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가 대신 갚아준 빚까지 슬쩍 빼돌려 도박 탕진…징역 5년, 또 다른 피해자들 고소 준비 중
2월 11일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부장판사 김정일)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사기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유정호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유 씨는 유튜버로 활동하기 전 ‘웃긴대학’(웃대) 커뮤니티에서 선행과 봉사로 유명했고, 유튜브로 옮겨와 명성이 더욱 커지며 100만 명 이상 구독자를 확보했다. 유 씨가 하던 화장품 사업도 그의 선행을 본 구독자의 응원 소비 덕분에 엄청난 매출로 이어졌다.
그런 그가 어떻게 사기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게 됐을까. 판결문을 통해 100만 유튜버의 사기 실체를 들여다봤다. 이번 판결은 가장 큰 피해자로 알려진 B 엔터테인먼트 전 대표 A 씨의 고소로 인해 선고된 것으로 A 씨의 피해 사실만 담겨 있다.
유정호 씨는 ‘학교에서 괴롭히던 일진 커서 복수함’ 등 소위 참교육 콘텐츠와 선행, 기부 콘텐츠로 인기를 끌었다. 참교육 콘텐츠는 범죄나 탈법, 비도덕적 행동을 하는 사람을 유튜버가 직접 단죄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2021년 4월 A 씨는 엄청난 인기를 확보한 유 씨를 B 엔터테인먼트로 영입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A 씨가 유 씨에게 접촉했을 당시 유 씨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유 씨는 지인과 구독자 등으로부터 화장품 회사 운영 자금 명목으로 급전이 필요하다며 돈을 빌렸는데, 이 돈을 도박 자금 등으로 사용해 갚을 수 없게 된 상황이었다. 2021년 4월 유 씨는 34억 5000만 원에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 운영권 및 운영하던 화장품 회사 지분 전부를 양도하고, B 엔터테인먼트에 상근이사로 근무하기로 했다.
A 씨는 유정호 씨 상황을 모르고 거액을 지불하고 소셜미디어 운영권과 화장품 회사를 인수했다. 그런데 선행으로 유명한 유정호 씨가 돈을 빌렸다가 못 갚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엄청난 이미지 실추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2021년 5월 16일 유 씨는 A 씨에게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투자했으나 투자 사기 등으로 돈을 날렸다’며 이 돈을 갚아 달라고 했다. 재판부는 ‘유 씨가 돈을 빌렸다가 못 갚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막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A 씨에게 이 돈을 대신 갚아 달라고 하고, 그 돈을 편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봤다.
유 씨가 대신 갚아 달라고 한 인원은 모두 12명으로 총 금액은 15억 5000만 원이었다. 2021년 5월 20일부터 26일까지 A 씨는 유 씨 말을 믿고 그 돈을 송금했다. 그런데 얼마 뒤 유 씨는 12명에게 A 씨가 송금한 돈 15억 5000만 원 가운데 12억 4900만 원을 다시 빌리거나 잘못 송금한 돈이라며 돌려 달라고 해 가져갔다. 유 씨는 이렇게 돌려받은 돈을 도박에 탕진해버렸다.
유 씨는 재판부에 “피해자에게 페이스북 및 인스타그램 계정을 넘기는 대가로 15억 5000만 원을 지급 받은 것이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A 씨는 이미 유 씨가 투자사기 당한 것이 아니라 도박 자금으로 돈을 썼던 것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A 씨를 기망한 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 등으로 볼 때 지인들에게 돈을 빌려 투자 사기를 당했다고 거짓말해 A 씨에게 돈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A 씨는 유 씨가 도박으로 돈을 탕진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알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유 씨가 앞으로 성실하게 근무할 것을 전제로 돈을 빌려 갚겠다고 했다. 유 씨는 이 돈을 다시 돌려받거나 도박자금 용도로 사용해 기망 행위와 편취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A 씨가 선행 이미지로 매출을 올리는 유정호 씨 화장품 회사를 거액에 인수했는데, 돈을 빌렸다 못 갚은 게 알려지면 큰 타격을 입을까 걱정했다는 진술을 했고 이 진술이 신빙성 있다고 봤다.
또한 2021년 5월 16일 유 씨는 자신이 돈을 빌린 사람에게 A 씨가 돈을 곧 갚아줄 것을 알리면서, ‘일부러 내가 사기당했다 둘러댔다’, ‘한 4~5명 서류 만들어서 사고 쳐 놨다 했으니 내일까지 받아야 된다. 곤란하다라고 하면 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대화를 통해 유 씨가 돈을 갚아야 한다는 명목으로 A 씨에게 사기를 치려는 목적이 있었다고 본 것이다.
또한 도박 자금으로 탕진한 걸 알고 빌려줬다는 유 씨 주장에 대해 재판부는 “5월 16일 대화 내용을 보면 투자를 권유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묻고 그 사람과 나눈 대화 내역 등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면서 “다른 대화 내용들을 볼 때도 도박에 탕진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유 씨는 자신을 믿고 자신의 사업을 양수한 피해자가 자신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임을 잘 알면서 이를 이용해 피해자를 기망하고 약 15억 원에 이르는 돈을 가로채 그 죄질이 나쁘다”면서 “유 씨가 끝까지 15억 원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계정 양도에 따른 대금이라 주장하면서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피해 회복이 되지 않은 점, 피해자가 엄벌을 탄원하는 점 등을 감안했다”고 징역 5년 선고의 양형 이유를 밝혔다.
지난 2월 15일 유 씨는 항소했다. 2월 16일 검찰도 항소해 2심 법원에서 다시 양측 주장을 다툴 예정이다.
A 씨는 “5년 선고도 너무 적다. 뻔히 드러나는 사실인데 거짓을 얘기하며 무죄를 주장하는 유 씨는 더 큰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본다”면서 “이번 결과를 보고 다른 피해자들도 고소하기로 했다. 유정호 씨 사기 피해액이 현재 다투는 15억 원이 아니라 두 배 이상 늘어날 것 같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