 의혹도 불거졌다. 2021-2022시즌 직전에 터진 터라 타격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빙상인들은 특히 최민정의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 관계자는 "심석희가 폭행, 성폭행 피해를 주장하며 재판까지 치르던 당시 최민정은 증인으로 출석하며 도왔던 선수다. 배신감이 들지 않았겠나"라며 "증인 출석 같은 일이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린 선수로서 향후 활동까지 고려하면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어려움은 최민정에게 일종의 '견제'였다는 해석이 이어졌다. 최민정은 고교 졸업 이후 사립학교인 연세대 진학과 함께 실업팀 입단을 결정했다. 한국체육대학 세력의 강한 견제를 받는 인물로 지목된 것이다. 빙상계 관계자는 "실제 최민정이 아닌 다른 선수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하려는 시도가 있지 않았나. 본인으로선 견디기 힘든 상황이 많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최민정은 또 이번 시즌 월드컵을 치르던 중 부상까지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다.
최민정은 주니어 세계선수권에 모습을 드러낸 2014년부터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엔 쉽지 않은 성장 과정을 거쳤다. 그는 여섯 살에 겨울방학 특강에서 스케이트를 접한 이후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그 배경에는 아버지의 적극적인 격려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최민정이 열 살이 될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후 어머니의 헌신 속에 세계를 호령하는 스케이터로 거듭났다. 손세원 감독은 "최민정도 대단한 선수지만 나는 최민정의 어머니를 더 존경한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민정이가 지금의 선수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어려운 길을 걸었기에 민정이가 더 강인한 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스케이팅 기술도 좋지만 정신력이 강한 선수다. 내가 본 가장 노력을 많이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최민정은 악명 높은 진천선수촌 체력훈련에서도 남자 선수 못지않은 체력을 자랑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학생 시절 경기도 성남에서 거주하던 그는 훈련장 인근 서울 방이동에 거처를 마련해 훈련에 임했다. 새벽 훈련에 늦지 않고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진천선수촌 새벽훈련 이후 연세대까지 약 100km 거리를 직접 운전해 오가며 학업과 훈련을 병행했다.
#'얼음 공주' 아닌 '따뜻한 공주'
최민정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 탓에 '얼음공주'로 불리기도 한다. 경기 전후 표정 변화가 많지 않다. 흔들림 없이 침착하게 상대를 추월하는 경기력과 겹쳐 팬들이 즐겨 부르는 별명이다. 그렇기에 이번 올림픽에서 1000m 은메달 획득 이후 눈물을 흘리거나 1500m 금메달을 따고 유독 활짝 웃는 모습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일상생활에서 최민정도 빙판에서 모습처럼 차분하다. 국제빙상연맹 홈페이지에 공개된 최민정의 프로필에 적힌 취미는 독서다. 동료들이 장난을 걸어와도 옅은 미소로 응답한다. 대학생활도 대부분 홀로 조용히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대표팀에서 최민정을 지도한 바 있는 여준형 코치는 "민정이는 보이는 것처럼 빙판에서 냉정하게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다. 훈련 때도 자신의 의사를 정확히 표현한다. 똑똑한 선수"라면서도 "운동을 할 때가 아니면 그 나이 아이들과 다를 것이 없다. 잘 웃기도 하고 여린 면도 많다"고 설명했다.
손세원 감독은 다른 견해를 전했다. 그는 "나에게 민정이는 얼음공주가 아니라 '따뜻한 공주'다. 경기장 밖에서는 감정이 풍부한 선수"라며 "잘 웃기도 하고 자신에 대한 표현을 할 줄 아는 선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선수생활을 잘 이어나갈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