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장에 투견장 추정 시설물까지…관광객 등 수차례 민원에도 보령시 “학대 모르겠다, 고발 조치할 것”
오서산은 충청남도 3대 명산 중 하나로 ‘서해의 등대’로 불린다. 가을엔 억새풀로 성황을 이뤄 많은 관광객에게 큰 인기를 얻는 곳이다. 이곳 인근에 있는 중부산림청 산하 오서산자연휴양림은 오서산과 명대계곡이 어우러져 있어 이용객들이 자주 찾는 곳 중 하나다. 그런데 휴양림 진입로 인근에 개농장이 있다. 등산객과 관광객은 물론 보령시 시민들도 “유명 관광지의 명성에 먹칠을 한다”며 보령시농업기술센터 측에 수차례 민원을 넣었음에도 개선이 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2일 오전 10시 10분 기자가 휴양림 진입로 인근에 이르자 개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날 농장주 허락 하에 바라본 개농장 상황은 심각했다. 뜬장에는 배설물이 굳은 채 바닥을 뒤덮었으며, 개들에게 먹였던 음식물 쓰레기는 드럼통에 얼어붙은 채 쌓여 있었다. 또 사육 중인 250여 마리 개들 중 일부는 다리를 절거나 한쪽 눈이 뿌옇게 흐려진 상태였다. 동물권단체 케어의 산하기관인 ‘와치독’ 강영교 대표는 “동물보호법시행규칙에 전부 위반되는 곳”이라며 분개했다.
동물보호법 제8조(동물학대 등의 금지) 제4항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령으로 정하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금지돼 있다. 여기서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는 동물보호법 시행규칙에 자세히 언급돼 있다. 동물보호법 시행규칙 제4조 제6항 제1호 ‘사람의 생명·신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나 재산상의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다른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에게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제2호 ‘동물의 습성 또는 사육환경 등의 부득이한 사유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물을 혹서·혹한 등의 환경에 방치하여 신체적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는 정당한 사유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라고 명시돼 있다.
해당 개농장에선 투견장으로 추정되는 동그란 형태의 장도 3개 발견됐다. 옆에는 핏불 테리어로 보이는 중형견이 묶여 있었다. 핏불 테리어는 오랫동안 투견으로 길들여져 온 견종으로 알려져 있다. 농장주 박 아무개 씨는 “(나는) 개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서 그런 짓(투견 행위)은 안 한다”며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3개의 장을 본 동물권단체 케어 관계자는 “전형적인 투견장”이라고 평가했다.
동물보호법 제8조 제2항 제3호에 따르면 도박·광고·오락·유흥 등의 목적으로 동물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투견시합의 경우 대체로 인적이 드문 늦은 밤 비밀리에 이뤄지기 때문에 현장 검거가 쉽지 않다. 강영교 대표는 "투견시합이 이뤄지는 동네의 주민들도 (시합이) 언제 열리는지 잘 알지 못한다"며 "시합 진행자, 참가자, 도박 행위자들만 비공식적으로 알고 몰래 진행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농장주는 허가를 받지 않은 채 번식장을 만들어 동물생산업자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보령시농업기술센터 측이 해당 개농장에 대해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개농장 위법사항에 ‘동물생산업 미허가 영업’이라고 돼 있다. 불법 도살이 자행된 것으로도 보인다. 농장주는 이날 “(도살한 개를) 내가 먹었다”고 되레 기자에게 호통치며 불법 도살 행위를 시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 개농장은 2009년부터 보령시 시민들에 의해 꾸준히 문제가 제기됐던 곳이다. 이들은 특히 유명 휴양림 진입로에서 수년간 대놓고 동물학대가 발생했는데 지금까지 이를 지자체가 방관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보령시에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는 목격자 위 아무개 씨는 “가족들과 (휴양림 근처) 계곡에 놀러 왔다가 농장을 보고 충격을 금치 못했다. 지붕 없이 눈·비 맞는 아이들(개)도 있어 (뜬장에) 비닐이라도 씌워주고 싶었지만 사유지여서 민원을 넣어왔던 것”이라며 “보령시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에선 이미 유명한 곳으로서 2009년부터 계속 언급돼 왔는데 왜 아직까지 폐쇄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보령시농업기술센터에서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개농장에 대해 2018년부터 △축산과(동물보호법 위반) △건설과(산 무단점유 원상회복 명령) △도시재생과(무허가 개발행위) △환경보호과(가축분뇨배출시설 미신고) △산림공원과(산지복구명령) 등에서 고발 조치가 이뤄졌다.
개농장이 운영되는 일부 땅은 국유지다. 실제 부동산 등기를 확인한 결과, 개농장으로 쓰이고 있는 △청라면 장현리 92 △청라면 장현리 산51-4 △청라면 장현리 산54-1 △청라면 장현리 산119 모두 농장주 소유의 토지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청라면 장현리 산119는 국유지였으며, 나머지 토지는 한산이씨 종중 명의다. 농장주는 2020년 국유지 불법 점거로 이미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다.
보령시농업기술센터 축산과 관계자는 “농장주가 동물 판매 행위로 수익을 얻는데 지금 당장 폐쇄해 수익이 끊기면 어떡하냐”고 되물으면서 “솔직히 학대 행위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국민신고와 민원 전화 등 학대 관련 민원이 많아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고발 조치하겠다”고 덧붙였다.
오서산자연휴양림과 산림청도 현 상황에서 조치를 취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을 보인다. 오서산자연휴양림 관계자는 “인근에 계곡도 있고, 오서산 등산로 코스가 5군데나 있어 (목격자들이 많아) 지속적으로 민원이 제기됐지만 휴양림 소유의 토지가 아니어서 관할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고 말했다.
동물권단체는 “지자체가 방관하는 것”이라며 행정적 조치를 빨리 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소연 케어 대표는 “지금까지 고발해왔지만 변한 게 없다”며 “보령시(지자체)에서 행정적 조치의 일환인 ‘격리조치’를 시키면 농장주가 개들에게 접근할 수 없고 해당 농장은 보령시에서 관리한다. 그러면 아이들(개들)은 우리가 국내외 입양 공고를 통해 가정으로 입양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황을 보면) 보령시는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농장주를) 고발해 사법부의 판단을 먼저 받겠다는 입장”이라면서 “이는 부모에게 학대당한 아이를 지자체에서 격리조치부터 하는 게 아니라 법원에서 ‘아동학대 소지가 있다’고 판결할 때까지 (아이를) 학대 의심 부모 옆에 두는 것과 같다”고 호소했다. 강영교 대표는 “지자체에서 격리조치를 내리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면 농장주가 판매업이라도 멈출 수 있도록 ‘이동제한조치’라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