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2만 6000여 명 환호·감탄, 곳곳 무질서한 모습도…촬영 드론 훨훨, ‘칠궁’ 등 문화유산도 시민품으로
“청와대에 들어오다니 정말 꿈만 같다.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청와대 본관 앞 대정원에서 60대 여성 김 아무개 씨가 건넨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여의도 국회에서 취임식을 진행하던 5월 10일 오전 11시 40분 청와대가 전면 개방됐다. 청와대를 품고 있는 북악산, 광활한 하늘 아래 푸른 팔작지붕, 청와대 자태는 시민들의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최고 기온 26℃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평일임에도 2만 6000명을 넘는 시민이 이곳을 찾았다.
기자는 이날 오전 11시에 청와대 앞 사랑채에 도착했다. 사랑채 입구부터 많은 시민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경로당, 동호회 등 단체 별로 온 중장년층들이 많아 보였다. 청와대 정문을 마주보고 있는 경복궁 북문 앞에서는 청와대 개방을 기념하는 행사가 한창이었다. 시민들 역시 덩달아 한껏 고조된 듯한 모습을 보였다.
개방 전 청와대 정문 앞에는 조화 형태의 매화를 든 시민들이 입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 측이 청와대가 74년 만에 열린다는 점을 고려해 매화 조화 74개를 준비했다고 한다. 74인에 선정된 40대 여성 박 아무개 씨는 “매화는 윤석열 대통령이 봄이 가기 전 국민에게 청와대를 돌려준다고 했던 약속을 상징한 것”이라며 “인간 문화재, 외국인, 장애인 등으로 74명이 선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오전 11시 40분 시민들의 큰 함성과 환호 속 청와대 문이 활짝 열렸다. 시민 대표 74인이 청와대에 먼저 입장했고, 일반 시민들이 뒤를 따라 입장했다. 그간 청와대는 보안 상의 이유로 항공 촬영 금지 구역이었지만, 문이 열리자 촬영 드론이 날아다니는 모습이 포착됐다. 입장 내내 시민들은 연신 “정말 예쁘다” “대박” 등의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상징으로 꼽혔던 본관 푸른색 팔작지붕, 그 뒤로 펼쳐진 북악산의 기개는 압도적이었다. 본관은 전통적인 궁궐 양식을 외형 삼아 청기와를 얹은 형태로, 흰색 벽체와 조화를 이뤘다. 곡선미가 부각된 지붕선과 처마선은 특히 아름다웠다. 본관 앞을 지키던 101경비단 한 대원은 “외부인들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됐던 곳인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다.
정오가 좀 지나자 본관 앞 대정원에서 종묘제례악 공연이 시작됐다. 시민들은 대정원을 둥글게 빙 둘러앉아 이를 지켜봤다. 취재진 옆에 앉았던 60대 여성 박 아무개 씨는 “이렇게 잘해둔 곳을 (윤석열 대통령이) 안 쓴다니 아깝다는 마음도 들지만, 청와대가 열려서 기분은 좋다”며 “근처에 경복궁 등 관광 코스들이 많으니 외국인들이 청와대까지 들르면 더 좋지 않겠냐”고 전했다.
안병길 국민의힘 의원과 강용석 경기도지사 후보 등 다수의 정치인들도 청와대를 찾았다. 안 의원은 “오늘부터 청와대는 국민의 것”이라며 “많은 시민 분들이 찾는 청와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또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실 주최로 오게 됐다는 한 관계자는 “74년 만에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왔다”며 “더 이상 전직 대통령이 감옥을 가지 않는 통합의 정치를 윤석열 정부가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취재진은 본관 옆으로 난 경사진 길을 따라 대통령 관저로 향했다. 본청에서 대통령 관저까지는 성인 걸음 기준 10~15분 정도. 관저로 넘어가는 길에는 744년의 고목이 있는 수궁터도 있었다. 수궁터는 1939년부터 1993년까지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있었던 곳이다. 옛날 경복궁을 지키던 수궁들이 있어서 수궁터라 불렀다고 한다. 돗자리를 깔고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쉬는 시민들도 많이 보였다. 약간의 오르막길을 올라 역대 대통령이 거주했던 관저에 도착했다. 관저 입구 인수문 바로 앞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기념식수가 위치했다.
