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플랫폼 ‘업박스’ 이용 고객사 1300개 달해…김근호 대표 “매년 2~3배 성장세, 2025년쯤 IPO 나설 예정”
#시련 속 피워낸 창업의 꿈
1983년생인 김근호 리코 대표는 미국 노스웨스턴대학교에서 산업공학과 경제학을 전공했다. 많은 돈을 버는 것이 목표였다. 시카코·샌프란시스코에서 주식 옵션 트레이더(중개인)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주변에는 트레이더로 명성을 떨치며 큰 부를 이룬 동료들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2007~2009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리먼 사태 등의 금융위기를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면서 가치관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돈을 쓸어담던 트레이더들이 빚쟁이가 돼서 길바닥에 쏟아져나왔다. 갈림길에 선 김 대표는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김근호 대표는 “트레이더는 시장에 유동성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지만, 사실상 제로섬 게임에서 돈 놓고 돈 먹기 놀이를 하는 것”이라며 “트레이더로 일하며 천당과 지옥을 다 경험했다. 한 번 넘어진 트레이더들이 재기할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지는 모습을 목격했다.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회의감을 많이 느꼈고, 미국에 남지 않고 한국으로 귀국하게 됐다”고 말했다.
군 생활은 인적 네트워크를 쌓는 계기가 됐다. 지난 2011년 김근호 대표는 훈련소에 입소해 4주간의 기초 군사 훈련을 받으며 친해진 동기가 바로 손열호 리코 최고기술책임자(CTO)다. 산업기능요원으로 병역특례를 받고서 첫 병역특례업체에서 일을 시작할 때는 김형건 리코 최고운영책임자(COO)와 첫 인연을 맺었다. 전광일 최고사업책임자(CBO)는 이륜차 물류대행 브랜드 부릉을 운영하는 메쉬코리아에서 만나 함께 일한 김 COO의 권유로 리코에 합류하게 됐다.
김 대표는 첫 병역특례업체가 폐업 위기에 몰리면서 1년 만에 다른 소프트웨어 벤처기업으로 옮겨야만 했다. 제대 후에는 이 벤처기업에서 임원직을 제안해준 덕분에 한국에 자리를 잡게 됐지만, 2016년 이 벤처기업도 문을 닫게 됐다.
김근호 대표는 “그 벤처기업은 스마트TV 그래픽 엔진을 만들던 곳으로 당시엔 잘나갔다. 구글 등이 인수를 제안하기도 했지만, 대표는 세계를 제패할 것이라며 인수를 거절했다”며 “그런데 몇 년 만에 기술력이 따라잡히면서 게임 사업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1년간 월급을 안 받으면서 임직원들이 게임 개발에 집중해서 론칭까지 했지만, 결국 성공하지 못하면서 폐업했다”고 말했다.
2017년 김근호 대표는 지인 소개로 음식물 자원화 전문기업 ‘두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곳에서 시장 규모에 비해 서비스 인프라가 뒤떨어진 폐기물 시장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폐기물을 배출하는 기업, 폐기물 운반 기업, 폐기물 처리 기업 간의 커뮤니케이션과 데이터 부재가 가장 큰 문제라 생각했다. 이에 폐기물 발생단계에서부터 생성되는 모든 밸류체인의 데이터들을 수집하고, 트래킹해서 수치화된 데이터를 기업들에게 투명하게 제공하고 싶었다. 그렇게 두비원에서 나와 2018년 11월 ‘리코’를 설립했다.
김근호 대표는 “국내 폐기물 시장은 25조 원에 달한다. 이 중 30%가 공공시장이고, 나머지 70%가 민간시장이다. 그런데도 폐기물 서비스 브랜드 하나 생각나지 않는다”며 “파편화돼 있고, 불투명한 폐기물 시장을 투명하게 만드는 기업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플랫폼 개발
2019년 1월 리코는 음식물류 폐기물 수거 운반 분야에 진출했다. 첫 사업 영역이었다. 당해 3월 100여 개의 식당이 입주한 코엑스로부터 첫 수주를 따냈다. 하루에 코엑스에서 배출되는 음식물 폐기물은 약 10톤(t)에 달한다. 사무직, 현장직 할 것 없이 돌아가면서 음식물을 수거하고 운송하며 처리했다. 초기엔 관리·감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했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폐기물이 어떻게 수거해서 이동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노하우를 얻었다.
