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거래액 9000억 돌파, 2000년대 중반 버블 연상…“2030 중심 시장, 열기 3년은 갈 것”
최근 미술품이 재테크가 되는 아트테크(Art+재테크의 합성어) 시대를 맞아 미술 시장이 점점 뜨거워지고 있다. 2020년 점점 달궈지던 시장은 지난해 거래액 9000억 원을 돌파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2021년 한국 미술 시장 결산’에 따르면 경매 시장 3280억 원, 화랑 4400억 원, 아트페어 1543억 원 등을 더해 약 9223억 원 규모로 집계됐다.
달궈지는 속도도 엄청났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미술 시장은 13.7% 감소해 3291억 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 1년 만에 3배 가까이 팽창한 셈이다. 2차 시장인 경매 시장도 수요가 몰리면서 낙찰 총액이 약 1158억 원에서 3280억 원으로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러다 보니 최근 샤넬이나 롤렉스 등 일부 명품 매장 앞에서 오픈 때까지 기다리다 뛰어가는 ‘오픈런’이 미술품 시장에도 등장했다는 소식이다. 최근 청신 작가 전시에는 텐트까지 등장했다. 신진인 청신 작가는 호당(그림 크기를 나타내는 표기) 12만 원 정도다.
해외 미술 시장에는 흔히 100호 기준 ‘1만 달러 클럽’이란 말이 있다. 100호 기준으로 1만 달러(우리 돈 약 1200만 원)를 받아야 프로 작가 세계로 들어왔다는 의미다. 청신 작가가 여기 해당하는 케이스다. 그런데 청신 작가 전시에 오픈런을 하는 이유는 뭘까.
미술품을 간략히 보면 1차 시장이 화랑이고, 2차 시장은 경매 시장이다. 요즘은 꼭 들어맞지 않을 수 있지만 대체로 화랑에서 산 미술품을 경매 시장에 내놓는 방식으로 거래한다. 1차 시장 가격과 2차 시장 가격이 정비례하진 않는다. 화랑에서는 호당 12만 원에 팔아도 수요가 많으면 경매 시장에서 호당 50만 원에도 거래될 수 있다.
예를 들어 호당 12만 원 50호 사이즈 그림을 사면 600만 원인데 이걸 그대로 경매 시장에 내놓으면 1200만 원 이상 수익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갤러리나 화랑에서는 구매 후 약 3년 매매 금지 등의 규정을 집어넣지만 신뢰에 기댄 형식적인 제약이다. 막상 구매자가 경매 시장에 바로 내놓아도 제재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물론 당장 팔아 수익을 만들지 않고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큰 ‘컬렉터’들도 많다. 갤러리에서는 한정된 수량만 공급만 해주고, 그 공급도 VIP들에게 일차적으로 돌아간다. 진정으로 작가를 좋아한다면 경매로 높은 시가를 얹어주고 사는 것 외에는 오픈런밖에 방법이 없다.
현재 미술품 시장 흐름과 비교해볼 만한 시기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전 국내 미술품 시장 버블이 꼽힌다. 국내 대표 작가 중 한 명인 A 씨는 “약 2004년부터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엄청난 버블이 있었다. 지금보다 훨씬 미술 시장이 뜨거웠다. 그때 작가들이 돈을 많이 벌었다”면서 “그런데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투자심리가 위축됐다. 거래 절벽이었다. 그때부터 지난해까지 작가들은 먹고살기 정말 어려웠다. 그때 3~4년 번 것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미술품 시장 버블은 언제까지 갈까. 그에 대한 힌트도 2000년대 중반 미술 시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 갤러리 대표 B 씨는 “앞으로 2~3년은 더 갈 것 같다”면서 “2008년 금융위기 전까지 미술 시장이 약 3~4년 동안 매우 좋았다. 이제 1년 정도 좋았던 것에 비춰보면 앞으로 3년은 더 가지 않을까 싶다”라고 짐작했다.
최근 투자방법이 늘어난 것도 시장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측면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온라인으로 쉽게 할 수 있는 ‘쪼개기 투자’, NFT(대체불가능토큰), 가상자산으로 미술품을 구매하는 DAO(탈중앙 분산화 자율조직) 등이 확대되면서 유동성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근 수십억 원 하는 미술품을 지분으로 쪼개 소액투자자들이 몇 만 원만 내고 일부를 살 수 있도록 하는 쪼개기 투자 업체가 신설되고 있다.
현재 시장이 2000년대 중반 미술 시장보다 더 좋다는 분석도 있다. 약 20년 경력 미술 시장 컬렉터는 “현재 시장은 20대, 30대가 중심이다. 예전에는 40대, 50대가 주축이었다. 젊은 세대는 지속해서 돈을 벌고 그 수입으로 원하는 작품을 계속해서 살 수 있다. 반면 50대 이상은 일정 시기가 지나면 수입이 사라지면서 구매력이 줄어든다. 앞으로 미술 시장이 더 갈 것으로 보는 이유”라고 말했다.
물론 미술 시장이 더 뜨거워진다고 하더라도 개별 작가의 작품이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중견 작가 C 씨는 “내가 2000년대 초반 작품을 할 때 스타 작가 가운데에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도 있다. 반짝 스타의 작품은 현재 거래조차 되지 않는다”라면서 “작가는 10년으로 평가 받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그 결과로 평가 받는 사람이다. 일시적인 인기나 명성에 휩쓸리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앞서의 갤러리 대표 B 씨는 “지금 시장에 진입한 사람은 하락장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과거 10년 이상 계속된 무서운 하락장을 경험해봤다면 지금처럼 무작정 구매할 수는 없을 텐데 걱정도 든다”고 말했다.
국내 최고 미술대학으로 꼽히는 홍익대 전직 교수 D 씨도 비슷한 맥락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내가 가르치다 보면 너무 재능이 뛰어나서 ‘얘는 무조건 되겠다’고 생각한 제자들이 있다. 최고의 칭찬은 직접 그림을 사주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사준 제자들이 다 잘되진 못했다”면서 “다른 사람보다 미술에 좀 더 지식이 있는 내가 직접 가르치면서 ‘되겠다’는 느낌을 받아도 성공을 맞힐 수는 없다. 그래도 조언을 하자면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끈기 있는 사람을 선택하라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