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참여 건설사와 변호하는 법인 대표 모두 그가 맡아…제주 법률사무소, 남 전 지검장 자택으로 주소 옮겨 ‘의아’
#오등봉 개발 사업과 리헌기술단
남기춘 전 지검장은 1989년 검사 생활을 시작해 2010년 서울서부지검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취임 1년도 채 되지 않아 서울서부지검장에서 사퇴했다. 당시 법조계에서는 남 전 지검장이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을 수사하면서 윗선의 외압을 받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남 전 지검장 스스로도 사퇴 후 한화그룹 수사와 관련해 “법무부의 간섭이 있었다”고 언급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남기춘 전 지검장은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측근으로도 유명하다. 남 전 지검장과 윤 당선인은 서울대 법대 79학번 동기다. 윤 당선인이 2013년 정직 1개월의 징계를 받을 때 남 전 지검장이 윤 당선인의 변호를 맡기도 했다.
남기춘 전 지검장은 지난해 7월 리헌기술단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남 전 지검장이 리헌기술단에 합류하자 곳곳에서 의외라는 반응이 나왔다. 그는 검사·변호사 등 법조계에서 활동해왔고, 회사 경영이나 건설업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리헌기술단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가 제주도지사 재직 시절 추진한 오등봉 개발 사업에 참여한 업체라는 점이다. 오등봉 개발 사업은 민간 사업자가 공원 면적의 70% 이상을 조성해 기부채납하고 남은 부지에 공동주택 등 비공원시설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특례사업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원 후보자가 특례를 이용해 민간 사업자에게 과도한 이익을 제공했다고 주장한다.
원희룡 후보자는 지난 4월 20일 국토부를 통해 “오등봉 개발 사업은 전국 76개 장소에서 진행 중인 민간공원 특례 사업 중 하나로 제주에서만 추진되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민간 사업자의 과도한 수익을 방지하기 위해 수익률이 8.9%를 넘지 못하도록 했고, 도시개발법 등 다른 사례를 고려할 때 수익률이 과도하다고 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원희룡 후보자가 리헌기술단과 친분이 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고 아무개 전 제주도 도시건설국장이 퇴직 후 리헌기술단에서 근무한 바 있기 때문이다. 고 전 국장은 2017년 제주도 민간특례사업 태스크포스(TF) 팀장을 역임하면서 오등봉 개발 사업을 주도했다.
이와 관련, 정 아무개 리헌기술단 각자대표는 “고 씨를 20년 간 알고 지낸 사람이 나에게 추천을 해준 것”이라며 “내가 리헌기술단을 인수했을 때 당시 명예퇴직했던 고 씨가 같이 참여하겠다고 해서 합류했고, 현재는 퇴사한 상태”라고 덧붙였다.
#법률사무실을 왜 본인 집에?
관심을 모으는 것은 남기춘 전 지검장의 역할이 단순 조력자인지 여부다. 제주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오등봉 개발 사업 관련해 행정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그가 대표 변호사로 있는 법무법인 다전은 오등봉 개발에 참여한 리헌기술단의 변호를 맡고 있다. 사업에 참여한 건설사와 변호를 맡고 있는 법인의 대표를 모두 남 전 지검장이 맡고 있는 셈이다.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남기춘 전 지검장은 2019년 9월 17일 법무법인 다전의 대표자로 합류했다. 같은 날인 2019년 9월 17일, 법무법인 다전은 제주도에 분사무소를 설립했다. 남 전 지검장이 법무법인 다전 제주 분사무소를 맡기로 한 것이다.
법무법인 다전의 대표변호사로서 남기춘 전 지검장의 역할은 알려진 바가 없다. 법무법인 다전은 2020년 제주 분사무소 사무실을 제주시 이도2동에서 서귀포시 상효동으로 이전했다. 그런데 이전한 상효동 분사무소 사무실 주소는 남 전 지검장의 자택 주소와 동일하다. 남 전 지검장의 자택은 평범한 2층 단독주택이며 건축물대장에 등록된 건물 용도도 ‘단독주택’이다. 또 상효동의 면적은 상대적으로 넓지만 인구가 1000명을 겨우 넘는 수준이고, 유동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법률사무소 위치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다.
법조계에서도 남기춘 전 지검장이 변호사 업무를 중단하고, 귀농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실제 남 전 지검장의 아내 황 아무개 씨는 농업법인회사 억불을 운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법인등기부에는 여전히 남 전 지검장이 법무법인 다전의 대표자이자 구성원으로 등록돼 있다.
법무법인 다전의 기존 분사무소가 있던 이도2동에는 다른 법무법인 H가 입주해 있다. 법무법인 다전 홈페이지에 게시된 제주 분사무소 전화번호는 현재 법무법인 H가 사용하는 번호다. 법무법인 H 관계자는 “우리는 2020년 이도2동에 입주했고, 법무법인 다전과는 관계가 없는 곳”이라고 전했다.
이와 관련해 일요신문은 법무법인 다전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을 취했으나 전화를 받은 법무법인 다전 직원은 “언론 대응을 담당하는 직원은 따로 없다”는 말만 한 후 전화를 끊었다.
리헌기술단 대표 취임은 개인적인 인연 때문이라는 것이 회사 측의 설명이다. 앞서의 정 아무개 리헌기술단 대표는 “남기춘 전 지검장은 약 7년 전 소개를 받아 알게 됐으며 그가 제주도로 내려와 집을 지을 때 애로사항이 있어서 개인적으로 도와주기도 했다”며 “지난해 내가 대표이사로 취임했는데 개인적인 문제가 있어서 남 전 지검장이 도와주겠다며 순수한 마음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도 법무법인 다전 공동 대표자로 활동하고 있다. 박 전 비서관은 2013년 윤석열 당선인과 국정원 댓글사건 특별수사팀에서 호흡을 맞춘 바 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