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 구본성·장녀 구미현 지분 58.62% 동반 매각키로…현실화 땐 삼녀 구지은 경영권 위태, 일각 ‘매각은 쇼’ 분석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 매각 자문을 맡고 있는 라데팡스파트너스는 지난 4월 13일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 지분을 동반 매각하기로 권한을 위임받았다고 밝혔다. 구미현 씨 자녀 지분까지 포함한 두 사람의 합산 보유지분은 58.62%에 달한다. 절반이 넘는 지분이기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붙어 지분 가치가 단숨에 올라간다.
아워홈은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셋째 아들인 구자학 회장이 창립한 종합식품기업이다. 구자학 회장은 삼성 이건희 전 회장의 누나 이숙희 씨와 결혼해 1남 3녀를 낳았고 자녀들에게 아워홈 지분의 98% 이상을 골고루 나눠줬다.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 지분은 38.6%, 장녀 구미현 씨 지분은 19.28%, 차녀 구명진 씨 지분은 19.6%, 삼녀인 구지은 현 대표의 지분이 20.67%다. LG를 친가, 삼성을 외가로 둔 '재벌 중의 재벌'인 네 남매의 경영권 분쟁은 역사가 깊다. 분쟁 당사자는 구본성 전 부회장과 그와 열 살 차이 나는 막냇동생 구지은 대표다.
구지은 대표는 4남매 중 유일하게 아워홈에서 근무하며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도 손꼽혔던 재원이다. 구 대표는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보스턴대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삼성인력개발원과 왓슨 와야트 코리아의 수석컨설턴트를 거쳐 2004년 아워홈에 입사했다. 구 대표는 근무 기간 매출 실적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입사한 지 6년 만에 전무로 승진하고 2015년에는 부사장급인 구매식재사업본부장에 오르며 차기 후계자로 입지를 굳히는 듯했다. 사업 전반을 세심하고 꼼꼼하게 챙긴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구지은 대표는 본부장이 된 지 5개월 만에 돌연 보직해임되며 밀려난다. 범LG 계열의 ‘장자승계’ 원칙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2016년부터 오빠인 구본성 전 부회장이 경영에 참여하며 대표이사로 선임돼 아워홈의 실권을 장악했다. 10년 넘게 공헌했던 아워홈에서 밀려나며 구 대표는 결국 자회사인 캘리스코 대표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2017년 4월 구 대표는 ‘이사 선임의 건’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임시 주주총회 개최를 요청하며 경영권 분쟁을 재점화했다.
아버지 구자학 회장이 지분을 골고루 나눠준 덕분에 자매들이 구지은 대표의 편을 들어줬다면 승산이 있었겠지만 큰언니인 장녀 구미현 씨가 장남 편을 들면서 구 대표는 경영권 탈환에 실패한다. 이어 구본성 전 부회장의 장남 구재모 씨가 기타비상무이사를 거쳐 사내이사(비상근)으로 선임되며 3세 경영의 승계 구도를 다지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반전은 또 있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은 지난해 6월 동생 3명과의 경영권 분쟁에서 패배하며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됐다. 이번엔 큰언니가 동생들 편을 들었다. 구 전 부회장이 경영 기간 내내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못한 데다 보복운전으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아 회사의 명예를 실추한 사실이 도화선이 됐다. 92세의 나이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있던 구자학 회장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지난해 8월 구지은 대표의 페이스북에는 구자학 회장이 딸을 앉혀놓고 가르치는 사진도 올라오며 회장이 이미 막내딸을 후계자로 점찍었다는 관측에 힘을 실었다.
구본성 전 부회장이 올해 2월 보유지분을 전량 매각하고 경영에서 완전히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히며 구지은 대표의 경영 체제는 안정화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구 전 부회장과 구미현 씨의 지분 동반매각이 현실화할 경우 구지은 대표의 경영권은 위태로워질 것으로 보인다. 당장 구지은 대표가 추진하던 사업들도 중단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구지은 대표는 올해 신년사에서 “지난해 동종업계 최초로 미국 공공기관 식음서비스 운영권을 수주한 데 이어 올해 폴란드, 베트남, 중국과 함께 글로벌 단체급식사업 영역을 확대해 글로벌 확장에 나설 계획”이라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외식업체 캘리스코에도 악재가 닥칠지 주목된다. 아워홈에서 식자재 공급을 받던 캘리스코는 오너가 남매 간 경영권 분쟁 당시 타격을 입었다. 2019년 아워홈이 식자재 공급 중단을 선언하며 캘리스코는 2020년부터 적자를 내고 이후 자본잠식 상태로 빠져들었다. 그러던 중 올해 2월 24일 사모펀드 린드먼혁신성장사모투자합자회사가 총 100억 원 규모의 신주를 배정받기로 합의하며 캘리스코에 투자했다. 3월 4일 린드먼은 신주인수대금 100억 원을 납입하며 캘리스코의 지분 50%를 보유한 최대 주주로 올라섰고 캘리스코는 자본잠식 상태를 해소했다. 린드먼은 오너가 경영권 다툼이 일단락되며 캘리스코의 경영 정상화 가능성에 베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구지은 대표가 경영권을 잃을 경우 캘리스코의 경영 정상화도 불투명해진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라데팡스파트너스는 5월 중 예비입찰을 진행한 후 7월 말까지 최종 낙찰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국내 단체급식 시장은 2019년 기준 약 4조 3000억 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아워홈(17.9%)은 삼성웰스토리(28.5%)에 이은 점유율 2위 기업이다. 현대그린푸드(14.7%), CJ프레시웨이(10.9%), 신세계푸드(7.0%) 중 누가 지분을 인수해도 단숨에 업계 1~2위 수준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규모다.
한편에서는 주식 동반 매각 자체를 ‘쇼’라고 평가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실제 경영권이 외부에 있는 제3자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 자녀가 없는 구지은 대표와 달리 상속받을 친아들이 있는 구본성 전 부회장이 경영권을 다 넘기기 어렵다는 것이 이 시각의 배경이다. 이와 관련, 단체급식 업계 한 관계자는 “장녀가 오빠를 지원하든, 동생들끼리 연합하든 형제 넷이서 지분 가치 극대화를 위해 서로 이합집산하며 움직였던 이력이 여러 번 있었지 않느냐”라며 “이번에도 그 일환일 뿐 정말로 지분을 다 매각해서 본인들 경영권을 내놓는 일이 실제로 일어나긴 어렵다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이와 관련해 아워홈 측은 “구미현 씨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아직 회사 내부에서 정리된 공식 입장은 없다”라면서도 “아직 경영권 향방에 대해 논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라고 선을 그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