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명에 ‘청약의향금’ 20억 모금해놓고 돌연 철회, “법적 절차 문제” 추측…사무실과 용산 대통령실 1km 눈길
지난 3월 당선인 신분의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 집무실을 용산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하면서다. 지금까지 알려진 윤 대통령 부부와 인연 맺은 무속인은 건진법사, 무정스님, 천공스승 등 셋. 이들 가운데 대통령 집무실 이전 논란과 관련해 천공이 주목받았다. 천공은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일 때 사퇴할 것을 조언했던 인물.
“윤 당선인이 천공 조언을 듣고서 용산으로 집무실을 이전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의혹의 발단은 천공이 2018년 8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용산의 활용방안’이란 주제의 동영상 강의였다. 해당 영상에서 천공은 “용산엔 용(龍)이 와야 해. 용은 그냥 오면 쓸모가 없어요. 여의주를 들고 와야 해. 여의주가 뭐예요. 법(法)이에요. 인간한테, 사람한테 최고의 사람을 용이라고 합니다”라고 설파했다. 그 ‘용’과 ‘여의주’가 대권을 거머쥔 윤 대통령을 지칭했다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천공이 직접 해명에 나섰다. 그는 3월 23일 YTN 인터뷰에서 “그것(동영상 강의)을 윤석열 당선인도 봤겠지만 많은 사람이 봤습니다”라며 “누구 특정 사람을 위해서 한 거 아니니까”라고만 언급했다. 윤 당선인에게 ‘직접’ 조언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러면서 “(용산 이전은) 참 잘하는 거죠. 너무 잘하는 겁니다”라고 옹호했다. 윤 대통령 측은 천공의 용산 이전 조언 의혹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미신이나 점 보는 사람 아니다”
1952년생으로 알려진 천공은 정법, 진정선생 등으로도 불린다. 그가 언론에 처음 등장한 건 지난해 3월. 인터넷매체 ‘최보식의 언론’과 했던 인터뷰 기사에서다. 당시 천공은 “윤석열 검찰총장은 내 공부를 하는 사람이다. 열흘에 한 번쯤 만난다”며 “대선에 나온다”고 단언했다. 자신이 ‘윤석열 멘토’임을 은근히 과시했다.
이후 천공은 사람들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0월 국민의힘 대선 후보 경선 토론장에서 거명됐다. 유승민 후보가 윤석열 후보를 향해 “천공스승 아느냐. 모 언론인이 인터뷰했는데 본인 스스로 윤석열 멘토이고 지도자 수업을 한다고 했다”고 물었다. 이에 윤 후보는 “부인(김건희)을 통해 알게 됐다. 부인하고 같이 몇 번 만났다”면서도 “멘토라는 말은 과장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사람에 따라서 그분(천공)을 보는 거에 대한 호불호는 갈릴 수 있지만 무슨 미신이나 점 보는 사람은 아니다. (천공의) 강의 동영상이 많으니 한번 보시면 어떤 분인지 알 수 있다”고 맞받았다.
천공은 윤석열 검찰총장에게 사퇴할 것을 조언했던 사실을 직접 공개하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YTN 인터뷰에서 “(윤 후보에게 검찰총장 사퇴 문제에 대해) 정리할 시간이 될 것이다, 이런 코칭을 해줬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와) 너무 오래 싸우면 모든 검찰들이 어려워질 거니까, 그런 것들을 조금 판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해줬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이 대선 출마 선언을 한 뒤엔 만나지 않았다”며 “멘토는 아니다”고 했다.
#입금자 명단에 ‘윤석열·김건희’ 이름은 없어
그렇다면 윤 대통령 부부와 가까운 천공의 위세는 얼마나 될까. 일요신문은 최근 무속신앙계에서 천공의 파워를 엿볼 수 있는 자료를 입수했다. 바로 천공이 운영하는 (주)정법시대가 작성한 ‘정법시대 유상증자를 위한 청약금 입금 내역’이다.
이 청약금 내역에 따르면, 정법시대는 2014년 12월 24일 유상증자를 공고하고 은행 계좌를 개설해 ‘청약의향금’ 명목으로 1주당 10만 원씩 청약금을 받았다. 2014년 12월 24일부터 이듬해 2015년 1월 16일까지 24일 동안 입금된 청약금은 19억 3544만 6190원. 이 가운데 4700만 원은 중도에 일부 청약입금자에게 반환되거나 입금이 취소됐다. 이를 제외해도 18억 8844만 5290원이 은행 계좌에 남았다.
청약입금자는 230여 명. 입금자 가운데 유명인사는 눈에 띄지 않았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이름도 없었다. 1인당 평균 820만 원 정도 입금했다. 입금자들은 부산은행, 대구은행, 경남은행 등 주로 영남권 금융기관을 통해 청약금을 납부한 것으로 파악됐다.
