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층 1동이냐 50층 3동이냐’ 검토중…허가권자 서울시장-관할 강남구청장 갈등, 선거 이후로 터파기 공사 미뤄
현대차그룹은 2014년 10조 5500억 원을 들여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7만 9342㎡(약 2만 4000평) 규모의 옛 한전 부지를 인수했다. 현대차는 옛 한전 부지에 115층 규모 건물을 짓겠다고 밝혔다가 2015년 105층(569m)으로 목표 높이를 낮췄다. 현대차의 계획대로 105층 규모의 GBC 건물이 들어서도 555m의 롯데월드타워를 제치고 국내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된다.
현대차는 2016년 2월 GBC 개발계획안과 건물 디자인을 공개하면서 “그룹 통합사옥으로 사용될 105층 타워를 비롯해 시민과 소통을 위한 시설인 공연장, 전시시설, 컨벤션, 호텔·업무시설 등이 들어설 것”이라며 “GBC는 시민과 소통하며 24시간 살아 움직이는 대한민국 서울의 랜드마크로 건설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20년대 들어서면서 GBC 설계를 다시 변경해야 한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다. 실제로 현대차 내부에서는 GBC 건물을 ‘105층 1동’ 대신 ‘50층 3동’ 또는 ‘70층 2동’으로 변경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설계 변경을 검토하는 주요 이유는 경제성 때문이다. 이와 관련, 건설업계 관계자는 “층수가 높아질수록 건설 난이도가 높아지고, 특수 구조 시스템이 적용되므로 건설비용도 크게 상승한다”라며 “105층 1동에서 50층 3동으로 변경하면 1조~2조 원의 비용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GBC가 들어설 예정인 강남구는 원안인 ‘105층 1동’으로 건설해야 한다고 입장이다. GBC 건물 설계를 변경하기 위해서는 서울시에 변경안을 제출해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즉, 설계 변경은 서울시와 현대차가 결정하는 것으로 강남구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다. 그렇다고 강남구를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 원활한 공사 진행을 위해 GBC 인근 도로나 환경을 정비하기 위해서는 강남구의 협조가 필요하다. 정순균 강남구청장은 올해 1월 “현대차그룹이 회사와 투자자의 이익만 앞세워 지역발전을 도외시하고 있다”며 “GBC를 당초 계획인 105층으로 건립할 것을 요구한다”고 전했다.
고 박원순 서울시장의 재임 시절 GBC 설계와 관련해 직접적인 입장을 밝힌 적은 없다. 그러나 박 전 시장이 2020년 7월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GBC 건설로 인해 공공기여금 1조 7491억 원이 강남에만 쓰이도록 강제됐는데 강남권 개발 이익이 강남에만 독점돼서는 안된다”고 밝히는 등 강남구의 ‘랜드마크’보다는 서울시의 경제성을 중요시하는 입장이었다. 재계에서도 박 전 시장 재임 시절에는 설계 변경 허가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했다.
하지만 박원순 전 시장이 사후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2006년 현대차그룹이 110층 규모 건물을 건설하려 하자 성수동 부지의 용도 변경을 추진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박원순 전 시장이 2011년 취임하면서 성수동 고층 건물 건설은 무산됐고, 현대차그룹은 차선책으로 한전 부지를 택했다. 오세훈 시장은 과거에도 110층 건물 공사를 추진한 만큼 초고층 건물 건설에 찬성하는 입장인 것으로 평가받는다. 다만 정순균 구청장처럼 공개적으로 설계 변경을 반대하지는 않고 있다.
재계에서는 당초 현대차가 2021년까지 서울시에 설계 변경안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아직까지도 변경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원안인 105층 1동을 확정하지도 않았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가 오는 6월 지방선거를 의식하는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순균 구청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지난 2021년 재보궐 선거에서 강남구민 73.54%가 오세훈 시장을 지지했다. 재계에서는 오세훈 시장이 연임하더라도 강남구청장이 교체될 경우, GBC 사업을 한결 수월하게 풀어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정순균 구청장은 옛 서울의료원 부지 공공주택 건설 건으로 서울시와 법적 다툼을 벌이는 등 오세훈 시장과 갈등을 겪고 있다. 현재로서는 오 시장이 현대차의 변경안을 받아들이더라도 현대차나 오 시장이 정 구청장의 협조를 요청하는 것은 어려운 상황이다.
현대건설이 2021년 말 정기 임원인사에서 이중열 현대건설 GBC개발사업단장을 상무에서 전무로 승진시킨 것도 눈에 띈다. 김인수 전 현대건설 GBC개발사업단장이 2021년 7월 물러난 후 GBC 관련 사업은 이중열 전무가 이끌고 있다. 이중열 전무는 과거 현대차 신사옥추진사업단 대외협력실장을 역임했다. 이 전무는 GBC의 봉은사 일조권 침해 논란이 불거졌을 때 현대차그룹을 대표해 설명회에 나서기도 했다. 이 전무가 대외협력실장 출신인 만큼 정치권과 지자체와의 소통에도 적임자라는 평가다.
현대차는 GBC를 2026년 12월까지 완공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터파기 공사 시작일을 2021년 10월에서 2022년 7월로 연기했다. 터파기 공사는 건물의 높이나 면적 등이 결정돼야 진행할 수 있다. 아직 GBC 건물 규모가 결정되지 않은 만큼 터파기 공사도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대차가 건물 규모를 결정하지 못한 상황에서 공사가 지연돼 시간만 흐를 경우, 완공 일자도 그만큼 늦어질 가능성이 있다.
당사자인 현대차와 인허가권을 가진 서울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는 만큼 상황을 두고 보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본격적으로 층수를 올리는 공사 일정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며 “GBC 건물 규모도 어떻게 할지 정해진 것이 없다”고 전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아직 현대차가 공식적으로 변경안을 보낸 것이 없다”며 “변경안을 보내면 내부 절차에 따라 법적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