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도가니? 투자 못 받아 ‘쩔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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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도가니>의 한 장면. 실화를 소재로 한 암울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수많은 관객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
# 실화 사건 영화는 대박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는 대박이 난다.’ 이것은 충무로에서 통용되는 흥행 공식 가운데 가장 공신력이 높은 공식 가운데 하나다. 최초로 1000만 관객 신화를 기록한 영화 <실미도>를 필두로 <살인의 추억>(510만 관객) <그놈 목소리>(300만 관객) <아이들…>(187만 관객) 등의 영화가 이런 흥행 공식을 따랐다. 그렇다면 영화 <도가니>는 흥행 대박이 충분히 예상되는 영화였다. 실화인 ‘광주 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소재로 한 데다 동명의 원작 소설 <도가니>는 이미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있었기 때문. 이에 따라 엄청난 기대 속에 투자가 수월하게 이뤄져 여유롭게 촬영에 들어갔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라는 점, 소설 <도가니>의 원작자인 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 영화화해서 좋은 흥행 성적을 거뒀다는 점 등은 분명 호재였다. 그렇지만 내용이 너무 암울하고 불편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더욱이 불경기엔 해피엔딩인 영화가 흥행한다는 충무로 불문율도 리스크로 작용했다. 공유가 영화 제작 전반에 나서면서 톱스타 캐스팅까지 끝마쳤지만 투자 과정에서 난항을 겪으면서 영화 <도가니>는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내몰리기도 했다.
다행히 CJ E&M이 투자를 결정하면서 영화 제작은 본궤도에 올랐고 비로소 관객들과 만나게 됐다. CJ E&M 역시 초반엔 투자를 꺼렸지만 제작사와 배우 공유의 열정을 높이 사 투자를 결정했다는 후문.
영화 <도가니>와 기존 실화 소재 영화들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실화의 사건사고의 범인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살인의 추억> <그놈 목소리> <아이들…> 등의 영화는 모두 아직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건을 소재로 했다. 반면 <도가니>는 범인이 분명하며 그들의 재판 과정까지 영화 속에 담겨 있다. 그만큼 개봉 이후 사회적인 파급력이 더욱 크지만 이런 부분이 영화 제작 과정에서 커다란 어려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 병장 공유의 눈물이…
영화 <도가니>가 관객들을 만나게 되는 과정에서 1등 공신은 단연 주인공 공유다. 군 복무 시절 선물 받은 소설 <도가니>를 읽은 것이 그 계기였다.
공유는 “2009년 5월 병장을 막 달았을 무렵 소설 <도가니>를 읽고 거짓말 같은 실화에 충격을 받아 휴가 나오자마자 소속사에 이 소설을 영화화해서 출연하고 싶은데 무슨 방법이 없느냐며 강하게 부탁했다”고 말한다.
이를 계기로 공유의 소속사 판타지오는 소설 판권을 사들였고 공동 제작사로 삼거리 픽쳐스를 선정해 영화화에 돌입했다. 그렇게 소설 <도가니>가 영화로 재탄생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스타급만 10여 명을 보유한 거대 연예기획사 판타지오가 단순히 휴가 나온 소속 연예인 한 명의 강한 부탁으로 영화화를 결정한 것은 아니다. 국내 최대 규모의 연예기획사였던 싸이더스HQ에서 독립해 설립된 판타지오는 당시 매니지먼트 외에도 영화와 드라마 등의 제작에 관심을 기울여 왔다. 이 과정에서 공유의 제안으로 접한 소설 <도가니>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이다.
판타지오 관계자에 따르면 “소속 연예인은 물론 임직원 대다수가 싸이더스HQ 출신이라 거대 연예기획사가 매니지먼트에서 영화 및 드라마 제작사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생생히 봤다”면서 “판타지오 역시 제작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려 했지만 경험이 없어 검증된 작품에 공동 제작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그 첫 번째 영화가 인기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영화 <김종욱 찾기>이고 두 번째가 <도가니>다. 인기 뮤지컬과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에 공동 제작 형태로 참여한 것. <도가니>의 영화화를 최초 제안한 공유가 두 편 모두 주인공을 맡았다. 첫 작품은 그리 좋은 흥행 성적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 <도가니>에서 비로소 흥행 대박이 터졌다. 군 입대 전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을 통해 톱스타의 자리를 다진 공유는 군 전역 이후 영화 <김종욱 찾기>로 다소 주춤했지만 결국 <도가니>를 통해 더욱 굳건한 톱스타의 자리를 다질 수 있게 됐다.
# 싸이더스 ‘분화와 진화’
영화 <도가니>의 흥행 돌풍은 연예계 판도 변화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판타지오가 싸이더스HQ에서 독립하면서 수십 명의 톱스타를 보유하고 있던 대형 연예기획사 시대가 끝나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후 싸이더스HQ는 장혁 송중기 차태현 김수로 한예슬 박민영 등의 스타급 배우와 문희준 조형기 박미선 등의 예능 스타를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장혁 송중기 등이 출연하는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 등을 외주 제작하는 등 제작사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는 한편 종편 시대에 맞춰 예능 프로그램 외주제작에도 나설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판타지오는 전도연 공유 공효진 정일우 등이 판타지오에서 독립한 연예기획사 매니지먼트 숲으로 옮겨가면서 스타 파워가 상당 부분 줄어들었다. 여전히 류승범 염정아 김성수 정겨운 정유미 이천희 등의 스타를 보유하고 있지만 대형 연예기획사로서의 입지는 다소 흔들린 것. 이런 와중에 영화 <도가니>가 흥행 대박을 기록하면서 판타지오는 영화제작사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데 성공했다. 독보적인 대형 연예기획사였던 싸이더스HQ가 이제는 두 개의 대형 연예기획사 싸이더스HQ와 판타지오로 확대 분리됐고 판타지오의 지주회사 형태로 출범한 매니지먼트 숲 역시 스타 파워를 갖춰 성장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뿌리를 같이 하는 이 세 회사는 상호 관계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종편 시대의 연예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