천공은 2014년부터 온‧오프라인에서 일명 ‘정법(正法) 강의’를 하고 있다. 청약입금자 대부분은 이 강의를 들은 수강생으로 알려졌다. 당시 정법시대의 유상증자 과정에 깊숙이 관여했던 A 씨는 “그(입금자) 중엔 (천공) 추종자도 있었고 종교로 믿는 사람도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처럼 천공 수강자들이 단기간에 20억 원에 육박하는 돈을 입금했다는 건 그에 대한 신뢰도가 그만큼 높다는 걸 방증한다.
그런데 정법시대는 갑자기 유상증자를 철회했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2015년 1월 23일자 정법시대 공문엔 “2014년 12월 24일 공고한 유상증자와 관련해 유상증자를 철회하기로 결정했다”고 명시돼 있다. 청약금이 순조롭게 입금되던 상황에 왜 갑자기 유상증자를 철회했던 것일까. 당시 정법시대가 유상증자에 필요한 법적 절차를 무시한 채 무리하게 추진했던 게 철회 배경으로 우선 꼽힌다.
주식회사는 유상증자를 할 수 있다. 다만 유상증자 전에 주주총회 결의와 정관 변경, 주주 등록 등 절차가 필요하다. 정법시대가 이 절차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유상증자 추진 당시 천공과 여러 차례 만난 B 씨는 “정법시대가 유상증자 청약 공고문에 ‘청약금’이 아닌 ‘청약의향금’이란 용어를 쓴 것 자체가 FM(정석)은 아니었다”며 “정법시대가 법적 절차를 거치지 않고 청약의향금을 모은 다음 나중에 법적 절차를 밟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당시 정법시대 내부에서도 “정식 유상증자 절차를 따르지 않으면 편법·우회적 기부금품 모집으로 간주돼 법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유상증자 과정에 관여했던 A 씨는 “천공스승이 ‘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내부 의견을 받아들여 유상증자 철회를 지시했다”고 밝혔다.
법적인 절차 문제뿐 아니라 입금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져 유상증자를 중도에 포기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정법시대 내부 사정을 아는 인사는 “천공이 처음부터 유상증자를 목적으로 청약금을 받은 게 아니라 자신의 추종자들 충성도를 확인하기 위해 돈을 모았던 것 같다”며 “입금자들 사이에 누구는 얼마를 내고 누구는 얼마밖에 내지 않았다며 갈등이 빚어졌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당시 정법시대는 유상증자를 철회하면서 청약의향금을 입금자들에게 전액 돌려줬을까. 2015년 1월 23일자 정법시대 공문엔 “(유상증자) 철회와 관련해 이미 납부된 유상증자 청약의향금을 청약자들에게 돌려주고자 한다”고 적혀있다. 이와 관련해 유상증자 과정에 관여했던 A 씨는 “천공스승이 돈을 모두 돌려주라고 지시해서 모든 회원에게 입금해줬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정법시대의 유상증자 추진과 관련해 질의서를 작성해 천공 측에 전달했다. 하지만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
천공의 (주)정법시대는? ‘용산시대 예측’ 10년 전 터 잡아
‘윤석열 대통령 부부 조언자’ 천공스승은 (주)정법시대라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2017년 5월 자본금 5000만 원으로 법인 등록했다. 자본금은 현재 2억 원으로 늘었다. 정법시대 법인등기부에 따르면 △출판 △공연 △광고 및 행사 대행 △교육 관련 서비스 △무역 △연예 매니지먼트 등 다양한 수익 사업을 한다.
정법시대 인터넷 홈페이지엔 천공스승 활동 영상과 저서 등이 소개돼 있다. 영어, 일어, 이태리어 등 다국어 자막 강의까지 제작하면서 정법 이념을 설파하고 있다.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천공은 ‘차원계’ ‘천상계’ ‘귀신’ 등 용어를 쓰며 도인에 가까운 풍모를 보인다. 정법시대 사무실은 서울 용산구 용산동5가에 있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 P 타워 5층에 있다. 용산 대통령실에서 불과 1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에 일각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천공과 가까운 거리로 집무실을 이전한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천공은 지난 3월 23일 YTN 인터뷰에서 “(정법시대가 용산에 사무실을 연 지는) 10년 가까이 된다”며 “(용산엔) 서울에서 앞으로 최고 발복(發福)해야 될 자리가 있기 때문에 용산에 사무실을 연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법시대 사무실은 39평형으로 김 아무개 씨가 소유하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매매가는 23억~25억 원, 전세가 10억 5000만~11억 5000만 원이다. 한 달 관리비는 50만 원 정도다.
