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랭킹 1위들 조기 탈락, 일본 신흥강자 우에노 4단 우승…AI 영향 상향평준화 “절대 강자 없다”
#최정, 낙관이 패인
일본기원이 주최하는 센코컵은 국제대회라기보다는 일본 국내 기전의 성격이 강하다. 8강 토너먼트로 열리는데 일본 5명, 한국 1명, 중국 1명, 대만 1명이 출전한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4년 연속 최정 9단과 위즈잉 7단이 출전하고 있다. 주최 측 초청 케이스다.
어찌 보면 한국과 중국에 비해 실력이 다소 떨어지는 일본 여자기사들의 분발을 돕기 위해 만든 대회라고도 할 수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최정의 라이벌 위즈잉이 대회 3연패(連覇)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 위즈잉이 이 대회에선 유독 강했다.
센코컵은 여자대회치고는 우승상금도 적지 않다. 우승자에겐 500만 엔(약 4900만 원)이 주어지며 준우승 150만 엔, 3위 100만 엔, 4위 50만 엔이다. 2018년 창설 당시의 우승상금은 1000만 엔이었다. 여자 대회 중 가장 많은 상금이 걸렸던 센코컵은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인해 대회 방식이 온라인 대국으로 바뀌면서 3회부터 상금이 절반으로 줄었다.
셰이민 7단을 상대한 최정은 초반부터 형세를 리드해 나갔으나, 중반 들어 추격을 허용했고 역전을 당했다. 중반 한때 셰이민 7단의 흐름이 꼬이면서 실수가 나왔으나 제대로 추궁하지 못했다. 상대 전적에서 3전 전승으로 앞서 있었고, 셰이민이 일본에서도 전성기를 지나 내리막길을 걷는 기사였기에 최정으로서는 아쉬울 수밖에 없는 결과였다.
송태곤 9단은 “최정 9단이 초반 너무 잘 풀린 것이 오히려 화가 된 것 같다”면서 “최정 9단 특유의 공격적 감각이 실종됐는데 이는 초반부터 형세가 너무 유리했던 탓에 끝까지 낙관한 것이 패인이라고 분석했다”고 말했다. 송 9단은 또 “최정 9단이 국제 기전에서 안정적인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한 수 아래라고 생각되는 기사들을 쉽게 뿌리치는 방법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일본, 첫 국제기전 우승
올해 우승은 일본의 우에노 아사미 4단이 차지했다. 한국의 최정, 중국 위즈잉, 일본 후지사와 리나 등 각국의 랭킹 1위들이 조기 탈락한 것도 이번 대회 이채로운 점이다. 21세의 우에노 4단은 첫 판에서 위즈잉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고 준결승전에서 후지사와 리나, 결승에서 대만의 루위화 4단을 꺾었다.
우에노는 일본 여자바둑계의 신흥 강자다. 현재 여류기성전과 약리전 2개의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으며, 통산 7회 우승 경력이 있다. 우에노 4단의 센코컵 제패는 일본 여자기사로는 첫 국제기전 우승이다.
최근 일본 바둑은 오랜 침체기에서 벗어나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 막을 내린 농심신라면배에서 이야마 유타 9단이 한국과 중국의 초일류 기사들을 꺾고 4연승을 올리며 한국과 최후까지 우승컵을 다툰 것은 적지 않은 성과. 게다가 여자 쪽에서는 혜성처럼 등장한 신예 나카무라 스미레 2단(13세)이 여류 명인전 도전권을 따내는 등 일본 바둑계 전체의 분위기가 올라가고 있다.
#여자바둑 판도는 춘추전국시대로
일본바둑이 경쟁력을 갖추게 된 것은 역시 AI(인공지능)의 영향이 크다. 과거에는 톱클라스 기사들을 다수 보유한 나라들이 강했지만, AI가 등장하고부터는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우에노 4단을 비롯해 최근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이치리키 료, 시바노 도라마루, 세키 고타로, 나카무라 스미레 등 젊은 기사들은 AI를 이용한 공부가 잘돼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앞으로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여자바둑의 상향 평준화는 일본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신예들의 성장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2007년생 김은지는 한 장 남은 아시안게임 출전 티켓에 도전 중이고, ‘여자 농심배’라 불리는 제1회 호반배 세계여자바둑패왕전 국내 예선에서는 2000년 이후 세대인 허서현 3단, 이슬주 초단, 김선빈 2단, 박소율 2단 등이 선배 기사들을 제치고 전면에 나설 채비를 마쳤다. 이들의 목표는 당연히 여자랭킹 1위 최정 9단이다.
비록 최정 9단이 우승을 놓쳤지만 바둑 전문가들은 이번 센코컵 결과가 한국이나 중국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결과라고 분석한다. 과거 1990년대처럼 한중일이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새로운 기전 창출과 흥행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중국 역시 위즈잉 7단 이후 저우홍위 7단, 우이밍 2단, 탕자원 2단 등 재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 향후 여자바둑계 판도는 한중일의 치열한 격전이 예상된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