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쉴더스·원스토어·태림페이퍼 공모가·구주매출 비중 부담…기관, 성장성 높은 반도체 관련주 선호
당초 5월 IPO 시장은 투자자들의 기대를 끌어모았다.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오랜만에 코스피에 상장하는 종목들이 대거 줄 서고 있었다. SK스퀘어의 자회사인 보안업체 SK쉴더스와 앱 마켓 운영사 원스토어, 세아상역 자회사인 제지업체 태림페이퍼가 상장을 예고했다. 세 업체의 시가총액 합은 희망 공모가 밴드 최하단 기준으로 해도 약 3조 원에 달했다.
#공모가 고평가 논란 피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 업체 모두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받자 상장을 철회했다. 특히 SK쉴더스는 투자설명서가 공개된 후 공모가 고평가 논란을 피하지 못했다. SK쉴더스는 기업가치를 책정하기 위해 물리보안업체인 에스원, 타이완 세콤과 사이버 보안업체인 안랩과 싸이버원을 비교 기업으로 선정했다.
SK쉴더스는 기업가치 대비 상각 전 영업이익(EV/EBITDA)을 각각 구해 단순 평균치를 냈다. SK쉴더스는 물리 보안 서비스가 매출 비중이 가장 높다. 2021년 기준 59.2%다. 사이버 보안 사업의 매출 비중은 21.6%다. 비교기업이었던 에스원과 타이완 세콤의 EV/EBITDA는 5.85, 11.70인 반면 안랩과 싸이버원은 24.23, 17.66이었다. 매출 비중을 고려하지 않은 채 물리 보안과 사이버 보안 업체들의 EV/EBITDA를 단순 산술 평균을 내니 14.86이라는 수치가 나왔다. 에스원, 타이완 세콤과 EV/EBITDA를 비교했을 때 높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원스토어는 국내 시장에서 앱 마켓 상장기업이 없는 탓에 적정 공모가 산정을 위한 비교 기업이 없었다. 원스토어는 비교기업으로 텐센트, 네이버, 카카오, 넥슨을 선정했다. 공모가 산정 방식으로 PSR(주가매출비율)을 활용했다. 이는 특정 종목의 시가총액을 매출액으로 나눈 값이다. 비교기업들의 시가총액은 25조~552조 원에 달한다. 매출은 2조~104조 원에 이른다. 그러나 원스토어의 매출은 지난해 기준 2141억 원이다. 또 2019년 이후 영업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적정 비교기업 선정에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태림페이퍼는 국내 골판지 원지 시장점유율 20.2%로 업계 1위다. 공모가 산정 방식은 주가를 주당순이익으로 나눈 주가의 수익성 지표인 PER을 사용했다. 비교기업은 아세아제지, 대영포장, 삼보판지를 선정했다. 이들의 PER의 평균인 11.10을 적용해 주가를 산정했다.
문제는 세 업체의 PER 편차가 크다는 점이다. 태림페이퍼가 영위하는 골판지 시장은 원지에서 포장까지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소수 업체들이 과점하고 있다. 태림페이퍼를 포함해 아세아제지와 삼보판지가 과점 업체에 해당한다. 두 업체의 PER은 4.35와 4.19로 비슷하다. 반면 대영포장의 PER은 24.75다. 두 업체와 차이가 커 전체 평균도 높아지면서 태림페이퍼의 평가 시가총액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기관투자자들 실적보다 성장에 높은 점수
기관투자자들의 이목을 끌지 못했던 또 다른 이유로는 ‘높은 구주 매출 비중’이 꼽힌다. IPO의 목적을 기업 성장을 위한 대대적인 투자에 둔 것이 아니라 기존 주주들의 투자금 회수에 맞췄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상장 후 주가 흐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투자자들이 꺼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앞서 상장을 추진했던 현대엔지니어링의 경우 IPO에서 1600만 주를 공모할 예정이었는데, 이 중 75%인 1200만 주가 구주매출로 구성했다. 대명에너지도 450만 주에서 173만 주가 구주매출이었다. 비중은 38%로 높은 축에 속했다. 두 기업은 모두 상장을 철회해야 했다.
SK쉴더스 역시 IPO를 통해 구주를 매각하는 구조를 짰다. 전체 공모주식 중 구주 매출 비중은 46.67%에 달했다. 재무적 투자자였던 블루시큐리티인베스트먼트가 약 1264만 주를 매각할 예정이었다. 태림페이퍼도 최대주주인 세아상역이 약 324만 주를 매각하려 했다. 비중은 40% 수준이었다.
