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총 8위 코인 찰나의 공격에 무너져 ‘가상자산의 리먼브러더스’…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 취약성 드러내
시가총액 50조 원에 달했던 가상자산(암호화폐) 루나가 단 수십 시간 만에 가치의 99% 이상 사라져 버린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루나 사태’를 두고 외신들은 리먼 브러더스 사태에 비유하고 있다. 외신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2007년 세계 경제를 뒤흔든 금융위기가 발생한 사건과 이번 루나 사태가 코인 시장을 뒤흔든 게 비슷하다고 본 것이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금융 시장에 충격을 줬던 것처럼 루나 사태는 가상자산 시장에 큰 충격을 줬다.
루나 사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테라 폼랩스가 운영하는 루나와 UST의 상관 관계를 알아야 한다. 권도형 테라 대표는 트위터 아이디 도 권(Do Kwon)으로 더 유명하다. 그가 이끄는 테라는 루나와 UST를 운영하는 재단이다.
UST는 달러와 페깅(고정)되는 스테이블 코인이다. 스테이블 코인은 가상자산 거래 편의를 위해서 1달러 가치에 페깅시켜 놓은 코인을 말한다. 이런 스테이블 코인은 1코인을 주면 1달러를 받는다. 이처럼 USDT(테더), USDC, DAI 등의 스테이블 코인은 달러나 실물, 가상자산 등을 담보로 가치를 보장한다.
루나는 스테이블 코인이지만 다른 코인들과는 구조가 다르다. 자산을 담보로 한 게 아니라 알고리즘으로 1달러 가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1UST를 쓰기 위해서는 1달러 가치의 루나를 태워야 한다. UST를 쓰는 사람이 많을수록 루나가 계속 소각돼 루나 발행량이 줄어들고 가격이 오른다. 반대로 UST 가치가 1달러 밑으로 떨어지면 1달러를 방어하기 위해 루나를 발행해 그 가치를 UST에 투입한다. 두 개 코인이 서로 연동되면서 1달러를 맞춰 나간다.
우리나라는 일반적으로 원화로 거래하지만 외국 대형 거래소는 USDT 등 스테이블 코인을 기반으로 거래한다. USDT 등 스테이블 코인은 대형 거래소에서 확실한 수요가 있었고 담보도 있어 많은 사람이 믿고 쓴다. 반면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대부분 수요가 그다지 많지 않아 페깅이 깨지면서 사라져 버린 과거가 있었다.
그런데 루나는 달랐다. 디페깅(페깅이 깨진 상태)이 몇 번 있었지만, 다시 페깅을 맞추면서 살아 돌아왔다. 더군다나 UST 등 테라 생태계에서 앵커 프로토콜, 차이페이, NFT(대체불가토큰) 등 쓰임새가 많아지면서 루나 가격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탈중앙화된 사회에서는 탈중앙화 코인이 필요하다’는 루나를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앵커 프로토콜 등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가상자산 긍정론자들은 탈중앙화 사회에 UST가 앞으로 더 쓰일 일이 많을 것이고 루나 가격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앵커 프로토콜은 UST를 입금하면 20% 이율을 주면서 UST 수요가 몰리기 시작했다. 20% 수익이 워낙 좋아 일각에서는 폰지 사기(앞에 사람 이자를 뒤에 온 사람 돈으로 주는 사기)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앵커 프로토콜 20% 이자를 두고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5월 12일 정 부회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구조를 모르기에 조심스럽지만, 예치 이자 20%는 전 세계의 금융산업이 재편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투자펀드도 이런 약속을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루나 지지자들 바람대로인지 UST로 입금해야 하는 앵커 프로토콜에 돈이 쌓이면서 루나 가격은 폭등하기 시작했다. 루나 가격은 약 2년 만에 500원 이하에서 14만 원까지 급상승했다. 소위 루나로 ‘졸업’(경제적 자유를 획득했다는 은어)했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루나 시총은 점점 증가해 전체 가상자산 시장에서 8위까지 달성했다. 시가총액 50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규모가 되면서 관심이 쏠리기 시작했고 여러 각도에서 비판하는 시각도 나왔다.
