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J중공업-상인 간 갈등 해결 못해…신세계 “신세계동서울PFV 매각 계획 없어”
동서울터미널 현대화사업은 2000년대 초반부터 논의됐던 사안이다. 광진구청은 2003년 동서울터미널 부지에 지하 6층, 지상 46층 규모의 건물 건립을 추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근 상인들의 반발, 교통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논의 수준에 그쳤다. 이후로도 HJ중공업이 관련 사업을 추진했지만 재무 문제로 인해 본격적인 진행이 어려웠다. 2000년대 후반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0년대 중반 조선업계 불황 등이 이어진 탓이다.
그럼에도 HJ중공업은 동서울터미널 현대화사업에 대한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결국 HJ중공업은 2019년 7월 동서울터미널 개발을 위해 신세계프라퍼티와 합작투자계약을 체결하는 데에 성공했다. HJ중공업과 신세계프라퍼티가 설립한 합작투자회사를 통해 동서울터미널을 개발한다는 것이었다. 2019년 10월 합작투사회사 신세계동서울PFV가 설립됐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신세계동서울PFV 지분 85.05%를 갖고 있고, HJ중공업이 9.95%, KDB산업은행이 5.00%를 각각 보유하고 있다. 이후 HJ중공업은 동서울터미널 부지를 신세계동서울PFV에 매각한다고 공시하기도 했다.
신세계프라퍼티가 신세계동서울PFV 지분 대부분을 보유하고 있으므로 사업권도 사실상 신세계에 넘어갔다. 당시 HJ중공업의 부채비율이 900%가 넘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음을 고려하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일각에서는 신세계그룹의 복합쇼핑몰 ‘스타필드’가 동서울터미널에 들어설 것으로 예상한다. 광진구에 건설 중인 한 아파트는 분양 광고에 “동서울터미널 부지에 2024년 신세계 스타필드 입점 예정”이라고 홍보하기도 했다. 신세계프라퍼티는 복합시설을 계획하고는 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결정된 것이 없다고 설명했다.
동서울터미널 현대화 사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였지만 아직까지 본격적으로 진행된 것은 없다. HJ중공업과 동서울터미널에 입점한 상인들의 갈등이 불거지면서 법적 다툼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HJ중공업은 2018년 상인들과 ‘재개발을 진행하면 조건 없이 퇴거한다’는 내용의 화해조서를 작성한 것을 근거로 상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그러나 상인들은 화해조서와 관련한 구체적 내용을 들은 적이 없다면서 일제히 반발했다.
동서울터미널에 입점한 한 상인은 “영업을 할 수 없다는 협박을 받고 사무실을 찾아갔더니 그들은 우리의 주민등록증과 인감도장을 요구했고, 추가 설명이나 동의 없이 어떤 서류에 일방적으로 도장을 찍었다”며 “상인들의 권리를 포기하는 변호사 위임장이었으며 해당 변호사는 화해조서 합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상인들과 단 한 번의 상의도 없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도 HJ중공업을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지난해 “동서울터미널은 HJ중공업이 상인들에게 퇴거 관련 사항이나 보상금과 관련해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현행법의 맹점을 악용해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상인들의 어떠한 권리도 보장해주지 않는 전형적인 나쁜 수법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HJ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HJ중공업이 1심과 2심 모두 승소했고, 상고심은 심리불속행 결정을 내렸다. 심리불속행이란 원심에 중대한 법령 위반 등 특별 사유가 없는 경우 본안 심리 없이 상고를 기각하는 것을 뜻한다. 이후 대부분 상인이 동서울터미널을 떠났지만 일부 상가에 대한 명도소송이 끝나지 않아 아직 입주 중인 상인도 있다.
이들 상인이 모두 동서울터미널을 떠나야 동서울터미널 현대화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 신세계동서울PFV는 상인이 모두 퇴거한 후 서울시의 인가를 받아 개발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다. 사업이 늦어지면서 동서울터미널 인수 잔금 지급도 늦어지고 있다. 신세계동서울PFV의 동서울터미널 인수가는 4025억 원이었다. 여기서 계약금인 1207억 5000만 원을 2019년 10월에 지급하고, 중도금 805억 원과 잔금 2012억 5000만 원은 2021년 안에 지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소송으로 인해 사업이 늦어지자 중도금과 잔금 지급일을 ‘2022년까지’로 변경했고, 최근에는 ‘중도금은 2022년 6월, 잔금은 2023년까지’로 다시 변경했다.
HJ중공업은 중도금과 잔금 지급 시기가 빠를수록 좋다. HJ중공업은 지난해 동부건설에 피인수된 후 경영정상화에 나서고 있지만 재무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HJ중공업의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1조 9532억 원이고, 부채비율도 452.13%에 달한다. 신세계동서울PFV로부터 잔금을 받고 동서울터미널 현대화사업을 진행하면 HJ중공업 재무 개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HJ중공업 관계자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에서 업무를 진행하다보니까 시간이 걸리는 부분이 있다”며 “상인들에게 배려할 수 있는 부분은 많이 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세계동서울PFV는 지난해 8월 서울시에 사전협상 사업계획안을 제출하는 등 기본적인 절차는 진행하고 있다. 사전협상제도는 효율적인 개발을 위해 서울시와 민간사업자가 절차를 협의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협상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발표된 내용은 없다.
오히려 일각에서는 신세계프라퍼티의 신세계동서울PFV 매각 가능성을 제기한다. 사업이 늦어지는 데다 비판도 만만치 않고, 인수를 원하는 건설 업체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동서울터미널 부지의 공시지가는 2019년 ㎡당 695만 원에서 올해 830만 원으로 상승했다. 해당 부지는 3만 6704㎡이므로 부지 가치는 2550억 원에서 3046억 원으로 오른 셈이다. 실제 거래가는 공시지가보다 통상적으로 높게 측정되므로 신세계프라퍼티가 신세계동서울PFV를 매각하면 상당한 차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신세계프라퍼티 관계자는 “신세계동서울PFV를 매각할 계획은 없다”며 “HJ중공업과 상인 간의 소송에 신세계프라퍼티가 관여하기는 어렵다”고 전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