일요신문은 최근 정법시대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봤다. P 타워 5층 입주해 있는 정법시대 사무실로 올라가려면 1층 현관에서 카드 리더기를 찍어야 했다. 아무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이 아파트 경비원은 천공과 정법시대를 묻는 기자 질문에 “그 사람(천공)이 정확히 누군지 잘 모르겠다”면서도 “그 호수(정법시대)에 우편물이나 편지 같은 것은 많이 온다”고 말했다.
‘정법 강의’ 들어보니…“사모님은 영적으로 발달된 사람”
천공스승은 “17년 동안 산에서 수행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한다. 이를 토대로 2014년부터 온‧오프라인에서 ‘정법(正法) 강의’를 하고 있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뿐 아니라 건강, 연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즉문즉답’식으로 강의한다. 천공스승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은 1만 2600개를 넘는다. 구독자는 12일 기준 8만 9000여 명이다.
그의 강의 가운데는 정부 정책에 대해 자신의 주장을 펼친 대목이 적지 않다. 대통령 취임식이 있던 10일엔 유튜브에 ‘尹(윤) 당선인 과학정책, 정치와 과학기술 분리’를 주제로 한 영상 강의를 올렸다. 그는 “과학시대로 갈 수밖에 없다. 과학 활동을 하는 데 규제를 많이 풀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쓸데없는 복지정책 때문에 이 사회가 꽁꽁 얼어붙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일에도 ‘새 정부, 대형 포털의 뉴스 서비스 투명화 방안’에 대해 “언론 자율화는 시장에 맡겨야 한다”며 “내가 볼 때는 (윤석열) 정부가 잘 해나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 논란이 한창이던 지난 3월 26일엔 “대통령이 바뀌면 이 나라 운(運)도 70% 바뀐다. 그 분(윤석열 대통령)이 정사(政事)를 펼치기 좋은 장소에서 펼쳐야 한다. 나는 3년 전에도, 7년 전에도 서울에선 용산 시대가 열린다고 말한 적 있다. 최고 좋은 자리에서 대통령이 업무를 보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 부부에 대해 언급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에서 물러난 지난해 4월 그는 유튜브 영상에서 “윤 총장은 ‘별의 순간’에 와 있다. 윤 총장은 조직원이 돼선 안 돼. 국민을 위해 일해야지. 윤 총장이 하실 것은 사회 어른들을 찾아뵈면 된다. 아무것도 하지 마. 원로들, 어른들, 나라 위해서 노력하신 분들 한 분 한 분 만나면서 고견을 듣고, 그 사람 심정도 받아들이고.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고견을 들으러 돌아다녀야 돼. 그거만 해. 그거만 하면 조직은 윤 전 총장 앞으로 올 것이니깐”이라고 주문했다. 공교롭게 이 강의 이후 윤 전 총장은 3개월 동안 노동문제 등 각계 전문가를 만났다.
천공의 또 다른 주요 발언을 보면 “내가 검찰총장 퇴임날짜를 정해주진 않았지만, 그 분(윤 후보)이 내 의견을 물어본 적은 있다. 윤 총장이 국민을 위해 희생하려는 걸 봤다.” (지난해 10월 11일) 지난 1월 5일엔 윤석열 후보와 갈등을 빚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를 겨냥해 “30대라는 것은 사회를 배우고 공부를 해야 할 나이지, 어떤 장(長)을 맡아가지고 통수를 맡을 나이는 아니다. 윤 후보가 숙이고 갔으면 풀려고 노력을 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윤석열 대통령 후보 시절 김건희 여사에게 조언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15일 영상에서 “나가서 발로 뛰고 악수하지 말고, 집 안에서 책, 유튜브 보고 공부하고 봉사하면서 내조를 해야 한다. 내조를 잘한다면 윤석열만큼 희망적인 사람이 없다”고 했다. 지난 1월 31일엔 “윤 후보 사모님은 영적으로 굉장히 발달돼 있는 사람이다. 문화 예술과 영적인 철학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평했다.
지난 2월 ‘정치인과 무속신앙의 상관관계’ 주제로 했던 강의에선 “불교, 기독교, 천주교 해서 큰 세력을 만들면 종교이고, 우리가 하는 행위는 무속신앙이냐. 당신들이 하는 행위가 종교라면 우리 무속인이 하는 행위도 종교다. 조직을 만들지 않고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을 무속신앙으로 치부해서 쌈마이라고 한다. 조직이 작은 사람들은 대들지도 못하고 피해만 보고 있다. 그 시대는 끝났다. 지식사회가 됐다”며 무속신앙을 강하게 옹호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