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내 진입→당권 장악’ 실패 땐 조기 강판당할 수도…민주당 친문계 ‘이’ 비토 조짐, ‘안’ 국민의힘 모든 계파가 적
안 전 위원장과 이 고문의 대권 플랜은 ‘6·1 보궐선거 당선→당권 장악→총선 승리→대선 도전’이 될 전망이다. 두 주자 모두 첫 고비는 무난히 넘을 가능성이 높지만, 갈 길은 험난해 보인다. 최소 두 개의 허들을 넘지 못할 땐 정치생명이 끊길 수도 있다. 조기 등판을 택한 이들이 되레 ‘조기 퇴장’을 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원내 진입은 끝이 아닌 시작에 불과하다.”
여의도 전략통들은 ‘안철수·이재명’ 출마 선언 직후 “여의도에 입성해도 난관은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안철수 전 위원장(경기 성남 분당갑)과 이재명 상임고문(인천 계양을)의 6·1 보궐선거 당선은 차기 권력을 거머쥐기 위한 최소 조건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선 대권 급행열차를 위한 두 개의 허들로 △지방선거 승리 후 성공적인 정계개편 △당내 실질적 1인자 부상을 꼽는다. 안 전 위원장과 이 상임고문이 원내에 진입해도 지방선거나 정계개편, 당내 실질적 대주주 중 단 하나라도 실패할 경우 ‘불쏘시개’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두 별(안철수·이재명)의 마지막 난관은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과 ‘친문(친문재인)계’가 될 전망이다.
정계개편 후 대주주 위상 구축은 과거 신구 권력 이양기에도 적용된 법칙이다. 문재인 모델인 ‘선 당권·후 대권’은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 시대 전유물이다. 3김 끝자락인 1990년대 말에도 이 모델은 유효했다. 1997년 대선에서 패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총재는 당권 장악 후 대권 재수생의 길을 걸었다. 대선 이듬해 치른 1998년 6·4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총 16개 시도 가운데 6곳(부산·울산·경남 3곳 대구·경북 2곳, 강원 1곳)만 건졌다. 15대 대선에서 1.6%포인트 차이(김대중 40.3% vs 이회창 38.7%)로 석패한 것과 비교하면, 대패한 셈이다.
이회창 전 총재는 그해 지방선거가 끝난 지 두 달 만(1998년 8월)에 한나라당 총재로 복귀했다. 민정계를 등에 업고 당 장악에 나선 이 전 총재는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살생부’를 단행했다. 젊은 피 수혈 일환으로 오세훈(현 서울시장) 카드를 꺼내며 김영삼 전 대통령(YS) 가신그룹인 상도동계를 거세게 압박했다. 총선 결과는 133석을 건진 한나라당의 원내 1당 유지.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새천년민주당은 115석, 공동정부 한 축인 김종필 전 총재(JP)의 자유민주연합은 17석에 각각 그쳤다.
문제는 이회창식 정계개편의 부재였다. 이 전 총재와 번번이 갈등을 빚은 상도동계는 물론, 일부 민정계가 이탈하면서 보수 분열을 막을 수 없었다. 위기 속에서 그가 택한 것은 강경 보수로의 회귀. 김용갑을 중심으로 한 보수 매파(강경파)가 이회창 지지에 나섰지만, 되레 외연 확장만 막혔다. 이회창 대세론은 결국 노무현 열풍에 무너졌다. 보수 한 원로는 “YS 승부수였던 1990년 3당(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합당처럼 정계개편을 통한 외연 확장을 했더라면 대선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고 했다. 노태우·JP와 손잡은 YS는 1992년 대선에서 42%를 득표, 34%에 그친 DJ를 꺾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당권 장악 후 외연 확장을 통해 대선 고지에 올랐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에 오른 문 전 대통령은 친문 체제 강화를 통해 당 장악에 나섰다. 그러나 안철수·김한길 등을 중심으로 한 비문(비문재인)계의 흔들기는 점점 노골화됐다. 급기야 새정치민주연합은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 둘로 쪼개졌다. 문 전 대통령이 ‘필패론’ ‘한계론’ 등에 시달린 것도 이때부터다.
벼랑 끝으로 내몰린 문 전 대통령은 ‘김종인 영입’을 통해 국면전환을 시도했다. 새정치민주연합 후신인 더불어민주당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20대 총선을 치렀다. 최종 결과는 예상을 깨고 123석을 획득한 민주당 승리였다. 새누리당(현 국민의힘)은 122석을 얻었다. 당시 새누리당 예상 의석수가 180석에 달한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민주당이 이긴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이 여세를 몰아 19대 대선을 승리로 이끌었다. 최종 결과를 좌우한 변수는 ‘박근혜 탄핵’이었지만, 민주당이 20대 총선에서 참패했다면 문 전 대통령은 대선 레이스에서 이탈했을 가능성이 컸다. 민주당 한 당직자도 “총선 승리와 박근혜 탄핵이 진보진영 전체를 살린 것”이라고 했다.
