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레스틀리스’는 ‘끝까지 간다’ 리메이크작…‘갯마을 차차차’ 등도 넷플릭스 흥행 업고 판권 협상중
#어떤 작품을 다시 만들었나
‘레스틀리스’는 2월 25일 공개 후 이틀 만에 넷플릭스 글로벌 영화 흥행 1위에 오른 후 닷새 간 정상을 지켰다. 이 기간 리메이크국인 프랑스를 비롯해 독일과 아르헨티나, 스위스, 스페인 등 39개국에서 1위를 섭렵했다.
이에 앞서 넷플릭스 인도 공식 계정을 통해 공개된 인도 영화 ‘다마카’는 티저 영상만 조회수가 4000만 회에 육박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고, 개봉 엿새 만에 손익분기점을 돌파했다. 이 영화는 남성 앵커가 생방송 도중 테러범의 전화를 받은 후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기시감이 드는 이 영화는 배우 하정우가 주연을 맡아 8년 전 국내 개봉했던 ‘더 테러 라이브’의 인도 버전이다.
이외에도 배우 송혜교·박보검이 출연했던 tvN 드라마 ‘남자친구’는 필리핀 버전으로 재탄생, 2021년 초 공개됐다. 필리핀의 TV5 채널에서 ‘Encounter(엔카운터)’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됐고, 2016년 방송됐던 tvN 드라마 ‘싸우자 귀신아’는 태국 Pay TV 채널에서 ‘Let's Fight Ghost(렛츠 파이트 고스트)’라는 이름으로 다시 만들어졌다. 이 드라마 역시 태국 넷플릭스에서 공개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 한국 콘텐츠 리메이크의 핵심은 ‘탈(脫) 아시아’다. 2000년대 들어 한류 시장이 아시아 시장을 장악하면서 아시아 국가들의 리메이크 움직임은 활발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를 넘어 미주와 유럽 등 선진 콘텐츠 시장에서도 한국 콘텐츠를 탐내는 분위기다.
‘K-좀비’ 신드롬을 일으킨 ‘부산행(2016)’은 할리우드에 판권이 팔려 현재 ‘라스트 트레인 투 뉴욕(Last Train to New York)’이라는 제목으로 리메이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현지 언론은 2023년 4월쯤 공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배우 김옥빈·신하균이 주연을 맡고 칸 국제영화제에 초청을 받기도 했던 영화 ‘악녀’의 판권은 미국에서 넷플릭스와 경쟁하는 거대 OTT 기업 아마존에 팔렸다. 이 밖에도 영화 ‘7번방의 선물’과 ‘박수건달’ 판권이 각각 스페인과 인도 콘텐츠 기업에 수출됐다.
한 방송 관계자는 “한국 콘텐츠를 그대로 수입해 개봉하거나 편성하는 수준을 넘어 이제는 원천 소스를 바탕으로 현지화시키는 전략이 보편화되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한국 콘텐츠가 가진 스토리의 우수성과 더불어 전 세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성을 갖췄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왜 다시 만드나
한국 드라마나 영화 리메이크의 시발점은 일본이라 할 수 있다. 2004년 배우 배용준·최지우가 주연을 맡은 드라마 ‘겨울연가’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후, 일본 시장은 앞다투어 한국 드라마를 수입했다. 그리고 이를 일본 배우와 제작진을 기용해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이어왔다. KBS 드라마 ‘굿 닥터’의 경우 지난 2018년 후지TV에서 리메이크판이 공개돼, 평균 시청률 12.4%를 기록하는 등 큰 성공을 거뒀다. 이후 드라마 ‘시그널’과 ‘기억’도 각각 일본 KTV와 후지TV 넥스트에서 새로 만들어졌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원작으로 한 일본 리메이크 드라마의 시작은 2004년 아사히TV에서 방송된 ‘호텔리어’였다. 이후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쩐의 전쟁’, ‘마왕’, ‘미남이시네요’, ‘가시고기’를 비롯해 영화 ‘선물’, ‘두사부일체’, ‘내 머릿속의 지우개’, ‘엽기적인 그녀’ 등이 일본 버전으로 제작됐다.
왜 일본이 시작이었을까. 한국과 지리적으로도 가깝고 같은 동양문화권인 일본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의 정서를 더 쉽게 이해하고 공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드라마에 대한 이질감이 적었고, ‘굿 닥터’와 같은 리메이크 성공 사례가 있었기에 후속 시도가 계속될 수 있었다.
이는 미주나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 시장에서 첫 리메이크된 한국 드라마는 ‘굿 닥터’였다. 자폐증과 서번트 신드롬을 가진 의사의 성장기를 다룬 이 작품 2017년 미국 공영방송 ABC 채널에서 파일럿 프로그램으로 소개된 후 현재 시즌5까지 제작됐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 ‘어거스트 러쉬’로 유명한 배우 프레디 하이모어가 주인공을 맡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굿 닥터’의 성공이 한국 콘텐츠 리메이크에 대한 관심에 불을 댕겼다면, 넷플릭스라는 글로벌 유통망은 기름을 부었다. 넷플릭스를 통해 전 세계 어디서나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리메이크 사례도 늘고 있는 모양새다. 넷플릭스에서 소개돼 화제를 모은 ‘사랑의 불시착’의 리메이크는 이미 공식화됐고, ‘호텔 델루나’, ‘빈센조’, ‘갯마을 차차차’ 등도 리메이크 판권 협상이 진행 중이다.
또 다른 방송 관계자는 “국내에서 아무리 유명하고 성공한 작품일지라도 전 세계에 소개되지 못하면 해외 진출의 기회조차 얻을 수 없다. 넷플릭스를 비롯해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 등 글로벌 OTT는 이런 유통의 문제를 일거에 해소해줬다”면서 “이로 인해 한국 콘텐츠의 우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됐고 리메이크로 이어지는 수순을 밟고 있는 것이다. 향후에는 과거 공개됐던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리메이크하는 등 한국 콘텐츠를 활용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