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뱅크 사상 첫 흑자 ‘업비트 제휴 덕분’ 평가…고팍스 제휴도 알고보면 전북은행이 더 적극적
최근 만난 한 벤처캐피털(VC) 심사역의 말이다. 지난해 가상자산거래소는 최대 호황기를 맞았다. 3월 31일 국내 최대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회사 두나무 정기 주주총회 결과는 금융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성적을 발표했다. 이날 두나무는 매출 3조 7046억 원, 영업이익 3조 2714억 원을 올렸다고 공개했다. 영업이익률이 무려 88%에 달했다.
두나무뿐만 아니다. 4대 가상자산거래소 2위인 빗썸도 매출 1조 원을 넘겼다. 지난해 빗썸은 매출 약 1조 99억 원을 달성했고, 약 7821억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빗썸 영업이익률은 약 77%에 달했다.
벤처캐피털 심사역이 두나무에 관심 가진 이유는 높은 영업이익률 때문이다. 지난해 2월 한화투자증권은 업비트 지분 6.2%를 583억 원에 취득했다. 그런데 이 지분 가치는 1년도 안 돼 20배 이상 껑충 뛰었다. 가상자산거래소의 비상식적일 정도로 높은 영업이익률이 반영된 까닭이다.
이런 관심은 벤처캐피털뿐만이 아니다. 최근 가상자산거래소를 두고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에서도 관심이 있다는 업계 소식이 나오고 있다. 은행들이 업비트 성공에 큰 득을 본 케이(K)뱅크 사례를 분석하고 있다는 얘기였다. 케이뱅크는 업비트와 독점적으로 제휴한 은행이다.
지난해 케이뱅크는 출범 이후 처음으로 연간 흑자 달성에 성공했다. 지난해 케이뱅크는 224억 원 당기순이익을 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케이뱅크가 순이익을 내는데 업비트와 제휴가 결정적이었음을 부정하긴 누구도 어려울 것 같다. 무엇보다 은행은 회원 유치를 가장 어려워하는데 케이뱅크는 회원이 1년 새 3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업비트 제휴 효과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케이뱅크 사례를 본 시중은행과 인터넷은행이 가상자산거래소와의 협력을 긍정적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케이뱅크 사례 이전에는 보수적인 은행업 특성상 가상자산거래소와 협력을 한다는 것 자체를 매우 꺼려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게 일반적 평가다. 한 예로 NH농협은행은 가상자산거래소와 일반적인 계약 기간보다 훨씬 짧은 6개월 단위 재계약을 제시하는 등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현재 가상자산거래소와의 협력은 업비트-케이뱅크, 빗썸·코인원-NH농협은행, 코빗-신한은행으로 3개 은행이 전부다. 여기에 최근 전북은행이 고팍스와 실명 확인 입출금계정 발급 계약을 맺었다. 고팍스에 대한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FIU)의 현장 검사가 끝나면 4개 은행이 가상자산거래소와 협력하게 된다. 그런데 이번 고팍스-전북은행 계약을 두고도 또 다른 의견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가상자산 시장에 대한 정부 규제가 시작됐다. 고팍스는 정부가 제시한 기한 내에 은행과 실명 계좌 발급 계약을 하지 못하면서 원화 마켓을 닫아야 했다. 지난 2월 전북은행과 협력을 통해 뒤늦게 원화 입출금 통로를 열 수 있게 됐다. 대부분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자들은 고팍스가 뒤늦게 숨통을 틔우게 된 이번 계약을 두고 고팍스의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가상자산 시장 상황에 밝은 한 관계자는 반대 의견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보통 원화 마켓이 없는 고팍스가 생존을 위해 전북은행을 뚫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알기로 이번 계약은 고팍스보다 전북은행 측이 더 적극적이었다. 케이뱅크 사례를 보고 비수도권 은행이나 인터넷은행이 깨달은 바가 있었던 것 같다”고 귀띔했다.
전북은행만이 아니다. 코빗과 협력하고 있는 신한은행 외에도 다른 은행이 가상자산거래소와 협력할 기회를 엿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지난해 가상자산거래소는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다. 은행과 제휴를 맺지 못하면 원화 마켓을 닫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약 1년 만에 오히려 은행권에서 가상자산거래소를 향한 구애를 시작했다는 얘기다. 최근 NH농협이 가상자산거래소와 재계약 기간을 기존 6개월에서 1년으로 늘린 배경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후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3월 NH농협이 빗썸과 실명 확인 입출금 서비스 제휴 계약을 6개월이 아닌 1년으로 연장한 배경에는 가상자산거래소와 계약을 맺고 싶어 하는 은행이 많아졌기 때문이란 얘기가 나온다. 갑자기 1년으로 늘린 이유가 다른 데 있지 않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근 머니투데이 보도에 따르면 가상자산거래소에 입출금 계좌를 제공하고 싶어 하는 주요 은행으로 우리은행, 하나은행, 카카오뱅크 등이 거론된다. 앞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확한 은행을 거론하긴 어렵지만 보도된 은행 중 가상자산거래소와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는 은행이 있는 건 사실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아주경제는 업비트가 케이뱅크와의 독점적 협력을 넘어 다양한 은행과 계약을 노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앞서 가상자산 시장에 밝은 관계자는 실제로 업비트와 은행이 일 대 다 계약으로 전환되긴 어렵다는 견해를 전했다. 이 관계자는 “업비트가 손발을 맞춰 온 케이뱅크를 두고 다른 은행과 다시 협력을 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진 않는다. 다만 이런 보도가 나올 정도로 가상자산거래소 위상이 올라간 것으로 봐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어떤 은행이 어떤 가상자산거래소와 결합하는지에 따라 시장 점유율도 차이가 있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한 가상자산 투자자는 “시중은행은 계좌 만들기부터 원화 입출금까지 매우 불편한 경우가 있다. 좀 더 편리한 은행이 가상자산거래소와 맺어진다면 그 쪽으로 갈아탈 의향도 있다”고 답변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