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아닌 ‘알바’ 30명 뽑으면 20명 퇴사…“엄청 친절하네” 민원인 말엔 눈물 왈칵 쏟기도
전북 전주시에서 임용 한 달 차 새내기 공무원이 초과 근무에 시달리다 극단적 선택을 했다. 경기 용인시 기흥보건소 소속 공무원은 과로로 쓰러져 의식을 찾지 못 하고 있다.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긴 지난 2월의 일이다. ‘하루 확진자 10만 명’은 단지 ‘주변에 확진자가 많아졌다’는 뜻에서 끝나지 않는다. 방역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에게는 ‘돌봐야 할 환자가 매일 10만 명씩 생기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른 들판에 불길 번지듯 퍼지는 확산세에도 방역체계 최일선에는 ‘보건소 사람들’이 있다.[일요신문] “외울 게 많은데 하실 수 있겠어요?” 화면 속 면접관이 물었다. 자기소개부터 질문까지 화상 면접 시간은 10분 남짓이었다. 주 5일 8시간 근무에 월급은 240만여 원. 취업준비생인 A 씨에게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다.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A 씨가 씩씩하게 답했다(※기사 내용은 전국 질병관리청 상담 1339 콜센터와 보건소 콜센터 직원 다수의 증언을 종합한 것으로 특정 콜센터를 지칭하지 않는다).
[보건소 24시①] “설연휴, 문앞에 재택치료키트 놓고 간 건 ‘사람’이었다”
[보건소 24시②] 선별검사소 사람들 “출근 인사가 ‘살아낼게’예요”
#방역 지침, 언론에 먼저 공개돼 정보 전달 어려워
“안녕하십니까. 1339 콜센터 A입니다.” 입사 한 달이 지났다. A 씨와 함께 입사한 30여 명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사람은 10명 정도다. 2명은 정식 업무에 들어가기 전에 그만뒀다. 이틀 동안 하루 8시간씩 진행되는 교육 기간에 1명이 중도 포기했고, 다른 1명은 교육을 다 받고 나타나지 않았다. 입사 일주일 뒤에는 10명 정도가 퇴사하거나 ‘잠수’를 탔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지나고 나니 A 씨를 포함해 10명 정도만 남았다.
A 씨가 속한 팀은 코로나19 지침에 대한 문의를 받고 응대하는 곳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나, 집합금지 등 일반 지침과 관련된 문의 전화를 받는다. 상담을 마친 A 씨가 직전 문의에 대한 간단한 메모를 마치고 프로그램이 띄워진 화면에 ‘Ready(레디)’를 눌렀다. Ready는 다시 전화를 받겠다는 의미다. 누름과 동시에 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사무실 벽 한편에 설치된 모니터에는 인입호(외부에서 들어오는 전화수)와 응대호, 응대율이 커다랗게 떴다.
전화가 연결됐다. “안녕하십니까. 1339 콜센터 A입니다”라고 응대하자 바로 “코로나는 언제 끝납니까”라는 질문이 나왔다. 순간 A 씨의 말문이 막혔다. “저기요”라는 얘기에 “네, 선생님. 말씀하세요”라고 답하자 바로 “코로나 도대체 언제 끝나냐고요”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네, 선생님 코로나 종식 시점은 현재로서는 답변하기 어려운 사항입니다”라는 A 씨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수화기 너머에서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A 씨가 “죄송합니다”라고 말했다. 기계적으로 나오는 말이었다.
구체적인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는 대답에도 통화는 이어졌다. ‘예상하는 시기가 있지 않느냐’는 취지의 질문들이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A 씨가 할 수 있는 답변은 “알 수 없다”뿐이었다. 결국 “아무것도 대답을 못 해주는데 질병청은 하는 일이 뭡니까”라는 신경질 섞인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이어 “더 해줄 말이 없으면 전화를 끊겠다”고 했다. “죄송합니다”를 반복하던 A 씨가 마무리 인사를 했다. “건강을 기원합니다. 상담사 A였습니다.” A 씨가 감정을 추스를 새도 없이 Ready를 눌렀다. 그가 하루에 받는 전화는 최소 150통 이상이다.
