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의 민주당 이탈과 ‘이대녀’의 뒤늦은 부상 그때도 그랬다…갈라치기로 표 얻기 이젠 회의적
이번 대선 과정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며 읽다가 마지막 문장에서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을 것이다. 위 문단은 2010년 1월 시사주간지 ‘한겨레21’ 795호에 실린 ‘반가워, 2030녀의 팬질 정치’의 일부를 인용한 것이다. 기사는 2006년 당시의 지방선거 지지율과 20~30대 여성 유권자들만의 팬질정치 문화를 다뤘다. 흥미로운 점은 기사 본문에 ‘한나라당’이라는 단어가 없었다면 이것이 2010년의 대한민국인지 2022년의 대한민국인지 구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이번 대선의 큰 화두로 주목받고 있는 ‘이대남의 더불어민주당 이탈’과 ‘이대녀의 뒤늦은 부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최소 10여 년 전부터 이어져왔다는 것이다. 이는 곧 여의도 선거 전략에 별다른 발전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12년 전 기사에 나타난 한국 사회와 현재의 모습을 비교 진단해봤다(작은따옴표 속 문장은 한겨레21 기사에서 인용).
#2010년 ‘친노에 열광한 20대 여성’…2022년 ‘민주당 가입 러시 20대 여성’
당시 기사는 정당 지지율만 바꿔 다시 내도 될 정도다. ‘(2006년) 정당 지지율 조사 결과를 보면, 확실히 20~30대 여성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인다.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파가 가장 많기 때문이다.’ ‘30대 여성에서 무당파가 31.7%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20대 여성(30.5%)이다.’ ‘그런데 투표율을 살펴보면, 20~30대 여성이 정치에 관심 없다는 말은 과장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20~30대 여성의 투표율은 같은 세대 남성보다 높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이번 대선에도 2030 여성은 유령이나 마찬가지였다. 여론조사기관 ‘칸타코리아’의 2021년 11월과 2022년 2월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 결과를 보면 확실히 2030 여성은 정치에 무관심해 보였다. 이들은 대선 후보가 결정된 뒤에도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 11월 여론조사 결과, ‘지지후보를 정하지 않았’거나 ‘없다’고 답한 무당층은 30대 여성에서 42.3%가 나왔고, 그 다음이 20대 여성(41.6%)이었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2월 마지막 주까지도 45%가 지지 후보를 고르지 않았거나 없다고 답했다.
이에 3월 7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여성의 투표 의향이 남성보다 떨어지는 것으로 나오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대녀의 표는 결집하지 않는다는 요지였다. 그런데 실제 투표율은 이 대표의 분석과는 달랐다. 방송3사 출구조사 기준 20대 여성과 30대 여성의 투표율은 각각 68.4%와 71.0%로 40대 이상 유권자보다는 낮았지만 같은 연령대의 20대 남성(62.6%)과 30대 남성(67.0%)보다는 높았다.
‘30대 여성의 경우 한나라당을 비롯한 보수 정당 지지율이 다른 정당 지지율보다 더 높긴 하지만 평균치와 비교해보면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중도(민주당·창조한국당)·진보(민주노동당·진보신당) 정당 지지율은 각각 23.4%와 12.9%로, 평균을 웃돈다.’ ‘반면, 20대 여성의 중도 정당 지지율은 27.6%, 진보 정당지지율은 14.0%로 모든 세대와 성별에서 가장 높았다.’
마찬가지다. 2030 여성의 투표 성향은 12년이 지난 20대 대선에도 비슷한 흐름을 보였다. 30대 여성의 국민의힘 지지율은 43.8%로 20대 여성(33.8%)보다 10%포인트(p)가량 높았으나 정의당 지지율(5.5%)도 전 연령층에서 두 번째를 차지하는 등 보수 성향이 강하다고 보긴 어려웠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여성의 민주당 지지율은 58.0%였고, 정의당 지지율은 6.9%로 모든 세대와 성별에서 가장 높았다.
젊은 세대가 정치인을 지지하는 방식도 낯설지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 퇴임을 전후해 이들의 팬카페가 생겼고, 노 전 대통령 서거 국면에서 회원이 많이 늘었다. 이해찬 전 총리의 팬카페 회원이 1만 명,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팬카페 회원이 1만 3000명에 육박한다.’ ‘회원들은 정치인의 과거 발언, 현직에 있을 때 추진했던 정책 등을 찾아 토론을 벌인다. 어떻게 하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정치인이 대중적으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지를 놓고도 머리를 맞대본다.’
2010년 당시 이런 흐름을 주도한 건 ‘여성 3국’이라고 불리는 소울드레서, 화장발, 쌍코 등 2030 여성을 중심으로 한 인터넷 카페 회원들로 2008년 광우병 파동 당시 촛불을 들고 광화문을 밝힌 주력이기도 했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유시민, 김경수, 이해찬 등 친노 인사들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고, ‘팬질’에 가까운 지지 활동에 정치권과 언론은 주목했다. 20대 여성 결집은 이들이 30대 초중반이 된 2017년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정치 팬덤 형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2022년에는 이재명 후보가 2030 여성들의 지지를 받았다. 3월 16일 민주당에 따르면 10일부터 15일까지 닷새 간 11만 7700여 명이 신규 당원 신청을 하는 등 입당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 이는 이번 대선을 기점으로 ‘친명’ 옷을 입은 일부 2030 여성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이재명을 지키자”며 움직인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당내에서도 공식적으로 성 및 연령에 따른 신규 당원 분류는 하지 않았으나 20대 여성의 가입이 상대적으로 많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선 이후 개설된 이재명 팬카페 역시 여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아 16일 회원 수 10만 명을 넘겼다.
