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파 ‘팜파탈’ 카리스마 눈뜨다
‘섹시 스타’라는 관점에서 김혜수의 위력을 능가하는 여배우는 많지 않다. 2006년 <타짜> 이전부터, 처음으로 노출 연기에 도전했던 <얼굴 없는 미녀>(2004) 이전부터 김혜수는 에로틱한 매력으로 관객에게 어필했던 작품이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대중 문화의 대표적인 섹시 아이콘이었다.
이런 이미지 메이킹의 원인 중 80%는 시상식 패션 덕분이었다. 1993년부터 영화제 사회자 자리에 서기 시작한 그녀는 2000년 이후 한국 사회에도 레드 카펫 문화가 정립되고 여배우들의 드레스 패션이 부각되면서 단연코 눈에 띄는 존재가 되었다. 관객들은 그녀가 청룡영화제에서 보여주는 대담함을 넘어 가끔은 전위적인 느낌마저 들었던 이른바 ‘청룡 패션’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단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안타까운 건 ‘김혜수만 소화 가능한 패션’을 통해 쌓은 섹시 이미지가 작품과 캐릭터로 시너지 효과를 거두진 못했다는 점. 그런 의미에서 <타짜>는 너무 늦게 찾아온, 하지만 너무나 안성맞춤이었던 ‘김혜수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중학교 3학년 때 CF 모델로 연예계 경력을 시작한 김혜수는 연기자의 비전을 느리게, 하지만 꾸준히 발전시켜왔던 배우였다. 여기서 김혜수가 독특했던 건 10대 특유의 발랄함과 공존했던 성숙한 이미지였다. 그녀는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브라운관에서 노주현이나 박근형 같은 아버지뻘 되는 배우의 ‘부인’으로 등장했다. 이처럼 김혜수에겐 나이와 무관한 스펙트럼을 지니고 있었다.
1990년대에 그녀가 맡았던 캐릭터들은 섹스어필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오세암>(1990)에서 수녀, <잃어버린 너>(1991)에선 운명의 멜로 헤로인이 되었으며, <첫사랑>(1993)에선 첫사랑에 빠진 스무 살 여대생이었다. 드라마 <짝>(1994)에선 밝은 느낌의 스튜어디스였고, <닥터 봉>(1995)에선 노처녀 작사가였다. <미스터 콘돔>(1997) <찜>(1998) 등의 로맨틱 코미디,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1999)와 <국희>(1999) 등의 드라마에서도 섹시함과 거리가 멀었다.
그녀에게 어떤 변신의 계기를 제공한 작품은 옴니버스 호러 <쓰리>였다. 이전까지의 김혜수가 ‘양’이었다면 김지운 감독의 에피소드인 <메모리즈>에서 그녀가 보여준 이미지는 ‘음’이었고 퇴폐적이었다. 그리고 <얼굴 없는 미녀>(2004)부터 그녀의 본격적인 변신은 시작된다. 이것은 단순히 ‘육체적 노출’의 차원이 아니었다. 오히려 ‘정신적 노출’이 더 컸다. 이 영화에서 ‘미쳐가는 여자’가 된 그녀는 <분홍신>(2005)에선 페티시적 욕망에 휩싸인다. 그리고 <타짜>(2006)의 정 마담을 통해 그녀는 쟁쟁한 연기자들 사이에서 자칫하면 ‘홍일점’ 정도로 인식될 수 있는 상황을 뒤집어, 그들을 모두 압도하는 존재감을 보여준다. 어느덧 김혜수는 연기자로서도 카리스마를 지니는 배우가 된 셈이다.
<타짜> 이후 김혜수의 캐릭터는 어떤 경향성이나 트렌드와 무관한 자유로운 행보를 펼친다. <바람 피기 좋은 날>(2007)의 바람 난 유부녀, <좋지 아니한가>(2007)의 루저에 가까운 노처녀 무협 작가, <열한 번째 엄마>(2007)의 막장 인생. 이후 <모던 보이>(2008)의 1930년대 신여성 조난실, 드라마 <스타일>(2010)의 카리스마 충만한 박 기자 등이 이어졌다.
작품에서의 캐릭터 이미지와 스타로서의 사적 이미지 사이에 김혜수처럼 큰 갭이 있었던 연기자는 매우 드물다. 하지만 <타짜>를 통해 두 이미지가 드디어 만나 폭발했고 이후 김혜수라는 연기자에겐 거칠 것 없는 진짜 전성기가 왔다. 데뷔 때부터 스타였지만 이 배우에게 ‘대기만성’이라는 표현을 쓸 수 있는 건, 바로 그런 이유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