관저는 팔작지붕의 겹처마에 한식 청기와를 얹은 ‘ㄱ자형’ 지붕 형태다. 대통령 내외의 생활 공간인 본채와 사랑채인 청안당이 위치했다. 뜰 한 곳에 위치한 청안당은 ‘청와대에서 편안한 곳’이라는 뜻으로 ‘티타임’을 따로 갖는 곳이었다고 한다. 시민들은 줄을 서서 관저 내부를 구경했다. 관저 일부는 창문이 열려 있었고, 내부가 보이는 곳들도 있었다. 선풍기, 의자, 종이액자, 접이형 테이블 등 문재인 전 대통령 흔적들도 포착됐다. 관저 앞에서 만난 30대 한 가족은 “지금까지 볼 수 없던 곳인데, 아이들과 이렇게 보게 돼서 기분이 좋고, 우리 아이들이 더 커서도 이곳에 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윤석열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부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전면 개방되면서 시민들이 문화 유산을 즐길 수 있는 기회도 열렸다. 2018년 보물로 지정된 경주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해 오운정, 침류각 등이 대표적이다. 조선시대 왕이나 왕으로 추존된 인물을 낳은 후궁 7명의 신위를 모신 사당인 ‘칠궁’도 있다. 40대 남성 김 아무개 씨는 “청와대가 열리지 않았으면 이런 문화 유산을 못 봤을 텐데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어 기쁘다”고 전했다.
취재진은 관저에서 침류각을 거쳐 상춘재로 향했다. 상춘재는 외국 귀빈들을 맞이하거나 의전 행사, 비공식회의 장소 등으로 사용된 곳이다. 상춘재 앞으로는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녹지원이 있다. 120여 종의 나무와 역대 대통령들의 기념식수가 자리한 곳이다. 수령이 150년에 이르는 소나무를 배경으로 많은 시민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녹지원 건너편에는 청와대 참모들이 업무를 보던 여민관이 위치했다. 30대 남성 박 아무개 씨는 “궁궐이라 할 만하다. 다른 나라에 온 것 같다”며 “이런 곳에서 일하면서 빌딩숲의 팍팍한 서민들의 삶이 보이겠냐”며 웃어 보였다.
상춘재 뒤 작은 연못, 푸른 자연과 어우러진 청와대 모습은 누가 봐도 아름다웠다. 다만 그간 청와대가 ‘구중궁궐’로 소통이 어렵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청와대의 면적은 25만㎡이 넘고, 여민관 춘추관 등 주요 건물도 10개 가까이 된다. 건물 사이 거리는 평균 10~15분 거리였고, 청와대 내부를 전부 다 돌기 위해서는 성인 걸음 기준 2시간이 족히 걸릴 듯했다. 실제 취재진이 이날 청와대 내에서 걸은 걸음만 1만 6000보에 달한다. 경내 잘 다듬어진 녹지 역시 도심 속 시민들의 근무 환경과 무척 달라 보였다.
녹지원 옆으로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이용했던 춘추관이 위치했다. 청와대 내 제일 구석진 자리다. 청와대 참모들이 근무했던 여민관과 가깝지만, 본관과 가장 멀어 대통령과의 소통은 쉽지 않아 보였다. 헬기장으로 사용되던 춘추관 앞에는 대형 빈백 1인 소파와 삼각형 간이 그늘막 수십 개가 설치됐다. 무더운 더위를 피해 낮잠을 자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춘추관 앞에서 만난 50대 박 아무개 남성은 “분위기가 무척 자유롭다”며 “이렇게 쉴 곳을 마련해줘서 좋다”고 전했다.
이날 청와대 내에서는 여러 행사들이 열렸다. 공연에 참가했던 한 국악인은 “청와대가 열리는 날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어서 영광이라 생각한다”며 “뜻 깊고 좋은 기회를 얻어 감사하다”고 전했다. 하지만 무질서한 모습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오후 2시 30분경 본관 앞 대정원에서 국가무형문화재 5대 농악이 열릴 당시, 현장을 지키던 스태프는 “공연이 시작되면 정원 쪽으로 올라오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여러 차례 알렸다. 하지만 공연 시작 후 인파가 대정원 중심으로 몰리면서 상모를 돌리던 국악인과 시민이 부딪혀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현장 관계자는 “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며 “첫날이라 그런지 다들 우왕좌왕하는 것 같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동안 보안지역으로 분류돼 지도에 표시되지 않았던 청와대 일대도 공개될 예정이다. 구글 타임라인은 취재진이 청와대에 머물렀던 오전 10시 57분부터 오후 2시 53분까지 ‘알 수 없는 장소’로 위치를 지정했다. 국토교통부는 5월 10일 청와대 주변 일원의 지도를 공간정보 오픈 플랫폼 ‘브이월드’를 통해 제공한다고 밝힌 상태다. 아울러 청와대 개방과 동시에 청와대 뒤편 북악산 등산로도 국민에게 함께 개방됐다. 청와대이전TF 관계자는 “이번 개방으로 청와대에서 한양 도성 성곽까지 길이 연결됐다”며 “진정한 북악산 등산로 전면 개방이 완성됐다”고 평가했다. 시민들은 영빈관 앞 영빈문, 정문, 춘추문을 통해 청와대로 입장할 수 있다. 아직 건물 내부는 정리가 안 돼 미공개된 상태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