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근 대표, 아내 셋째 출산 계기 브래지어 공부…“둘레 아닌 부피로 측정해야” 글로벌 속옷 플랫폼 포부
#예기치 못한 검찰의 수사에 무너진 꿈
1984년생인 연봉근 안티그래비티 대표는 세무인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세무사에, 누나는 국세청 조사관으로 재직 중이다. 이런 영향을 받아 연 대표는 웅지세무대학에 진학했지만, 학업을 이어가면서 세무가 적성에 맞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던 중 애플짐 피트니스센터 사장으로부터 오퍼를 받으면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연 대표의 나이는 25세에 불과했지만, 2년간 애플짐 회계 시스템과 영업 상담 매뉴얼을 제작했다. 당시 연 대표가 맡은 애플짐 지점의 매출이 상위 3곳에 이름에 올리면서 이사로 승진하게 됐다.
연봉근 대표는 “당시 회계 시스템을 구축하고서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그래서 영업하시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영업 매뉴얼을 A4 60장 분량의 책으로 제작했다”며 “능력을 증명했지만, 어머니가 애플짐에 투자했기에 직원들이 저를 인정하지 않았다. 낙하산이라 이사로 승진한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느꼈다”고 말했다.
연봉근 대표는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고자 2011년 피트니스 프랜차이즈 애플트리피트니스를 설립하며 독립했다. 사업은 순조로웠다. 지점은 계속 늘어갔고, 연 매출은 80억 원에 달했다. 이 같은 성공이 알려지자 전국 각지에서 연 대표의 조언을 듣고자 찾아왔다. 이를 계기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프랜차이즈에서 컨설팅&솔루션으로 전환하고자 2013년 투비크로스를 설립했다. 이듬해 자금 마련을 위해서 애플트리피트니스를 매각했다. 연 대표는 고객관계관리(CRM) 솔루션을 기반으로 국내 피트니스 시장을 제패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위해 합리적으로 절세를 돕는 회계 프로그램 ‘트레이너 맵핑’과 기업자산관리(ERP) 솔루션 ‘짐매니저’, 헬스장 통합 회원권이자 CRM 솔루션 역할을 하는 ‘짐패스’를 개발했다.
시련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시작됐다. 지난 2016년 투자사 대표가 갑작스럽게 검찰로부터 고강도 수사를 받았기 때문이다. 스타트업 특성상 리스크를 떠안는 입장인 ‘엔젤투자자’가 협의를 통해 취득 지분을 정하는 게 관행이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은 표적 수사가 이뤄졌다는 것이 연봉근 대표의 주장이다. 결국 같은 해 연 대표는 심리적인 압박에 투비크로스를 매각했다. 이후 2018년 2월 대법원은 ‘특정 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상 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투자사 대표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셋째 덕분에 탄생한 안티그래비티
2018년 연봉근 대표의 셋째 아이가 태어났고 같은 해 안티그래비티도 설립됐다. 출산 후 나타나는 가슴 변형이 여성들에게 심리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다. 생리 기간에 여성들의 가슴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사실도 그때 처음 알았다. 연 대표는 기업들이 여성들의 가슴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브래지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던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사이즈를 둘레로만 재면서 약 100년간 불편함을 야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연봉근 대표는 “아내의 산후우울증을 계기로 브래지어 공부를 시작했다. A컵만 하더라도 최소 120cc 최대 380cc의 부피 차이를 보인다”며 “2000년대에 둘레가 아니라 부피로 사이즈를 제작해야 한다는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그런데도 사용한 데가 왜 없지 했는데, 의료산업에서만 부피를 기준으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안티그래비티는 사진 등 2D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분석해 3차원의 부피를 추적·분석하는 기술 개발에 착수했다. 체형 정보 관련 설문조사와 사진을 픽셀 베이스로 분석해 둘레가 아닌 부피 기반으로 적합한 브래지어 사이즈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우선 석고원단키트를 통해 가슴을 복제해 3차원으로 구현했고, 사이즈 분석을 위한 약 7000개의 가슴 이미지를 확보해서 애플리케이션(앱)의 기초 데이터값으로 사용해서 개발을 완료했다.
