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관할권 없는 배당 두고 ‘의도적 힘 빼기’ 의혹…정권이양기 산업부 강제수사 배경 두고 해석 분분
하지만 당시 서울동부지검에서는 관할권(여러 검찰청 사이에서 어느 검찰청이 사건을 담당·처리하느냐 하는 수사권의 분쟁관계를 정해놓은 것)이 없던 상황이다. ‘수사할 명분이 없다’는 얘기도 나왔지만 묵살됐다고 한다. 청와대를 겨눈 서울동부지검의 수사가 확대되자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취지의 대검 메시지가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에 전달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당시 수사팀 간부들은 모두 좌천성 인사를 받고 검찰을 떠나야만 했다. 3년 만에 다시 시작된 블랙리스트 수사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은 이유다.
#3년 전 환경부 사건 내막
서울동부지검 기업·노동범죄전담부(부장 최형원)는 지난 3월 25일 산업부 원전 관련 부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검찰은 압수한 자료를 토대로 산하기관장이 부당하게 퇴진한 정황이 있는지 확인 중인데,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는 대선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승리로 끝난 지 보름여,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가 끝나 기소된 지 3년여 만에 이뤄졌다.
사실 첫 시작은 서울동부지검이 아니었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2018년 말 김태우 당시 수사관의 폭로와 함께, 그해 12월 27일 서울중앙지검에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 박찬규 환경부 차관, 주대영 전 환경부 감사관, 이인걸 전 특감반장 등 5명에 대해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로 고발했다.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박근혜 정권 당시 인사들을 찍어내려 했다는 의혹이었다.
사건은 서울중앙지검이 아닌 서울동부지검으로 옮겨진다. 당시 이를 놓고 검찰 안팎에서는 ‘왜 동부지검이냐’고 말이 많았다고 한다. 관할권이 서울동부지검에 없는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서울동부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서울동부지검에 올 이유가 전혀 없는 사건이었다”며 “범죄행위가 발생한 장소는 청와대나 서울역 등 모두 서울중앙지검이 관할인 곳이었는데 관할권이 없는 서울동부지검에 배당된 것을 놓고 반발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통상적으로 관할권이 있어야 수사를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때문에 관할권이 없는 사건의 경우 ‘구속을 해서라도 관할권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가 검찰 내에서는 공공연하게 나오기도 한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은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를 한창 진행 중이었는데, 수사 여력이 부족하다는 이유 등으로 이 사건을 맡지 않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6개월여 만에 제기된 청와대 관련 수사를 모두 기피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대목이다.
앞서의 동부지검 수사팀 관계자는 “대검찰청에서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하라고 지시가 내려와서 원치 않는다는 취지로 얘기를 했지만 대검이 이를 강행하면서 ‘빨리 압수수색을 하라’고 지시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며 “수사 초반에는 대검 지시로 빠르게 수사가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주진우 부장검사)는 고발장이 접수된 지 보름여 만인 2019년 1월 14일,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환경부와 인천 소재의 한국환경공단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사건 배당 직후인 4일 김정주 전 한국환경산업기술원 환경기술본부장 등을 참고인으로 조사하는 등 수사는 빠르게 진행됐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범죄 혐의들이 드러나자 대검의 수사 지휘가 조금 달라졌다는 게 당시 수사팀 관계자의 설명이다. 앞선 관계자는 “청와대 압수수색 시도 등 수사 과정에서 명백한 범죄 혐의들이 드러나면서 추가 압수수색 및 소환조사, 구속영장 청구 등의 의견이 대검에 전달됐는데 보완 지시 등 신중하게 수사하라는 취지로 지시가 내려와 ‘수사를 원치 않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실제로 서울동부지검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 김은경 환경부 장관 등을 기소하는 데 성공했지만, 추가로 고소된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은 진행하지 못했다. 수사팀 규모 한계 등 여력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는데 당시 수사팀 내에서는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더 쉽게 기소할 수 있는 사건”이라는 반응이 있었다고 한다.
2019년 상반기 내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한찬식 서울 동부지검장, 권순철 서울동부지검 차장검사, 주진우 서울동부지검 형사6부장검사 등 지휘부는 좌천성 인사를 받고 사표를 냈다. 당시 대검 윗선에서 ‘수사 확대’를 원치 않았는데, 수사팀이 이를 무시하고 강행한 탓에 받아든 결과라는 게 중론이었다. 다만 서울동부지검 수사팀이 기소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은 직권남용 등 혐의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아 수사 정당성은 확인됐다.
앞선 관계자는 “당시 한찬식 지검장은 고검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승진하지 못했고, 동남북서(서울동부지검·서울남부지검·서울북부지검·서울서부지검) 차장검사들 중에 동부의 권순철 차장검사만 검사장으로 승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대검에서 수사를 지휘했던 이성윤 당시 대검 강력반부패부장(현 서울고검장)은 배당 과정 및 수사 지휘 내용에 대해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문제가 될 부분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대검에 다 기록이 남아 있을 것”이라는 취지로 답했다. 한편 문무일 당시 총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사절한다고 밝혔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흐름은?
대선 이후 다시 시작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장 사퇴 압박, 일명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해서 당시 수사팀 관계자는 “환경부 사건보다 더 구조가 명확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이 피해자들의 구체적 진술 없이 시작한 사건이라면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산하 공공기관장들이 2019년 이미 우리한테 피해 진술을 구체적으로 다 했던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주진우 당시 형사6부장검사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진술 조사 등을 다 끝내놓고 다음 수사팀이 언제든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놨었다”는 취지로 말하기도 했다.
서울동부지검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단을 보고 수사를 재개했다”고 설명하지만, 법조계에서는 ‘정권 눈치보기’라는 비판이 나온다. 검사장 출신의 변호사는 “지난 3년여 동안 일선 검찰청과 대검이 정부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면서 우여곡절을 겪은 사건이 너무 많다”며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가 지금이라도 재개된 것은 환영할 만하지만, 거꾸로 검찰이 이렇게 정치권의 눈치만 보면서 움직여서 욕을 먹는다는 것도 자각해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서환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