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크 어 버진’ 관습을 희롱했다
1962년 마릴린 먼로가 세상을 떠나면서 더 이상 그녀를 능가하는 섹스 아이콘은 등장하지 않을 거라고 많은 사람들은 예상했다. 하지만 20년 후 이탈리아계 아버지와 프랑스계 어머니를 둔 한 명의 뮤지션이 등장했다. 먼로가 세상을 떠난 지 1년 후인 1963년에 어머니를 잃었던 마돈나. 다섯 살에 어머니를 잃은 상실감은 마릴린 먼로 같은 여성이 되고 싶다는 꿈으로 바뀌었고, 어쩌면 그 소망은 먼로를 상상 속의 어머니로 여긴 결과이기도 했다.
10여 년 전 미국 대학의 교양 과정에 ‘마돈나’라는 과목이 생긴 적이 있었다. 학생들의 인기를 독점했던 이 강좌에선 그녀가 지닌 문화적 상징성과 아이콘으로서의 의미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다고 한다. 이처럼 마돈나는 단순한 스타가 아니라 세기말과 세기초의 지구촌을 달구었던 여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1958년 마돈나 루이스 치코네는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신 뒤 그녀는 외롭지만 항상 무엇인가를 추구하던 소녀로 성장했다. 아버지는 가정부였던 조앤 구스타프슨과 재혼했는데 이 ‘사건’ 이후 그녀는 아버지를 오랜 시간 동안 증오했다. 물구나무서기로 복도를 걸어 다니고 남학생들 앞에서 철봉에 매달리며 속옷을 드러내기도 했던 괴짜 소녀였지만, 마돈나는 전 과목 A에 치어리더로 활동하던 우등생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댄서의 꿈을 안고 달랑 35달러를 손에 쥐고 뉴욕으로 향한다. 그리고 1982년에 ‘Everybody’라는 댄스 싱글로 데뷔한다. 그리고 1983년에 나온 첫 번째 정규 앨범 <마돈나>부터 그녀의 전설은 시작된다.
레이스가 달린 탑, 카프리 바지 위에 입은 스커트, 망사 스타킹, 십자가 목걸이, 블리치 헤어스타일, 커다란 팔찌…. 그녀의 차림새는 젊은 여성들 사이에 급속도로 유행했고, 2집 <라이크 어 버진>은 마돈나를 단숨에 섹스 심벌로 만들었다. 야릇한 분위기의 뮤직비디오가 화제가 되었고, MTV 뮤직 어워드에서 선보인 무대는 그녀의 말처럼 “TV에 나와서 내가 했던 가장 불경스럽고 용기 있는 일”이었다. 커다란 웨딩 케이크 위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등장한 그녀는 머리와 옷을 풀어헤치고 결국은 성행위를 연상시키는 몸짓을 보여준다. 이 무대 이후 마돈나는 보수 단체의 표적이 되었는데 ‘Like a Virgin’은 혼전 임신을 부추긴다는 이유로 뭇매를 맞았다.
이후 그녀의 노래와 무대는 스캔들의 연속이었다. 젊은 시절 생계를 위해 찍은 누드 사진이 공개되었을 때 그녀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의연했고 1989년에 찍었던 펩시 광고는 신성 모독으로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마돈나의 외설(?)이 정점에 달했던 건 1990년에 있었던 ‘블론드 앰비션’ 투어 공연이었다. 장장 4개월 동안 지속되었던, 1990년대 최고의 투어로 꼽히는 이 무대에서 마돈나는 무대 위에서 두 명의 흑인 댄서와 서로 애무하며 그들을 마스터베이션하듯 자극한다. 교황이 직접 “마돈나의 콘서트에 가지 말라”고 선포할 정도로 파문을 일으켰던 이 투어의 목적에 대해 마돈나는 “필요 없는 금기를 부수는 것”이라고 말했다.
토플리스 차림의 여성 댄서들에게 채찍질을 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무대 위에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키스를 하고, 논란 속에서도 화보집 <섹스>를 출간했으며 <데이비드 레터맨 쇼>에 출연해 비속어를 남발하고 레터맨에게 속옷을 건네며 냄새를 맡아 보라던 마돈나. 어느덧 50줄에 접어든 지금은 얌전(?)하지만, 30대의 마돈나는 섹스의 무법자였고 관습의 파괴자였으며, 아이로니컬하게도 수많은 여성들의 워너비였다.
하지만 그녀는 선정적인 가십만을 일으키는 문제아는 아니었다. 대학에서 한 학기의 주제가 될 정도로 그녀의 행동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었다. 마릴린 먼로가 보수적인 사회적 분위기에서 신음했다면, 마돈나는 사회가 원하는 적절한 여성성을 과감히 깨트리면서 금기를 유희로 활용했고 끝없는 변신을 통해 고정되지 않는 정체성을 보여주었다. 지극히 여성적인 이미지부터 동성애자까지, 처녀에서 창녀로 그리고 성녀로 변신하는 마돈나는 성적이면서 동시에 정치적이었다. 그녀의 노래는 섹스와 인종과 계급을 다루었고 마돈나는 페미니즘과 반전 운동 등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었다.
동시에 그녀는 가수이자 작곡가이며 프로듀서, 댄서, 배우, 영화제작자, 패션 디자이너 그리고 아동문학 작가까지, 어떤 경계를 그을 수 없는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동한다. 사업가로도 뛰어난 그녀는 3억 장의 앨범을 팔아치워 기네스북에 오른 최고의 베스트셀러 여성 뮤지션, 그리고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쳤던 여성 중 한 명이기도 하다.
김형석 영화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