연봉근 대표는 “182명을 대상으로 컵 치수 간의 가슴 부피 차이를 조사해서 둘레 사이즈 측정 방식의 한계를 증명했다. AA컵 이하(110~225cc) A컵(120~380cc) B컵(160~420cc) C컵(230~750cc) 등 같은 컵 치수 간에도 최소 115cc에서 최대 520cc까지 부피 차이가 났다”며 “가슴둘레가 같아도 컵별 부피 공집합이 크게 발생한다. 둘레만으로 비대면 소비에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안티그래비티는 앱의 부피알고리즘을 검증하기 위해 자사 속옷 브랜드 ‘아나콘다 이너웨어’를 공식 론칭했다. 고객들은 설문조사와 사진 이미지를 통해 부피 기반의 브래지어 사이즈를 측정해 자신에게 맞는 브라 밴드와 컵 몰드를 구매할 수 있다. 2021년 약 22억 원의 매출거래액을 달성했다. 10개월간 디자인 1개의 품목으로만 이뤄낸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실적이라는 평가다. 지난 2월에는 기술신용평가기관 이크레더블이 진행하는 기술평가에서 TI3등급을 평가받았다. TCB(Technology Credit Bureau) 등급은 기술성, 시장성, 사업성, 경영역량 등 4개 항목을 종합 평가해 총 10등급으로 분류한다. 최상위 기술 기업 (TI1-TI2), 상위 기술 기업 (TI3-TI4), 보통 기술 기업 (TI5-TI6) 등으로 나뉜다.
특히 속옷 산업 패러다임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전환되는 시기인 점을 고려하면 부피로 사이즈를 재는 것이 반품률을 낮출 수 있다고 판단했다. 실제 지난해 아나콘다 이너웨어의 반품률은 4%에 불과했다. 국내 한 대형 이커머스업체 속옷 반품률이 36%에 달한 것과 대조된다. 오프라인 사업에 집중했던 속옷 브랜드들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2020년 미국 패션업체 L 브랜즈가 여성 란제리 브랜드 빅토리아시크릿 지분 55%를 사모펀드에 매각했다. 당시 빅토리아시크릿은 매장 250개를 폐점했다. 국내 속옷 브랜드 비비안은 2016년 영업손실 27억 원을 내며 적자 전환한 뒤 매년 손실이 확대되고 있다. 2019년 쌍방울그룹이 비비안을 인수했지만, 적자 늪에서 빠져나오진 못하고 있다.
안티그래비티는 글로벌 속옷 플랫폼을 꿈꾼다. 소비자들에게 부피알고리즘을 통해 적합한 브래지어 사이즈를 제공해 플랫폼에 입점된 국내외 속옷 브랜드들을 매칭해주는 것. 어려운 가슴 사이즈 측정을 해결해 록인(Lock-in)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업자개발생산(ODM)에도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화장품 시장처럼 개인 창업자나, PB 브랜드들이 손쉽게 속옷 시장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현재 오또맘, 스미홈트 등의 인플루언서들은 안티그래비티 ODM을 통해 속옷을 판매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한 인플루언서가 호주 시장 분위기를 태핑(Tapping)을 하는 과정에서 2000만 원의 해외 매출도 발생했다.
연봉근 대표는 “가슴의 부피 정보는 의류 전반을 아우를 수 있는 핵심 데이터다. 온라인 시대의 사이즈 측정 도구는 부피라고 생각한다. 신체의 부피를 측정하게 되면 오버핏도 슬림핏도 모두 대응할 수 있는 사이즈를 제공할 수 있다”며 “1913년도 이후 현재까지 약 100년간 이어온 사이즈 측정방식이 부피라는 새로운 측정방식으로 바뀌어서 향후 100년을 책임질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우려도 있다. 한국패션산업협회에 따르면 국내 속옷 시장 규모는 2조 원에 달하지만, 매년 시장 규모가 줄어들고 있다. 해외에서 시작된 탈브라·노브라를 지지하는 이들이 국내에서도 늘고 있다. 브래지어의 대체재 내지는 보완재의 성장세도 매섭다. 브라렛, 브라캐미솔, 노브라티, 스포츠브라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운다. 이에 대해 연봉근 대표는 “노브라 운동은 불편함이 초래한 것”이라며 “편하면서도 예쁨을 추구할 수 있는 브래지어가 나온다면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브래지어가 패션화된다면 시장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