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넘는 상영시간 베드신으로 채워…10년 전 구상 장철수 감독 배우 못 찾아 제작 지연도
2월 23일 개봉한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제작 표범영화사)에 붙고 있는 이색적인 평가다. 9년여에 걸친 제작 과정에서 꽤 높은 수위의 노출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주목받은 영화는 개봉 직전 열린 시사회를 통해 소문대로 파격적인 수위의 베드신이 공개돼 화제를 뿌리고 있다. 특히 상영시간 2시간 26분 대부분을 두 남녀의 과감한 노출을 더한 대담한 베드신으로 채워 ‘39금 영화’라는 수식어까지 붙었다. 일단 호기심을 자극하는 데는 성공한 분위기다. 다만 이런 관심이 실제 관객 동원으로 이어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최근 오미크론 변이에 따른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세로 극장가는 더 깊은 침체기로 빠져들고 있기 때문이다.
#취사병과 사단장 아내의 ‘위험한 관계’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모범사병으로 발탁돼 사단장의 사택에 취사병으로 들어간 남자 ‘무광(연우진 분)’과 그를 유혹하는 사단장의 젊은 아내 ‘수련(지안 분)’의 이야기다. 아내와 자녀를 위해 꼭 성공해야 하는 목표를 가진 무광은 수련의 유혹에 빠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면서 이내 위험한 관계를 시작한다. 영화는 금기된 사랑과 욕망에 휘말리는 남녀의 이야기를 거침없는 표현으로 그려냈다.
영화는 동명의 소설이 원작이다. 노벨문학상 후보로 꼽히는 중국의 반체제 작가 옌롄커가 2005년 출간한 원작은 마오쩌둥 사상을 모욕했다는 이유로 발표 직후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는 등 유명세를 탔다. 마오쩌둥의 정치 구호인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인간의 욕망을 일컫는 구호로 인용했다는 이유로 거센 비난을 받았다. 동시에 두 남녀의 노골적인 성 묘사로 인해 화제가 됐다. 영화는 정치나 사회 풍자보다 욕망에 빠져드는 남녀가 갖는 다양한 감정에 주목한다. 제작진은 각색을 거듭한 끝에 극의 배경을 중국이 아닌 1970년대 한 사회주의 국가로 설정했다. 보는 이들이 얼핏 북한을 떠올릴 수 있지만 극 중 직접적인 언급은 없다.
사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영화 기획 단계부터 여러 우여곡절을 겪었다. 연출을 맡은 장철수 감독이 영화화를 처음 구상한 시기가 벌써 10년 전이다. 장 감독은 2010년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로 데뷔했다. 이 작품에서 성적인 학대 묘사와 잔혹한 방식의 복수 등으로 논란과 화제를 동시에 일으킨 그는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일약 주목받는 연출자로 떠올랐다.
차기작에 관심이 집중된 당시 두 번째 장편 연출작으로 구상한 영화가 바로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였다. “누가 지하철에서 이 책을 보다가 너무 야해서 황급히 덮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하는 생각으로 펼쳤던 책에는 남녀 사이에 겪을 수 있는 거의 모든 감정이 녹아있었다”라는 게 장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표현 수위가 워낙 높은 탓에 선뜻 출연하려는 배우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기획 초반 젊은 스타 배우가 출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내 불발되자 기약 없이 제작이 연기됐다. 그 사이 장철수 감독은 김수현과 손잡고 2013년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연출해 695만 관객 동원에 성공했다. 이후 9년여의 절치부심 끝에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내놓았다. “사랑에 가장 열정적인 젊을 때의 멜로영화를 찍고 싶었다”는 이유로 고집스럽게 매달린 결과다.
#전라 노출 파격적인 수위…작품성은?
제작진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를 통해 욕망으로 시작한 처절한 사랑, 그 끝에 맞는 공허한 민낯을 보이고자 했다고 밝혔다. 이에 주인공인 연우진과 지안은 그야말로 ‘온몸’을 던졌다. 촬영하는 동안 “매 순간 어렵고 힘들어 동료를 넘어 전우애가 생겼다”라고 말할 정도다. 근래 몇 년간 개봉한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의 베드신을 불사했다.
연우진은 사단장 아내의 유혹을 받는 병사 무광 역을 맡아 그동안 TV 드라마에서 보여준 다정한 이미지를 단번에 부순다. 극 중 가족을 건사하기 위해 사단장 사택의 취사병이 되지만, 사택에 갇혀 지내는 수련을 만나고부터는 운명이 달라진다. 수련의 강압적인 요구로 관계를 시작하지만 점차 서로에게 빠져들면서 파국을 맞는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특히 상업영화 러닝타임으로는 다소 긴 분량인 2시간 26분 동안 두 사람은 극의 주요 배경인 사택 곳곳을 누비면서 금지된 관계를 이어간다. 극이 진행될수록 베드신의 수위가 높아지고, 급기야 체모 노출까지 감행한다.
연우진이 이렇게 자신을 쏟아부을 수 있던 데는 이 영화에 갖는 애착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그가 처음 출연을 결정한 때가 2014년. 차일피일 제작이 연기되는 동안에도 굳건히 자리를 지킨 끝에 2020년에 촬영에 들어갔다. 다시 2년여가 흘러 개봉하기까지 무려 8년을 이 작품과 함께 해왔다.
“인간의 본성과 위태로움을 보여주는 점에 끌렸다”는 연우진은 배우로서도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였다. 물론 고수위 베드신을 표현하는 일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자신을 설득하는 일도 중요했다. 영화를 처음 공개하는 시사회 자리에서 그는 “끝없는 쾌락과 욕망에 잠식된 인물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선 파격적이고 과감한 정사 장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수련 역을 맡은 지안의 대담한 도전 역시 지나치긴 어렵다. 물론 캐릭터를 소화하는 실력이나 작품에 얼마나 녹아들었는지에서는 평가가 엇갈리지만 오랜 고민 끝에 감독을 믿고 새로운 시도를 감행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덕분에 2003년 전국춘향선발대회를 통해 연예계에 입문한 이후 2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이름을 확실히 알리고 있다.
이제 평가는 관객의 몫으로 남았다. 현재 극장가에는 관객의 관심을 끄는 이렇다 할 영화가 없다. 한국 영화, 외화 할 것 없이 침체기를 겪고 있다. 파격적인 노출이 꼭 관객 동원을 보장하는 흥행 코드는 아니지만, 조용한 극장가에 입소문을 타는 ‘문제적 작품’이 등장했다는 사실만큼은 반갑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