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유진에 타이틀전 2연패 ‘설욕’ 자존심 지켜…김은지 등 세대교체 주자들 급성장 여자 바둑 점입가경
지난 1월 28일 경기도 판교 K바둑 스튜디오에서 벌어진 2021 호반 여자최고기사결정전 결승5번기 제4국에서 최정 9단이 오유진 9단에게 189수 만에 흑 불계승을 거뒀다. 이로써 결승전 1국과 2국을 잇달아 승리한 최정은 4국마저 승리하며 종합전적 3-1로 호반 여자최고기사결정전 우승컵을 안았다.
#최정, 결승맞대결에서 5승 2패 리드 지켜
1국은 154수 만에 불계승, 2국도 157수 만에 끝나 싱겁게 막을 내릴 것 같았던 두 라이벌 간의 대결은 벼랑 끝에 몰린 오유진이 3국에서 189수 만에 불계승을 거두면서 다시 긴장감이 감돌았다.
3국이 끝난 후 오유진은 “1국과 2국을 계속 졌던 것보다 내 바둑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아쉬웠기 때문에 후회 없는 바둑을 두고 싶었다”며 “많은 분들이 최종국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꼭 5국까지 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최종국이 된 4국에서는 최정이 하변에서 시작된 대형 전투와 우상 공방의 득점으로 189수 만에 불계승을 거뒀다. 후반 찾아온 방심으로 인해 따라잡힐 뻔한 위기도 있었으나 재차 상대의 엷음을 찔러 차이를 벌렸다.
최정으로서는 귀중한 승리다. 타이틀전 2연패를 안긴 오유진에 대한 설욕과 함께 일인자 지위를 굳게 지켰다. 지난 연말 오유진 9단을 상대로 여자국수전 결승에서 5연패를 저지당했고, 여자기성전 결승에서 4연패를 저지당했던 최정이었다.
결승전을 승리로 마무리한 최정은 “초반부터 복잡한 변화가 나와서 시간을 많이 썼다. 나중에 중앙 전투도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어려웠다”면서 “3-0으로 이기고 싶었는데 3국을 졌을 때는 많이 괴로웠다. 하지만 4국전까지 다시 마음을 추스를 시간이 있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만일 4국과 5국이 곧바로 이어졌으면 쫓기는 쪽인 내가 어려웠을 것”이라며 결승전이 쉽지 않았음을 내비쳤다.
국내 여자기전으로는 최초로 채택한 5번기 결승전은 네 판으로 막을 내렸다. 최정과 오유진의 상대전적은 최정 기준으로 29승 7패. 일곱 번 격돌한 결승 맞대결에서도 최정이 5승 2패로 리드를 지켰다. 이를 두고 바둑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평했다.
“최근 오유진 9단이 여자국수전과 여자기성전에서 연속으로 최정 9단에게 잇달아 승리를 거두면서 여자바둑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은 고무적이다. 여기에는 오유진의 기량이 올라온 것도 큰 몫을 했지만 최정의 대국수가 과도해 제 컨디션이 아니었던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렵다. 최정은 최근 몇 년간 계속해서 연간 대국수 100국을 넘기고 있는데 이는 신진서 9단이나 박정환 9단보다 많은 수치다. 최정 9단이 요즘 운동을 통한 건강관리와 육식을 멀리하는 등 다양한 식단 관리를 병행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하루빨리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것이 랭킹1위 자리를 지키는 최우선 대책이 될 것이다.”
#여자바둑, 신구 다툼 치열
한편 여자바둑은 최근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다. 최정과 오유진의 치열한 정상 다툼도 재미있지만, 최근 조승아 5단이 가세하면서 트로이카 체제를 구축해 새로운 볼거리가 생겼다.
여기에 AI(인공지능)를 이용한 치팅 사건으로 인해 1년간 자격정지를 받았다가 돌아온 김은지 2단이 가세하면 여자바둑계 판도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미궁 속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김은지는 최근 열린 의정부국제바둑신예단체전 대표 선발전에서 한 장이 걸린 여자부 티켓을 거머쥐며 본격적인 타이틀 획득 사냥에 시동을 걸었다. ‘최정을 뛰어넘을 수 있는 기재를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 김은지는 이제 16세(2007년생)여서 더욱 기대가 크다.
특히 신예군 중에서는 김은지 외에도 지난해 여자바둑리그를 통해 이름을 알린 2006년생 정유진 2단, 2022 메디힐 밀레니엄 여자최강전에서 김은지를 꺾은 데 이어 우승까지 내달린 김효영 초단(2006년생), 준우승의 김민서 초단(2007년생) 등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여자바둑은 신구 세대교체도 문제없다는 평을 듣고 있다.
여기에 기존 강자인 김채영 7단, 김혜민 9단, 이민진 9단, 오정아 5단 등도 아직 신예들에게 활동 무대를 내줄 생각이 없어 2022년에는 여자바둑계 판도가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예측된다.
호반그룹이 후원하는 2021 호반 여자최고기사결정전의 우승상금은 3000만 원, 준우승상금은 1000만 원이다. 제한시간은 각자 2시간에 1분 3회씩의 초읽기가 주어졌다.
유경춘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