루나를 향한 몇 가지 의심의 시선은 다음과 같았다. ‘UST 보유자들이 모두 달러로 바꾸려고 할 때 테라 재단은 이를 모두 돌려줄 돈이 있나’, ‘앵커 프로토콜에 쌓인 돈의 이자를 언제까지 지급할 수 있나’, ‘앵커 프로토콜에서 돈이 빠져나가면 루나 가격이 지켜질 수 있나’ 등의 얘기였다.
하나의 예로 테라 재단이 앵커 프로토콜 이자 20%를 예치자에게 지급하기 위해서는 20% 이상 이율을 내고 빌려 가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20% 수익은 예치 수요만큼 대출 수요가 많지 않으면 지급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실제로 예치 수요만큼 대출 수요가 받쳐주지 못했다. 이자로 지급할 돈은 떨어져 갔다. 테라 재단은 이율을 내리거나 자기 돈으로 이율을 보조해줘야 했다.
올해 1월 테라 재단은 여러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LFG(루나 재단 경비대)를 설립한다. 테라 재단은 LFG에 준비금을 보유하게 해서 테라 가치를 방어하고 더 단단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로 했다. 2월 LFG는 앵커 프로토콜에 이자 지급을 위한 추가 자금을 더 넣기로 결정한다. 만약 보조금 지급 대신 이율을 내린다면 앵커 프로토콜에서 돈이 빠져나가게 되고 이에 따라 루나가 폭락할 수도 있기 때문에 내린 결정으로 보였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A 씨는 “이런 결정을 보면 과연 UST가 완전히 탈중앙화된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으로 보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었다. 결국 권도형 대표의 중앙화된 결정 아니었나”라고 반문했다.
테라 재단은 이자 지급을 위해 약 4억 5000만 달러 규모 준비금을 추가로 입금했지만, 앵커 프로토콜에 쌓인 돈이 워낙 많아 단 몇 달이면 또 다시 바닥을 드러낼 상황이었다. 이런 우려가 쌓여서인지 지난 5월 9일 테라 재단은 약 10조 원 이상의 비트코인을 사서 LFG에 지급 준비금 형태로 보유하기로 했다는 결정을 발표한다. 은행이 달러나 채권을 사서 비상사태에 대비하듯 테라 재단은 비트코인을 준비 자산으로 선택해 안전을 추구한 셈이다.
이때 테라 재단은 안정성을 더욱더 높이기 위해 3Pool에서 4Pool로 이동하는 결정도 내린다. 간단하게 말하면 3개의 스테이블 코인을 묶어둔 곳에서 4개가 묶이는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루나 사태는 아직 확실히 드러나지 않았고 가상자산의 익명성 때문에 영원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 루나는 어느 순간 단 몇 시간 동안 지속된 디페깅이 붕괴의 트리거가 됐다. 붕괴가 시작돼 8만 원이 넘던 루나가 20원까지 쪼그라드는 데 약 7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루나가 순식간에 무너져 내린 이유는 정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여기서부터는 업계 소식과 드러난 정황을 바탕으로 한 추정이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번 테라 사태는 과거 조지 소로스가 파운드화에 대해 숏포지션을 취하면서 영국을 침몰시켰던 것과 매우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
가상자산 업계 소식을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다. LFG는 앵커 프로토콜에 이자 비용 약 4억 5000만 달러를 지급해주고, 준비금으로 비트코인을 구매했다. 그런데 LFG가 기존 3Pool에서 4Pool로 이동하면서 짧게나마 손에 쥔 유동성이 극도로 마르게 된다. 이때 어떤 세력이 UST를 대량으로 공매도하면서 의도적으로 페깅을 깨트린다. 유동성이 마른 LFG는 이를 방어하는 데 시간이 걸리고 디페깅된 상태로 시간이 흐른다.
