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리콜 사태 이후 제네시스 납품 중단…적극적 R&D 투자 통한 미래 기술력 확보 주력
한국타이어는 지난 1월 5~7일(현지시각)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IT·전자 박람회 ‘CES 2022’에서 비공기입 타이어 ‘아이플렉스(i-Flex)’를 선보였다. 한국타이어는 현대차의 부품사 자격으로 CES 2022에 참여했으며 아이플렉스 역시 현대차 전시부스를 통해 소개됐다.
사실 지난 몇 년간 한국타이어와 현대차의 관계는 무난하지만은 않았다. 과거 현대차 제네시스의 일부 모델은 신차용타이어(OE)로 한국타이어를 채택했다. 그러나 제네시스가 2015년 타이어 결함으로 대규모 리콜을 실시한 후 한국타이어의 제네시스 OE 납품이 중단됐다. 이밖에 그랜저나 쏘나타 등도 트림에 따라 외국산 타이어를 장착하는 등 한국타이어의 현대차 납품이 갈수록 줄고 있다. 현대차 측은 제네시스의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위해 외국산 타이어를 채택했다는 입장이지만 리콜 사태가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시각이 적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미국이 국내산 타이어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서 한국타이어의 수출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상무부는 2021년 6월 한국타이어 27.05%, 금호타이어 21.74%, 넥센타이어 14.72%의 추가 관세율을 산정했다. 국내 타이어 3사 중 한국타이어의 관세율이 가장 높다.
한국타이어의 2021년 3분기 매출은 1조 8294억 원으로 2020년 3분기 1조 8861억 원에 비해 소폭 하락했고, 영업이익은 2247억 원에서 1808억 원으로 줄었다. OE 관련 매출 하락이 실적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상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타이어 3분기 실적에 대해 “교체용타이어(RE)는 판매량 감소에도 판가인상으로 매출이 증가했으나 OE 판매량 감소로 전체 매출이 감소했다”며 “원자재와 운송비가 영향을 미치면서 수익성도 하락했다”고 전했다.
자동차 업계 한 관계자는 “OE 매출이 줄면 RE의 매출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고객들은 기존 타이어와 같은 타이어로 교체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OE 납품은 매우 중요하다”고 전했다.
조현범 한국앤컴퍼니그룹 회장은 실적 상승을 위해서라도 현대차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 조 회장의 형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은 초등학교 동창인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가까운 사이로 알려졌다. 하지만 조현식 고문은 최근 부회장에서 고문으로 이동해 사실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한국타이어와 현대차의 연결고리도 약해진 셈이다.
한국타이어는 최근 CES 2022 관련 보도자료에서 현대차와의 협력을 강조하는 등 관계 회복에 힘을 쏟는 모습을 보인다. 한국타이어 측은 “현대차는 (CES 2022에서) 모든 사물에 이동성이 부여된 ‘Mobility of Things(MoT)’ 생태계 실현을 위한 핵심 로보틱스 기술 기반의 ‘PnD(Plug & Drive) 모듈’을 최초로 공개한다”며 “PnD 모듈의 특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한국타이어의 아이플렉스가 함께 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한국타이어의 행보를 놓고 현대차의 자율주행차 납품 시장을 선점하려는 의도라고 분석한다. 당장 이번 CES 2022에서 공개된 아이플렉스도 자율주행에 최적화된 타이어다. 기존 타이어와 다르게 내부에 공기가 없어 펑크로 인한 사고에서 안전 확보가 가능하고, 적정 공기압 유지 관리도 필요하지 않은 비공기입 타이어이기 때문이다.
한국타이어는 경쟁사에 비해 R&D에 적극적이다.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한국타이어는 2021년 1~3분기 연구개발비로 매출(5조 2526억 원)의 2.53%에 해당하는 1328억 원을 지출했다. 같은 기간 금호타이어와 넥센타이어의 연구개발비는 각각 692억 원, 617억 원으로 한국타이어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한국앤컴퍼니그룹은 2021년 말 캐나다 ‘프리사이슬리 마이크로테크놀로지(프리사이슬리)’를 약 2045억 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프리사이슬리는 광학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설계 전문 기업이다. 광학 MEMS는 자율주행솔루션 핵심 부품으로 사용된다. 프리사이슬리는 2021년 초 자율주행 핵심기술인 LiDAR(레이저 기반 주행환경 인식 센서) 부품을 개발하기도 했다. 한국타이어 측은 사업 다각화 및 신규 사업 진출 기반 마련을 위해 프리사이슬리를 인수했다고 설명했지만 자율주행 기술 확보를 위해 프리사이슬리를 인수했다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국타이어는 2021년 말 구본희 연구개발혁신총괄을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시키는 등 R&D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구본희 부사장에 대해 “미래 타이어 기술력을 포함한 전기차 전용 타이어, 초고성능 타이어 등 글로벌 타이어 기술력 선도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고 설명했다.
타이어 업계 한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한국산 타이어가 미쉐린과 같은 외국산 타이어처럼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기는 어려우므로 제네시스가 당장은 국내산 타이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한국산 타이어는 가성비가 좋으므로 기술력에서 조금만 우위를 보이면 자율주행차 같은 차세대 자동차에서 경쟁력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결국 당장의 실익보다는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앞서의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아직 자율주행차 상용화는 먼 이야기이므로 타이어 업체들도 그때까지 관련된 준비를 할 것”이라며 “당장의 기술 확보가 미래의 판매량을 보장해준다고 장담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지금 답변할 수 있는 부분이 없을 듯하다”며 말을 아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