#2010년 기사에서도 20대 남성 ‘보수화’ 지적
20대 여성 표심이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이라면 20대 남성, 이른바 이대남의 표심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2022년 대선을 앞두고 펼쳐진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민주당은 줄곧 20대 남성의 지지를 국민의힘에 내줬다. 국민의힘은 ‘능력주의’와 ‘안티 페미니즘’, ‘정권교체’를 전면에 내세워 이대남 구애에 나섰고, 여론조사 기간 내내 민주당 지지율은 처참했다.
처음엔 민주당도 집 나간 20대 남성을 되돌리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2021년 12월 9일 이재명 당시 대선 후보는 남초 커뮤니티 ‘에프엠코리아’에 게시글을 올렸다가 운영진에 의해 삭제당했다. 12월 29일에는 CBS 유튜브 콘텐츠 ‘씨리얼’에 출연을 약속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일부 민주당 지지자를 중심으로 씨리얼이 ‘페미니즘 방송’이라는 취지의 주장이 김남국 등 의원들에게 전달됐고, 당 내부에서 남성들의 반발을 우려해 출연을 만류한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갖은 노력에도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쉽게 오르지 않았다. ‘칸타코리아’의 2021년 11월~2022년 1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재명 후보의 20대 남성 지지율 흐름은 ‘12.5%→24.9%→14.6%’로 12월 잠시 상승하는 듯했으나 곧 제자리로 돌아왔다. 2월 마지막 여론조사에서는 8.5%까지 떨어졌다. ‘모르겠다’는 부동층은 23.1%였다. 결국 민주당은 20대 대선에서 20대 남성 지지율 36.3%라는 성적표를 받아 들면서 이대남 포섭에 실패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58.7%의 지지를 받았다.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이준석 대표의 세대포위론에 대해 “물론 공과가 있겠지만, 전 압도적으로 공이 많다고 생각한다”고 자축했다.
다만, 민주당의 패배 원인이 이대남에 있는지 사실상 이대남만을 공략한 국민의힘의 선거 전략이 성공적이었는지를 두고는 이견이 있다. 왜냐하면 20대 남성은 ‘원래’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대남의 표심은 이미 2021년 4·7 재보궐 선거 참패로 확인된 바 있다. 당시 20대 남성의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민주당) 지지율은 22.2%에 불과했다. 반면 오세훈 후보(국민의힘)에게는 72.5%의 지지를 보냈다.
이대남의 민주당 이탈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이쯤에서 기사의 첫 문단을 다시 보자. 12년 전 2010년 기사에서도 20대 남성은 ‘청년 보수화’를 주도하는 세력으로 소개됐다. 사실 2002년 16대 대선까지만 해도 20대 청년들은 성별과 무관하게 민주당 혹은 진보 정당의 집토끼로 구분됐다. ‘어느 당을 지지하느냐’는 세대 간 갈등이었지 성별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당시 여론조사기관에서 내놓은 자료를 봐도 현재처럼 연령과 성별을 함께 묶어 분석해 놓은 것은 찾기 힘들다.
여성과 남성은 그로부터 5년 뒤인 17대 대선을 기점으로 조금씩 갈림길에 서게 된다. 당시 노무현 정부의 지지율은 실업, 양극화, 집값 폭등 등의 문제로 폭락한 상황이었다. 이런 가운데 치러진 대선의 투표율은 63%로 매우 낮았다. 그나마 투표장에 나온 20대 남성들의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후보에 대한 지지율은 도합 37.0%밖에 되지 않았고, 2009년 9월에는 이명박 정부에 47.3%의 지지율을 보여주는 등 점차 민주당에서 이탈해 전형적인 스윙보터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반면, 20대 여성은 2007년 이후 각종 선거에서도 계속해서 진보성향 정당 및 민주당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세대 갈등의 심화라는 결론이 나왔던 18대 대선에선 20대 여성과 남성 모두 민주당에 힘을 실어줬지만 여전히 20대 남성의 표가 더 보수적이었다. 20대 여성의 경우 70.9%가 문재인 후보를, 26.7%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한 반면 20대 남성은 66%가 문재인 후보를, 32%가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런 흐름은 19대 대선에도 뚜렷하게 드러났다. 2017년 5월 7~8일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이 실시한 19대 대선 후보 지지도 여론조사를 보면 20대 여성의 문재인 후보 지지율은 56%, 20대 남성의 지지율은 37%였다. 이는 60대 이상을 제외하면 전 연령대에서 가장 낮은 지지율이었다. 반면 홍준표, 안철수, 유승민 후보가 20대 남성들에게 받은 지지율의 합은 52%였다. 결국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이대남의 지지는 처음부터 낮았던 셈이다.
물론 이런 사실이 민주당의 대선 패배나 청년 정책 실패의 변명이 되진 못한다. 문재인 정부에서 민주당은 2030 남성뿐만 아니라 진짜 집토끼였던 2030 여성의 지지율도 만만치 않게 잃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의힘이 받은 2030 여성표가 역대 최다였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어느 한쪽의 표심을 자극하거나 갈라치기 해 표를 얻어내는 방법에 대해서는 정치권도 이미 회의적이다.
이에 대해 전직 민주당 관계자는 “세상에 반이 여자고 반이 남자인데, 편 가르기 전략으로는 결코 (지지율) 50%를 넘을 수 없다”며 “청년을 이대남, 이대녀로 규정짓고 구분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인정하고 결국 이들의 전체 파이를 넓혀주는 것이 정치인들이 할 일”이라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