관전 포인트는 조기 등판한 ‘안철수·이재명’의 당권 장악 성공 여부다. 여야 차기 권력 1순위인 이들의 보궐선거 당선 확률은 매우 높다. 안 전 위원장과 이 상임고문은 원내 진입 후 나란히 당권 도전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임기는 2023년 6월까지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오는 8월에 열릴 예정이다. 안 전 위원장보다 이 상임고문이 먼저 시험대에 오르게 된다. 이 상임고문의 당권 도전은 민주당발 정계개편의 최대 화약고다. 최악의 경우 민주당 내 신구 권력이 완전 결별을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이 상임고문이 보궐선거 출마 선언 직후 ‘친문’ 진영에선 “낙선 운동을 펼쳐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몇몇 친문 인사들은 비상대책위원회 내부에서도 찬반으로 갈린 이재명 보궐선거 출마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이재명·송영길’ 밀약설도 제기했다. 지난 대선 당시 ‘송영길(당 대표)·이재명(대선 후보)’ 연대론의 연장선으로, 양측이 정치적 재기를 위해 물밑 작업에 나섰다는 게 이 밀약설의 핵심이다.
친문계 일부 인사들은 “8월 전당대회 출마는 하지 말라”는 뜻을 이 상임고문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친문 강경파인 강병원 민주당 의원은 5월 10일 KBS 라디오에 출연, ‘이재명 출마=방탄용’이라는 지적에 대해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지난 3·9 대선 때 ‘이재명 지지’에 나선 강 의원이 공개적으로 비토에 나서면서 당내 주도권을 둘러싼 기 싸움이 본격화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친문계 내부에선 이 상임고문의 원내 진입은 불가피하더라도, 당권만은 넘겨줄 수 없다는 기류가 강하다. 친문 직계 구심점인 ‘부엉이모임’의 좌장 전해철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이 8월 당권 도전 의사를 굳히고 전국 조직 만들기에 나선 까닭도 이와 무관치 않다. 민주당 8월 전당대회에서 친문계가 당권을 잡는다면, 이 상임고문은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더라도 차기 권력 최소 요건인 ‘성공적인 정계개편’도 ‘당내 최대 주주 부상’도 할 수 없다. 이 상임고문이 차기 대선 레이스에서 중도 탈락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상임고문의 최대 벽이 친문이라면, 안 전 위원장의 최대 적은 단기적으로는 ‘비윤(비윤석열)’, 장기적으로는 ‘친윤(친윤석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출신인 안 전 위원장으로선 구 국민의힘 계열 모든 계파가 적인 셈이다. 현재 국민의힘 주류인 친윤계는 장제원·권성동을 중심으로 한 윤핵관, 권영세·원희룡 등의 전 선거대책본부 요직자들, 김재원·조수진 등의 우호 세력으로 형성됐다. 비윤계는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등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경선 경쟁자 그룹 정도다.
변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윤 당선인에 베팅했다. 비윤계에 속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내년 당권에서 윤핵관을 비롯한 친윤계가 ‘안철수 당 대표 만들기’에 나설 경우 자연스럽게 비윤계 구심점으로 포지션을 이동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대표와 안 전 위원장은 여의도 대표적 악연으로 꼽힌다. 보수진영 한 인사는 “이 대표가 지난 대선 때 ‘윤핵관 논쟁’을 주도한 데다, 당 대표 직무 거부 사태를 두 차례나 일으키지 않았느냐”며 “친윤계가 안 전 위원장을 앞세워 이 대표를 비윤계로 밀어 넣는 작업에 착수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안 전 위원장 딜레마는 또 있다. 그가 친윤계를 등에 업고 당권을 잡더라도 꽃가마를 탈지는 미지수다. 21대 대선 직전, 윤핵관이 ‘안철수 고사’ 작전에 나설 수도 있다. 안 전 위원장이 당권 접수 직후 윤핵관을 제치고 친윤계 구심점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면, 친윤계의 ‘이준석 죽이기’에 이용만 당하는 불쏘시개에 그칠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가 5월 10일 출범한 이상, 여의도발 정계개편의 시계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국민의힘은 친윤계와 비윤계·안철수계, 민주당은 친문계와 친명계 간 싸움이 될 텐데, 밀리는 쪽의 선택지는 분당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지상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