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지방선거 공천 등 현안서 존재감 과시…낮은 기대치 되레 국정운영 ‘꽃놀이패’ 작용할 수도
“3곳을 접수했다.”
최근 여의도에선 윤 당선인의 그립이 거론될 때마다 이 말이 빠지지 않고 나왔다. 이들이 언급한 3곳은 ‘당청 권력 관계·지방선거 공천·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였다. 당·청 관계에서 직진의 윤석열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검수완박에 비판적인 윤 당선인 의중은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은 여야 합의안을 단번에 뒤집었다. 앞서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인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검수완박 중재안 수용 직후 사퇴 압박에 시달리자, 4월 25일 서울 통의동 인수위를 전격 찾아 윤 당선인과 비공개 회동을 했다. 이 자리에서 윤 당선인은 검수완박 중재안의 졸속 처리를 반대한다는 입장을 전했다고 한다.
이들의 회동은 그간 검수완박을 놓고 침묵하던 윤 당선인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낸 시점과 맞물린다. 윤 당선인은 권 원내대표와 비공개 회동 직전,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민생은 안중에도 없다” “정치권이 고민하고 중지를 모아달라” 등의 메시지를 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여야 협치를 부정하는 도발”이라고 반발했지만, 윤 당선인의 복심 장제원 비서실장은 “검수완박=부패완판이라는 윤 당선인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고 맞받아쳤다.
검수완박 중재안을 끌어낸 4월 22일만 하더라도 “내가 합의 내용을 다 불러줬다”고 한 권 원내대표의 입지는 급속히 쪼그라들었다. 당 내부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윤 당선인의 직진에 화들짝 놀란 민주당은 4월 2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육탄전으로 맞서며 안건조정위 개의(밤 11시 46분) 8분 만에 의결을 마쳤다. 윤 당선인의 뒤집기로 검수완박 중재안이 사흘 만에 흔들린 셈이다.
예정에 없던 이들의 비공개 회동이 윤 당선인의 ‘경고성 호출’이었는지, 권 원내대표의 SOS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정치권 안팎에선 윤 당선인의 강한 그립을 재확인한 대표적 사례라는 말이 나왔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정책과 인사를 구분 짓는 윤석열 리더십을 잘 보라”고 귀띔했다. 잘못된 정책은 ‘궤도 수정’을 하더라도, 인사만큼은 ‘윤석열 스타일’대로 끝까지 믿고 본다는 의미다.
‘권성동 사퇴’ 기류는 4월 26일 의원총회에서 윤 당선인의 수행실장 출신인 이용 의원이 발언한 이후 급변했다. 그간 의총에 나서지 않았던 이 의원은 검수완박을 비판하면서도 “권 원내대표 중심으로 뭉치자”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관계자들은 “윤 당선인이 여의도로 급파한 메시지가 아니겠냐”라고 해석했다.
윤 당선인의 그립은 6·1 지방선거 공천 곳곳에서도 드러났다. 인수위에서 윤 당선인 입 역할을 했던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의 경기도지사 출마가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윤 당선인의 라이벌인 유승민 전 의원 출마 선언 직후 승부수를 던졌다. 여권 한 관계자는 “0선의 정치 신인 대통령이 ‘자객 공천’을 한 것”이라고 평했다. 윤핵관들이 유승민계 수장을 죽이기 위한 표적 공천을 단행했다는 뜻이다. 윤핵관들은 “경기도 탈환 없이는 정권교체가 완성되지 않는다”라고 김 의원 설득에 나섰다. 김은혜 공천 카드에 ‘윤심이 있다’는 말이 떠돈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윤심에 밀린 유 전 의원(44.56%)은 민심에서 앞서고도 초선 김 의원(52.67%)에게 패했다.
충남도지사 출마를 선언한 김태흠 의원도 마찬가지다. 애초 원내대표 출마에 강한 의지를 밝힌 김 의원은 윤핵관의 한 축인 권 원내대표가 출사표를 낸 직후 방향을 틀었는데, 이 과정에서도 윤심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윤(반윤석열) 진영에선 윤핵관들이 공천에 관여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우려한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전국 단위 선거인 만큼, 윤핵관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윤 당선인은 인수위 내부에서도 강한 그립을 구사했다. 그는 인수위 출범 이후 ‘1호 지시사항’으로 용산 시대 개막을 선언했다. 대선 내내 발목을 잡았던 무속 프레임 논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청와대 집무실 이전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충돌하기도 했지만, 윤 당선인은 취임 다음 날인 5월 10일 용산구 국방부 청사 5층에서 업무를 시작한 뒤 리모델링을 마치는 대로 본 집무실인 2층으로 옮길 예정이다. 보수진영 한 관계자는 “미국 백악관처럼, 대통령 집무실과 비서실, 기자실이 한 건물에 있어야 구중궁궐 청와대 구조를 깰 수 있다고 본 것”이라고 했다.
