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간 적자 최대 20조 전망 속 대통령 당선인도 전기료 인상 반대…“탈원전 폐지해도 한전에 도움 될지 미지수”
3월 16일 한전은 2021년 12월부터 2022년 2월까지 3개월 치의 연료비 변동분을 반영해 kwh당 3원 올리는 내용의 2분기 전기요금 인상안을 정부에 제출했다. 올 4월, 10월에 두 차례로 나누어 연료비를 인상할 계획이었던 기존 방침에 맞춘 행보다. 그러나 전기요금 조정 발표 일정을 하루 앞둔 3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는 관계부처가 전기료 조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어, 협의 결과 회신 후 이를 확정하라는 의견을 한전 측에 전달했다.
한전의 지난해 적자 규모는 5조 8601억 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의 여파로 전기 생산 연료인 석탄,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급등한 까닭이 크다. 올해도 심상치 않다. 메리츠증권은 최근 가파르게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는 유가, 석탄가, SMP(계통한계가격) 추세를 반영해 올해 영업적자 규모를 19조 9000억 원으로 전망했다. 그나마도 올 4월, 10월 예정된 요금 인상을 반영한 전망치다. 하지만 이번 산업부의 결정 연기로 2분기 요금 인상이 불투명해지면서 적자폭이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다.
한전의 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는 전기요금이 비현실적으로 낮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한전의 전기요금은 kwh당 29.1원 수준으로 2013년 이후 8년째 동결되다가 지난해 4분기에 한 번 kwh당 3원 인상된 것이 전부다. 한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전체 평균과 비교할 때 국내 주택용 전기요금과 산업용 전기요금은 각각 61%, 88% 수준이다. 전기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의 변동분이 전기요금에 즉각적으로 반영되지 않는 탓이다.
정부는 지난해 1월 ‘연료비 조정요금’을 신설하면서 3개월에 한 번씩 연료비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할 수 있도록 바꿨다. 그러나 연료비 조정단가의 분기별 최대 변동 폭을 kwh당 3원으로 제한하고 연간 변동폭은 5원까지 허용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나마도 정부의 잇따른 요금 인상 유보 조치로 이마저도 유명무실화됐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실제 지난해 1분기에 연료 가격이 떨어지면서 전기요금도 kwh당 3원이 인하했다. 이후 가격 인상 요인 발생했지만 정부가 3분기까지 요금 인상을 동결했다. 지난해 4분기에 kwh당 3원이 인상됐지만 올해 1분기 전기 요금은 다시 동결됐다.
정부의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발 맞춘 에너지 전환 정책도 한전의 재무적 부담을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문재인 정부가 에너지전환정책을 추진하면서 2017년 1조 9000억 원 수준이었던 기후환경비용은 점차 늘어 이번에 처음으로 4조 원대에 접어들었다. 한전의 올해 기후환경비용은 지난해보다 15% 이상 증가한 4조 2000억 원에 달한다. 약 4조 원에 달하는 신재생에너지공급의무화제도(RPS) 비용과 2000억 원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비용을 합한 금액이다.
한전 측은 지난해 RPS 비율이 7%에서 9%로 상향된 것을 적자의 한 원인으로 꼽고 있다. RPS는 풍력, 태양, 바이오매스 등의 재생 에너지로 발전량의 일정 비율을 채워야 하는 제도다.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보급을 확대하기 위해 추진 중인데 500메가와트(MW) 이상의 발전 설비를 보유한 한전 발전자회사 등 22개 발전소가 고스란히 비용을 정산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상향하기로 결정하면서 산자부는 올해 RPS 의무이행 비용을 12.5%로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올해 5월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변화가 있을지 주목되고 있으나 한전을 둘러싼 상황은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 지난 대선에서 올해 4월로 예정된 전기요금 인상을 백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당선됐다. 현재는 산업부에서 인수위원회와 전기료 인상 논의를 이어가고 있으나 아직 결론이 나지 않은 상황이다. 한전은 올해 전기요금 동결 요인만으로 약 16조 원의 추가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탈원전 정책으로 원전 이용률이 줄어들자 단가가 비싼 LNG 비중을 늘린 탓에 부채가 크게 늘어났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전 측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탈원전 정책은 신규원전 건설을 중단하고 수명이 다 된 노후 원전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기조로 하기 때문에 아직 발전량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 한전 측에서는 현재 2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고 2030년에도 원전이 24%의 발전량을 담당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원전 비중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한전 관계자는 “원전 이용률이 줄어들긴 했지만 정비 등으로 인해 발전이 중단된 탓이 대부분이고 아직까진 탈원전 정책의 영향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같은 이유로 새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폐지한다고 해도 당장 한전의 적자가 해소되진 않을 전망이다. 박종운 동국대학교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새 정부가 원전을 새로 짓는다고 해도 부지 선정부터 매입까지만 족히 5년은 걸릴 것이고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위해 기기를 점검하고 안정성 평가하는 데도 그만한 시간이 걸린다”라며 “결국 정권 내내 추가 비용만 소요될 뿐 실질적 혜택을 보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한편,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원전을 기저 발전으로 사용하면서 재생에너지 확대 폭은 줄여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한전 측은 “신규 재생에너지 건설 압력이 줄어들면 한전 입장에서는 재무적으로 낫긴 하지만 당선인 공약에 따라 원자력 발전을 강화할 경우 추가 비용 소요의 여지가 있어 지켜보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