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합병 비율 공정 결정 등 주주 권리 보호 제안…“LG엔솔 제재 안하면 한국에 투자할 투자자 없을 것”
최근 국내 개미투자자들 사이에서 흔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이다. 소위 동학개미운동으로 촉발된 전 국민 주식투자 열풍이 여러 사건을 거치며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 오스템임플란트, 계양전기 등 횡령 사건이 일어났고 카카오는 최고점 가까이에서 경영진이 주식을 대거 팔아 치웠다.
최근 시장 신뢰를 깬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게 물적분할이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LG엔솔)을 물적분할 해 무려 100조 원짜리 상장을 성공시켰지만 LG화학 주주들은 피눈물을 흘렸다. 카카오는 카카오게임,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등을 상장시켰고 앞으로도 카카오엔터, 카카오모빌리티 등을 상장할 예정이다.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한국 자본시장 투자를 꺼리는 외국인이 늘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이효석 업라이즈 매니지스트와 김규식 한국 기업거버넌스 포럼 회장은 ‘세이브 코스피’ 운동을 시작했다. ESG(환경·사회·기업지배구조)가 투자의 중요한 덕목이 되고 있는데 현재 한국 거버넌스는 ‘석기시대’라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일요신문은 김규식 회장을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 회장은 한국 변호사 출신으로 현재는 싱가포르에서 전업 펀드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이브 코스피 운동은 뭔가.
“기업 거버넌스를 개혁하고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해, 한국 자본시장에 참가하고 있는 대주주, 일반 주주 모두가 행복해지는 나라를 만들자는 운동이다. 한국은 주주 권리를 보호할 수 있는 법 자체가 없어서 문제가 있다고 보고 입법 운동을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여덟 가지 입법 목표를 대선 주자들에게 전달해 공약으로 채택하는 방식으로 달성하고자 한다.”
―세이브 코스피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뭔가.
“원래부터 한국 거버넌스 구조에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었다. 내가 변호사인 만큼 일반 주주 침탈 사례를 소송을 통해 해결할 방법을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이런 생각의 촉발은 LG엔솔이 했다. LG엔솔 사태가 그냥 넘어가면 한국 자본시장은 끝이라는 경각심이 생겼다.”
―먼저 여덟 가지 요구사항을 설명해 달라.
“1번, 상장사 합병 비율을 공정가격으로 결정해야 한다. 현재는 시장가격으로 결정해 합병 전 의도적으로도 가격을 하락시키는 요인이 된다. 2번, 의무공개매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원래 한국에도 있었는데 IMF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을 위해 한시적으로 삭제됐을 뿐이다.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부활해 제도화돼야 한다. 3번, 물적분할과 동시 상장이 허용되면 안 된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최소한 반대주주에게는 매수청구권을 줘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고 찬성 주주에 자회사 신주배정이 있어야 한다.”
“4번, 자진 상장폐지를 진행하면서 공개매수를 해 매수청구가격을 공정가격으로 결정해야 한다. 반대주주가 법원에 공정가격 결정 신청을 할 때는 너무 늦는다. 공정가격 소송을 진행하면 4년 이상 걸릴 수 있다. 이걸 버티면서 소송을 할 주주가 많지 않다. 5번, 소위 ‘자사주의 마법’을 금지해야 한다. 인적 분할 시 지주사에 신주배정을 금지하고 경영권 방어 목적의 자사주 매각을 금지해야 한다. 자사주 마법은 기업 오너가 지배력을 높이기 위한 편법이며 다른 모든 주주가 피해를 본다.”
―나머지 요구는 주주가 회사를 상대하기 위한 입법으로 보인다.
“모든 선진국에서는 주주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뒀다. 지배 주주가 일반 주주 이익을 침탈하는 행위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들이다. 3개 요구는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다. 5번,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 의무를 인정해야 한다. 상법 제382조의3(이사의 충실의무)을 ‘이사는 법령과 정관의 규정에 따라 회사와 주주를 위하여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여야 한다’로 개정해야 한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가 없으니 이사들이 부담 없이 일반 주주를 수탈하는 이사회 결정을 남발한다. 7번, 집단증권소송 소 제기 요건을 확대해야 한다. 소액투자자들의 집단적 피해를 효율적으로 구제하는 방법이다. 8번,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현재는 주주들이 회사가 가진 자료를 볼 수 없어 소송에서 이기기 불가능한 상황이다.”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여덟 가지 제안은 어느 정도 수준의 요구인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이 정도 수준이 안 돼 있는 나라가 없다. 여덟 가지 제안은 대단히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당연히 있어야 하는 법안이 한국만 없는 것이다. 한국에 형법이 없다고 생각하면 된다. 폭행해도 죄로 처벌받지 않는 수준이 현재 한국의 자본시장 수준이다.”
―최근 논란이 되는 물적분할 얘기부터 해보자.