윤 당선인의 그립은 ‘윤안(윤석열·안철수) 조합’에서 잘 나타났다. 인수위원장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인선이 발표된 4월 14일 ‘보이콧’을 했다. 한때 거취 고심에 들어갔던 안 대표는 윤 당선인의 제안으로 이뤄진 만찬 이후 유턴했다. 윤 당선인은 다음 날(4월 15일) 복심 이철규 총괄 보좌역을 여의도로 급파, 국민의당과 합당 속도에도 불을 붙였다.
윤 당선인은 안 대표와 만찬 당시 국민의당 당직자 승계 문제 등의 합당 지연 이유를 듣고 “사소한 것을 갖고 그러느냐”라며 격노했다고 한다. 윤심을 재확인한 국민의힘은 이후 일사천리로 국민의당과 합당 문제를 매듭지었다. 앞서 윤 당선인은 3월 2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주관 대선 후보 TV토론회 직후 안 대표와 만나 새벽까지 회동한 끝에 단일화를 타결 지었다. 사전투표 개시 하루 전이다. 여의도 안팎에선 “직진의 윤석열과 간 보는 안철수의 궁합이 의외로 잘 맞는다”라는 얘기도 나온다.
문제는 강한 그립에도 좀처럼 상승세를 받지 못하는 지지도다. 여론조사전문기관 한국갤럽이 4월 19∼21일 조사한 결과(22일 공표,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참조)에 따르면 윤 당선인의 국정수행에 대한 긍정치는 42%였다. 한 주 만에 8%포인트(p)나 하락했다. 이 수치가 지지도라는 점을 감안해도 대선 득표율(48.6%)을 밑돈다. 부정치는 같은 기간 3%p 상승한 45%였다.
윤 당선인의 지지도 발목을 잡은 것은 윤석열 정부 1기 내각 인사였다. 윤 당선인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들 중 26%는 ‘인사 문제 때문’이라고 답했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21%)과 독단적·일방적(9%)이 뒤를 이었다. 역대 대통령들이 정권 초 허니문 기간 높은 지지도를 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윤 당선인의 국정수행 전망치가 낮은 것은 이례적이다.
윤 당선인 기대치가 역대 정부 대비 낮은 요인으로는 ‘전무한 기저효과’와 ‘정치적 유산이 없는 0선의 특수성’ 등이 꼽힌다. 87년 체제 이후 역대 대통령의 지지도는 임기 말 어김없이 바닥을 쳤다. 특히 사상 초유의 탄핵을 당한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도는 한 자릿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 임기 초 높은 지지도는 ‘박근혜 탄핵’에 따른 기저효과가 한몫했다는 얘기다.
한국갤럽이 4월 22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도는 44%였다. 신구 권력의 지지도가 데드크로스를 보인 셈이다. 윤 당선인이 단기간 지지도를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역과 계파 등에서 지지층을 공고히 만들 수 있는 정치적 유산을 갖고 있었지만, 윤 당선인은 지역색도 옅다.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처럼 대구·경북(TK)을 비롯해 부산·울산·경남(PK) 등 영남에서 확고한 구심점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을 기점으로 만들어진 친윤(친윤석열)계가 친박(친박근혜)이나 친문(친문재인) 등과 같이 내부 결속력이 큰 계파로 묶일지 미지수다. 한 원로 인사는 “평생 검찰총장만 한 윤 당선인은 정치에 입문한 지 1년도 안 돼 대통령이 되지 않았느냐”라며 “현재 친윤계는 친박보다는 친이(친이명박)계 모델에 가깝다. 5년 후엔 내부 결속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윤 당선인의 낮은 지지도가 국정운영의 독으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임기 초 낮은 지지도가 되레 레임덕을 늦출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MB가 꼭 그랬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을 겪은 MB는 임기 시작과 함께 범국민 촛불시위에 부닥쳤다. MB 지지도는 바닥을 쳤다. 그러자 MB는 중도실용을 국정과제로 내세워 국면전환을 꾀했다. MB 지지도는 50% 선으로 복귀했다.
정의당 한 관계자는 “MB 지지도는 역대 대통령 대비 높지 않았지만, 집권 초반 낮은 지지도 탓에 조금만 회복돼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종의 ‘착시효과’가 있었다”고 했다. 여론조사기관 한 관계자도 “임기 초반 지지도가 낮다는 것은 상승 여력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이라며 “(향후) 지지도가 하락해도 작은 낙폭으로 연착륙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했다. 취임 전 윤 당선인의 낮은 국정전망 기대치가 국정운영 과정에서 ‘꽃놀이패’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