시장은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의 위험성을 인식하게 됐다. 어쩌면 조지 소로스가 ‘영국 파운드화는 말라리아에 걸렸다’고 말했듯, 공매도 세력이 UST 위험성을 선동했을지도 모른다. UST가 1달러를 담보하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투자자들은 자산을 지키고자 앵커 프로토콜에서 UST를 인출해 환전하기 시작한다. 짧게 깨진 디페깅이 LFG 노력으로 다시 복구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뱅크런처럼 ‘테라런’이 발생하면서 루나는 끝도 없이 추락한다. 11일 UST 1개는 0.5달러도 지급하지 못하게 됐다. UST 가치를 지키기 위해 루나가 발행되지만, 모두가 UST를 던지기 시작하자 루나 발행만으로는 방어가 불가능해진다.
루나를 통해 UST 페깅을 맞추지 못하면 앞으로 루나는 계속 발행될 테고 루나 가치의 폭락이 불가피하다. 약세가 예상되면서 투자자들이 모두 루나를 던지면서 루나 가격이 떨어지는 속도는 더 빨라진다. 루나 가격이 내려갔으니 루나를 발행한다고 해도 UST를 받치기는 더욱 힘들어진다. 선순환으로 가치를 보장하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악순환으로 접어들면 한 순간에 회생 불가능 지점으로 다가갔다. 페깅이 깨진 상태로 시간이 흐른 스테이블 코인 가운데 살아남은 코인은 역사상 없었다. UST가 1달러와 디페깅된 지 약 48시간이 지나면서 루나 가치는 100분의 1 이상으로 추락했다.
5월 12일 루나는 발행량을 미친 듯이 늘리며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다. 권도형 대표는 11일 트위터를 통해 ‘루나를 시중에 더 풀겠다’고 했다. 루나 발행량이 늘어나면 루나 투자자들은 손실을 본다. 그런데도 테라 생태계 가장 중요한 축인 UST가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루나는 11, 12일 물량을 쏟아내면서 27억 개에 달했다. 백서상 최대 발행량인 10억 개를 이미 훌쩍 넘은 수치다. 루나 수십억 개를 기존 가치 1000분의 1인 100원에라도 팔면서 어떻게든 UST 페깅을 맞춰보겠다는 것이다. 5월 13일 한국시간 오전 1시 루나는 13원까지 떨어졌다. 3일 전 루나 가격은 8만 원이었다.
UST는 루나의 무한 발행으로 살아날 수 있을까. 일각에서는 이런 조치를 통해 UST 페깅을 맞추는 게 가능하냐는 근본적인 질문이 나온다. 또 다른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B 씨는 “이미 테라는 신뢰를 잃었다. 루나 혹은 UST에 누가 자산을 예치하겠나. 이미 끝난 프로젝트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루나 침몰에는 신으로 추앙받던 권도형 대표와 테라 재단을 향한 맹목적인 믿음이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 C 씨는 “루나가 200원에서 14만 원까지 약 7만% 상승하면서 권도형 대표는 신이라고 불렸다. 커뮤니티는 테라 재단을 향해 맹목적인 믿음을 보냈다”며 “50조 원 이상 가치가 나가던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찰나의 방심을 노린 공격으로 무너졌다. 이 방심에는 이런 커뮤니티 분위기도 일조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루나 사태는 2018년 한국발 전세계 가상자산 폭락의 배경이 된 소위 ‘박상기의 난’ 이후 두 번째 한국발 가상자산 폭락 사건으로 꼽히기도 한다. 루나가 완전 붕괴 직전에 몰리면서 가상자산 시장 전체도 ‘검은 수요일’, ‘검은 목요일’을 연달아 겪고 있다.
메이저 가상자산도 단 몇 시간 만에 가치가 0에 수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 가상자산 투자자는 “지금은 시장에 공포만이 지배하고 있다”면서 “가상자산 시장의 미래를 믿는 나조차도 지금은 이 시장이 루나 사태를 이겨내고 다시 오를 수 있을지 회의적일 지경”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