보건소 코로나19 통합 콜센터에서 근무했던 B 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지자체 보건소의 기간제 근로자였던 B 씨의 주 업무는 백신 사전 예약과 일정 변경이었다. 함께 일했던 동료는 4명밖에 되지 않았다. 1339 콜센터에서 넘어온 전화도 B 씨가 받았다. B 씨가 전화 한 통 하는 사이 부재중 전화는 30건 넘게 찍혔다.
B 씨는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연결이 안 된다’는 하소연이다. ‘공무원이 일 좀 해라’고 하신 분도 계셨다. 콜센터 상담사들을 공무원으로 착각해 ‘민원을 넣어야겠다’며 정확한 이름을 요구하시는 분들도 상당수다. 그런데 나는 공무원 아닐 뿐더러 당시 하루 500~600통 넘게 전화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무엇보다 난감할 때는 상담사들에게도 아직 전달되지 않은 방역 지침이 언론 브리핑을 통해 국민에게 먼저 발표될 때다. 상담사들은 “질병청이 새로운 방역 지침을 보건소나 관련 부처에 전달하기에 앞서 언론에 먼저 발표했다”고 입을 모았다. 질병청이 방역 지침이 발표할 때 일을 하고 있어 항상 민원인들보다 늦게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브리핑을 보면서 콜센터에 전화해 새로운 지침에 대해 구체적으로 묻는 민원인도 많다. 당연히 정확한 정보 전달이 어려웠다.
이에 대해 B 씨는 “브리핑을 보면서 ‘지금 나오는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어보시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알고 있는 척, 바뀐 지침을 황급히 찾아보곤 했다. 정보를 전달하는 일을 하면서 최신 정보에 대해 미리 알고 대처할 수 없다는 게 가장 어렵고 난감했다”고 말했다.
#빈번해진 1339 먹통 사태…고용안정과 심리상담 지원 절실
이런 데다 최근 코로나19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로 인해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콜센터는 말 그래도 먹통 상태다.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탓이다.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실이 질병청에서 입수한 ‘1339 콜센터 월별 운영 현황’에 따르면 2월 1~15일 응대율은 26.8%에 그쳤다. 전화 연결 10번 중 7번은 안 되는 셈이다. 1339로 걸려온 전화 80만 5394건 가운데 21만 5644건만 응대가 완료된 것으로 나타났다.
하루 평균 문의 전화는 5만 3693건에 달했다. 이 가운데 콜센터 직원 469명이 응대할 수 있었던 전화는 1만 4367건에 불과했다. 전체 직원 수를 감안하면 직원 1인당 하루에 460건을 응대한 셈이다. 한편, 지난 1월 응대율은 40.5%였고 2021년 12월은 21.8%로 지금보다도 더 낮았다.
인력 충원이 절실한 상황이지만 사람 모으기는 말처럼 쉽지 않다. 현재 1339 콜센터 근무자는 469명인데, 다음 달 1339 콜센터 근무 예정 인원은 532명에 불과하다. A 씨는 인력 충원이 어려운 데는 이유가 있다고 했다.
“이틀 동안 하는 교육 중간에 짐 싸서 나가는 사람도 봤고, 콜 한 번 받아보고 안 나오는 사람도 많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무단 퇴사자는 무조건 나온다. 계약 연장은 보통 한 달 단위로 하는데 오히려 회사가 ‘을’이다. 업무 능력이 좋으면 회사가 먼저 재택근무 등의 조건을 제시하면서 연장해 달라고 하는데 요즘처럼 확진자가 폭증하면 일이 너무 힘드니까 다들 안 한다. 왜냐면 이건 정규직이 아닌 알바니까. 많이 뽑아도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나면 또 그만큼 많이 나간다.”
B 씨는 심리 상담 지원 등의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다고 했다.
“민원이 많은 업무다 보니 근무하면서 나도 알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많이 느꼈는데, 심리 상담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악성 민원도 있었지만 반대로 상담사의 노고를 알아주는 분들도 많았다. 하루는 한 민원인께서 통화를 마칠 무렵 ‘와, 엄청 친절하다. 덕분에 기분이 좋네요. 수고하세요’라고 하셨다. 별 말 아닌데 듣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내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해본 것 같다. 적정 수준의 업무 강도로 심리적인 부분을 조절하고 고용의 안정도 보장되었다면 분명 조금 더 오래 근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