김근호 대표는 “약 1년간 기존 업체의 업무를 그대로 수행하면서 폐기물 관리 서비스를 어떻게 기획해서 출시해야 할지 틀을 잡아갔다”며 “처음에 폐기물을 수거 운반하던 기사 두 분, 사촌 형 등과 바로 팀을 만들어서 시작했다.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는데, 코엑스 수주를 따내면서 기존 업체의 직원들 고용승계를 하고 인력을 대규모로 확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리코는 당시 쌓은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폐기물 플랫폼 ‘업박스(UpBox)’의 베타 서비스를 준비해나갔다. 서비스를 궤도에 오르게 하는 데 있어서 GS리테일로부터 큰 도움을 받았다. GS리테일은 업박스를 활용해 슈퍼마켓 GS더프레시와 신선 먹거리 전용 공장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을 퇴비로 만들어 거래처 농장에 무상 공급했다. 이를 계기로 신세계푸드, 리솜리조트, CJ푸드빌, 아워홈, 한화호텔&리조트 등이 고객사가 됐다.
김근호 대표는 “GS리테일 신사업팀과 전무가 ESG에 대한 의지가 높았고, 프로젝트에 드라이브를 걸어줘서 빠르게 진행됐다”며 “홍보용으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협업을 해왔고, 그 이후로 대기업 고객사를 빠르게 확보했다”고 말했다.
2020년 3월 폐기물 플랫폼 ‘업박스’가 공식 출시됐다. 통합관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술을 활용해 폐기물 수집 운반 전 과정을 디지털 데이터로 기록·관리하는 것이 특징이다. 소비자나 기업들은 업박스를 통해 배출 폐기물량, 재활용량, 환경 영향 등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초기에는 약 8000억 원의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음식물 폐기물에 사업 역량을 집중했다. 음식물 폐기물에 대한 접근성이 높고, 음식물류 폐기물 감량 의무사업장(60평 이상 규모의 식당, 집단급식소 등)들이 신뢰할 만한 음식물처리 대행업체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업박스를 등에 업고 리코는 매년 2배 이상 성장해오고 있다. 현재 예식장&호텔(서울드래곤시티, 노보텔 등), 복합시설(한국도심공항 등), 기업형 급식 시설(삼성웰스토리 등), 식품 공장(맘스터치 등), 프랜차이즈 매장(맥도날드, 스타벅스 등), 물류센터(쿠팡 등) 등 1300여 개의 고객사가 업박스를 이용 중이다. 업박스를 사용하면서 수거통 세척, 행정 서류 등 폐기물 관리를 위해 필요한 제반 기존 대비 업무시간과 비용을 각각 90%, 15%를 축소했다는 것이 리코 측 설명이다. 2022년 1월 누적 기준 2만 2461톤의 폐기물을 소각, 매립하지 않고 자원화해 탄소배출량을 저감했다. 온실가스 저감 효과는 9710톤에 이른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돕는 코트라의 글로벌 스타트업 육성 사업 ‘글로벌점프 300’에 선정되기도 했다.
김근호 대표는 “매년 2~3배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고, 이 같은 계획이 성공하면 2025년쯤 기업공개(상장·IPO)에 나설 예정”이라며 “스마트 재활용 시초인 미국 루비콘 글로벌이 올해 몸값 2조 원 정도로 상장할 것으로 보인다. 루비콘은 소프트웨어만 제공하지만, 리코는 소프트웨어에 더해 실제 물류를 운영하기에 해외 시장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특히 미국만 하더라도 음식물, 일반쓰레기 등을 재활용하지 않고 다 봉지에 넣어서 매립한다. 온실가스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플라스틱, 폐지, 캔 등 영역으로 보폭을 넓혀가고 있으며 폐기물 전반을 모두 담당하는 기업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대기업이 폐기물 시장에 진출하면서 투자도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실제 SK에코플랜트는 2020년 11월부터 지난 2월까지 2조 8113억 원을 투입해 폐기물 업체만 8곳을 인수합병(M&A)했다. 지난해 10월 리코는 ‘SK에코 이노베이터 Y21’에서 1위 기업으로 선정됐고, SK에코플랜트-환경시설관리와 ‘스마트 자원 순환 체계 구축’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호실적과 함께 시장 분위기까지 맞물리면서 투자를 빠르게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3월 35억 원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당해 12월 120억 원의 시리즈B 투자를 받았다. 누적 투자액은 155억 원에 이른다.
김근호 대표는 “리코는 폐기물 시장의 완전한 디지털 전환(DT·Digital Transformation)이라는 새로운 기준을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곧 미래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이 아닌가 싶다”며 “폐기물 재활용한 것을 탄소로 환산해서 탄소배출권으로 판매할 계획도 있다. 다만 정부에서 제도 확장을 해줘야 가능한 사업 영역이긴 하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