IPO시장에서는 실적주보다 성장주의 인기가 더 높다. 지난해 상장한 기업 중 따상에 도달한 기업은 총 15곳인데, 이들의 업종은 소프트웨어·메타버스·수소·바이오·반도체·AI·게임·이차전지 등 미래 먹을거리와 관련이 깊다. 안정적인 실적을 유지하는 기업보다 폭발적으로 성장해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기업이 IPO시장에서 인기가 많다는 방증이다.
SK쉴더스에 대해 매출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한 물리보안 영역의 성장성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해당 분야 1위인 에스원의 2019년 이후 매출 증가율이 3~4%대에 불과했다. SK쉴더스도 이를 의식한 듯 “SK쉴더스는 사이버 보안 영역에 있어 매출액과 이익 규모, 고객 숫자 등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사이버 보안 영역 매출 비중이 물리 보안 영역의 절반 수준이었기에 기관투자자들을 설득시키기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태림페이퍼도 국내 골판지 원지 시장의 성장 둔화가 위험 요소로 꼽힌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골판지 원지 성장률은 2016~2021년 4.5% 수준에 그쳤다. 2018년에는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했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시장이 성장하면서 8.9% 성장했으나 지난해에는 다시 3.5% 성장하는 데 그쳤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신규 입점도 증가해 과점 업체들의 점유율도 낮아지고 있다. 또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가 해제된 상황이어서 오프라인 시장이 부활한다면 그만큼 골판지 시장의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
#가온칩스만 흥행한 이유
이러한 분위기에서도 코스닥 상장을 추진하는 가온칩스는 기관투자자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성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가온칩스의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경쟁률은 1847.12 대 1에 달했다.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높은 경쟁률이다.
가온칩스의 수요예측 흥행은 대내외 시장 상황과 관계없이 기관투자자들이 반도체 관련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온칩스는 시스템 반도체 디자인 솔루션 기업이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의 공식 디자인 솔루션 파트너(SAFE-DSP)로서 팹리스(Fabless) 업체에 삼성 파운드리 공정에 최적화된 시스템 반도체 디자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지난해 상장한 반도체 관련 업체는 오로스테크놀로지, 샘씨엔에스, 엘루비셈, 지앤비에스엔지니어링, 지오엘리먼트 등이다. 언급한 5곳 모두 1000 대 1 이상의 높은 기관투자자 수요예측 경쟁률을 기록했다. 이들의 평균 경쟁률은 1393.01 대 1로 지난해 전체 평균 경쟁률(1187:1)보다 높았다. 상장일 유통물량도 28.65%로 낮은 축에 속한다. 유통 금액은 460억 원 수준이다.
가온칩스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도 받는다. 국내 시스템 반도체 디자인솔루션 기업 중 매출 점유율이 5.12% 정도로 5위에 해당한다. 가온칩스는 특히 차량용 시스템 반도체와 AI 반도체 개발 비중이 높다. 내연기관 차량에는 150~200개가 사용되지만, 전기차와 자율주행 차량에는 2000개 이상의 반도체가 필요하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지속적으로 확대할 것으로 예측되는 이유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따르면 AI 반도체도 2030년까지 전체 시스템 반도체 시장 점유율의 31.3%를 차지할 것으로 예측될 만큼 성장성이 높다.
가온칩스는 구주매출도 없다. 공모주 전량 신주 모집이다. 투자금 회수를 원하는 재무적 투자자들이 소량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전량 1~6개월 매각 제한을 걸어뒀다. 이번 공모자금으로 해외시장 진출과 연구 개발 및 IT 인프라 확충, 개발인력 확보 등에 278억 원 전액을 사용한다.
다만 가온칩스가 상장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모가 산정시 비교 기업 중 2곳을 대만 업체로 선정하면서 PER 평균이 대폭 상승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공모가 할인율을 43.2~32.9%로 적용해 희망 공모가액 밴드를 1만 1000~1만 3000원으로 낮췄지만 높은 수요예측 경쟁률에 공모가를 1만 4000원으로 확정했다. 상장일 공모주 외에도 차익 실현할 가능성이 높은 소액 주주들의 비중이 상장일 유통 물량의 39.24%라는 점도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가온칩스의 상장일은 오는 20일로 예정돼 있다.
박찬웅 기자 rooney@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