“물적분할은 원래 부실자산을 떼어내서 구조조정하는 수단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알짜 자산을 물적분할 해 상장하는 말도 안 되는 방식을 쓰고 있다. 싱가포르에서는 한국 펀드 매니저들이 자신의 보스에게 LG엔솔 사태를 설명하는 걸 어려워한다. 어떤 나라에서건 이런 일이 있다면 곧바로 소송에 직면하게 된다. 한국을 제외한 어떤 선진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나라에서 물적분할 이후 상장이 불가능한 이유가 뭔가.
“주주가치가 훼손되기 때문이다. LG화학은 수십 년 동안 키워온 알짜 사업인 배터리 부문을 잃었다. 배터리 부문을 보고 투자한 LG화학 장기투자자들은 바보가 됐다. LG화학 주주들은 물적분할된 LG엔솔 의결권을 상실하면서 보통주 지위가 우선주와 유사한 수준으로 강등된다. 물적분할된 회사가 상장하면 이사회 독립성이 보장되고, 모회사는 지배주주가 아닌 보통주 지위로 떨어지게 된다. 즉 LG화학 주주들은 LG엔솔이 물적분할 상장을 거치면서 지분 가치가 70% 이상 디스카운트됐다. LG엔솔 시가총액은 약 100조 원이 넘는다. LG엔솔 지분 약 80%를 보유한 LG화학 시가총액은 최근 45조 원 수준밖에 안 된다. LG화학 본업 가치가 40조 원으로 평가받는데 나머지 5조 원이 LG엔솔 지분 가치인 셈이다. LG엔솔 지분이 원래 가치 10%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다른 나라는 어떤가.
“주주가치가 훼손된다면 곧바로 집단소송이 제기된다. LG엔솔 같은 사태가 난다면 회사 또는 이사들이 조 단위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소송 리스크 때문에 엄두도 낼 수 없다. 소송 리스크를 통해 제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생각해보자. 애플의 아이폰이나 아이패드가 따로 상장돼 있나. 아니면 애플스토어나 수리 부문만 떼어내 상장하는 걸 상상한 적이 있나. 우리나라는 현대차만 상장된 게 아니라 현대모비스, 현대글로비스가 상장돼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이, 구글과 유튜브가 따로 상장돼 있지 않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유명한 기업 대부분 모회사 하나만 상장돼 있다. 주주는 회사 권리를 갖는 게 상식이다. 우리나라는 상식이 없다. 대기업들이 오너 경영권 보장을 위해 일반 주주를 수탈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짜여 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 수준으로 보면 석기시대 수준이다.”
―해외 사례와 달리 국내 시장에서는 2021년 물적분할 러시가 있었다.
“2021년엔 LG엔솔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못하지 않은 한국조선해양의 현대중공업 물적분할 사건이 있었다. 여기에 LG엔솔의 무려 100조 원짜리 물적분할까지 성공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처벌을 안 받으니 말하자면 ‘안 하면 바보’가 되는 셈이다. 2021년 무려 50건 이상 물적분할이 일어났다는 얘기가 있다. 해외 펀드매니저나 투자자들이 이번 사태를 눈여겨보고 있다. LG엔솔이 어떠한 제재도 없이 넘어간다면 한국에 투자할 투자자는 없을 것이다.”
―LG엔솔 관련한 소송 움직임도 있나.
“한국 대법원은 자본 거래에서 이사가 경영행위로 자본가치, 주주가치를 훼손한 게 위법이라고 한 사례가 없다. 다른 나라와 달리 아직 한국 대법원은 주주가치가 침해될 때 이사에게 책임을 물은 적이 없다. 그래도 LG엔솔과 한국조선해양 사건은 이대로 넘어갈 수 없다. 내가 준비하는 건 아니지만 소송을 준비하는 그룹이 있다. 이 그룹에 조언해드리고 있다.”
―최근 ESG 열풍 등 거버넌스가 투자의 중요 지표가 되고 있다.
“미국이 전 세계 투자자에게 엄청난 자본을 값싸게 조달 받을 수 있는 건 주주가치가 훼손되지 않으리란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 주식에 믿고 투자할 수 있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보면 마지막에 애플 주식에 투자했다는 말이 있다. 당시 10만 달러를 투자한 검프가 지금까지 애플 주식을 들고 있다면 60조 원이 넘는 돈이 된다. 한국은 아니다. 한국은 장기투자하면 껍데기 회사 주식만 남게 된다. ‘코리안 디스카운트’는 최악의 거버넌스 환경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반 국민들이 세이브 코스피 운동에 동참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
“한국은 주주 권리가 없다. 권리가 있다고 하려면 침해 시 구제수단이 있어야 하는데 구제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세이브 코스피 운동으로 여덟 가지 법안이 만들어지면 시민들은 장기 투자할 수 있고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노후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디스카운트된 만큼 자본조달 능력이 저하되므로 회사, 주주, 국가 경제 전체에 손해다. 이걸 바로잡자는 얘기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