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부름받은 ‘원조 쭉빵걸’
한국영화의 전성기였던 1950~1960년대. 이 시기 영화 문화 중 하나는 한국 여배우에게 외국 스타의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이었다. 특히 글래머 배우들에 대한 팬들의 사랑은 각별했고, MM(마릴린 먼로), BB(브리지트 바르도), CC(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같은 앙증맞은 애칭을 부여하기도 했다.
이시기 이빈화는 최지희와 함께 BB, 즉 ‘한국의 브리지트 바르도’ 자리를 놓고 경쟁했던 글래머 스타다. 1934년 서울 돈암동에서 태어난 이빈화(본명 이숙한)는 학창 시절부터 무용과 음악에 재능을 보였고, 고등학교 졸업 후 국악원 고전무용연구소에서 3년 동안 수련을 받기도 했다. 이 3년은 그녀가 영화계에 진출하는 발판이 되는데, 윤봉춘 감독(연극배우 윤소정의 아버지이자 독립운동가)의 애국주의 영화 <성불사>(1952)에 승무를 추는 여주인공 역을 맡으면서 데뷔했다. 이후 그녀는 영화 속에서 종종 춤추는 모습을 보여줬다.
1961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 만난 프랑스 최고의 스타 이브 몽탕이 “한국엔 당신처럼 키가 큰 여성들이 많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정확한 수치는 알 수 없지만 당대 한국의 여배우 중 이빈화는 최장신이었고 서구적인 마스크에 글래머러스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녀가 본격적인 스타덤에 오른 건 한국전쟁이 끝나고 출연한 한형모 감독의 <청춘 쌍곡선>(1956). 자유분방한 부잣집 딸로 등장해 요염한 모습으로 어필하며 브리지트 바르도는 물론, 소피아 로렌, 지나 롤로브리지다 등 유럽의 이국적 육체파 스타들과 비교되었다. 박계주의 베스트셀러를 영화화한 <순애보>(1957)는 그녀를 확고한 위치에 올려놓은 작품. 현대적이며 능동적인 역할을 주로 맡았던 그녀가 예외적으로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한 작품인데, 함께 출연한 신인배우 김의향의 육감적인 핀업걸 스타일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 후 ‘스타의 밤’이 개최된 자리에서 이빈화는 무용 솜씨를 선보이며 수많은 남녀 관객들을 매혹시켰다고 한다.
이빈화의 스타 이미지는, 전쟁 후 재건과 혼란의 시대를 살던 1950~60년대 남한 대중들의 결핍을 채워주는 그 무엇이었다. 미국 문화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가치관의 유입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급격한 발전 속에서, 화려하고 관능적인 것에 대한 대중의 욕망은 점점 커지고 있었고, 육체파 여배우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은 그 상징적 모습이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빈화는 단연 돋보이는 존재였다. 1961년 5월에 영화잡지 <국제영화> 기사에 실린 글래머 여배우 채점표를 보면, 이빈화는 엄앵란, 나애심, 전계현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엔터테이너들을 제치고 단연 1위의 자리에 올라 있다. 1958년에 나온 <신영화>라는 잡지엔 비키니 차림을 포함한 화보와 함께, “육체파 배우인데다 미혼이라는 것이 더 남성팬들을 매혹시키는 점”이라며 그녀의 스타덤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이빈화는 여배우에게 ‘육체’가 중요한 덕목(?)이 되기 시작한 세대의 첫 스타였던 셈이다.
하지만 그녀의 현대적인 느낌은, 가부장적인 멜로드라마가 상업영화의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그다지 어울리는 이미지는 아니었다. 결국 그녀는 ‘쎈’ 역할을 중심으로 하는 세련된 조연 쪽으로 캐릭터가 고정된다. 후기작이며 김승옥의 <무진기행>을 영화화한 <안개>(1967)에 주인공 기준(신성일)의 아내 역으로 출연한 이빈화에 대해, 연출자인 김수용 감독은 “세련되고 부유해 보이며 남자보다 연상으로서 위엄 있어 보이는 여성 캐릭터로는 이빈화를 빼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난주에 소개한 윤인자를 비롯, 노경희, 이민자, 나애심(가수 김혜림의 어머니), 안나영, 김삼화, 도금봉 등 1950년대에서 1960년대로 넘어가는 시기에 등장한 수많은 육체의 여신들은 당시 한국영화계를 가장 화려하게 만들었던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도금봉처럼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배우도 있었지만, 그녀들은 대부분 개성파 조연에 머물다 은막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빈화도 마찬가지였다. 1960년대 말에 실질적으로 은막을 떠난 그녀는, 한때의 명성이 무색하게 급격히 대중에게 망각되고 말았다. 하지만 요염함과 이국적 정취를 함께 지닌, 남성 관객들은 물론 여성 팬들에게도 사랑 받았으며 질투와 선망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모습은, 분명 시대를 앞서간 당당한 여성상이었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