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곳곳 환영·비방 플래카드 뒤섞여…밤낮 없는 확성기 집회로 주민 불편 호소도
“기자인 거 다 안다. 고마 나가소. 기자 양반들 죄다 찾아와 아주 질려 부렸다.”
평산마을 입구에 위치한 마을회관. 기자가 회관 문을 열고 쭈볏거리자 연세 지긋한 노인 한 분이 건넨 말이다. 취재 열기에 주민들이 극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듯했다. 평균 주민 연령 70대, 48가구로 주민 100여 명뿐인 평화롭던 마을의 분위기는 일요신문이 불과 50일 전인 3월 28일 찾았을 당시(관련기사 [르포] 영남 알프스에 포옥~ 문재인 대통령 양산 사저 가보니)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후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잊힐 권리’를 꾸준히 피력해왔다. 그는 5월 10일 평산마을에서 “저는 이제 완전히 해방됐다”며 “제 아내와 함께 얽매이지 않고 잘살아 보겠다”고 ‘인간 문재인’을 강조하기도 했다. 퇴임한 그가 여생을 보낼 평산마을 사저는 KTX 울산역과는 13km가량 떨어져 있는 작은 마을이다. 울산역에서 승용차로 이동하면 대략 22분 거리. 영남 알프스로 불리는 영축산 품에 안겨 있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평산마을 주민들이 마련한 플래카드, 화환 등이 보였다. 플래카드에는 ‘문 대통령님 반갑습니다’, ‘문 대통령님 평산마을에 오심을 환영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졌다. 마을회관에는 문 전 대통령 사진과 ‘당신의 국민이어서 행복했습니다’ 글귀가 있는 포스터도 눈에 띄었다.
평산마을 사저를 보러 온 방문객들의 차량 대열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양산에서 줄곧 살았다는 한 50대 남성은 “양산인으로 자부심이 있다”며 “문 대통령이 못했던 것도 있지만, 고생이 많았다. 막걸리나 같이 한 잔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산마을 주민 60대 여성은 “대통령이 왔는데 안 좋을 게 뭐가 있나. 시끄럽긴 하지만 잠시라 생각한다”며 “대통령께서 이사 오기 전에 마을 네 군데에 떡을 돌렸다. 감사하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은 2020년 4월 사비를 들여 이 부지(2630m² 규모)를 매입했다. 한의사인 문 전 대통령 경남고 후배가 소유했던 부지로 알려져 있다. 자택은 4월 18일 준공됐으며, 문 전 대통령 경남고 동창인 건축가 승효상 씨가 설계했다. 옅은 회색 외관으로 푸른색 박공지붕을 얹은 형태다. 남향이며 외관에는 장식이 없어 수수한 느낌을 준다.
평산마을 사저는 조용한 마을 분위기와 어울렸고, 주민들의 주택 사이에서도 위화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진주에서 왔다는 한 40대 여성은 “엄청 화려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크지 않다”고 전했다. 반면 50대 한 남성은 “둘이 살 건데 세금 들여 저렇게 크게 짓는 게 맞느냐”며 “원래 이곳에 살지도 않았으면서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표시했다.
기자는 문 전 대통령 사저와 100m가량 떨어진 맞은편 논밭으로 가봤다. 사저가 한 눈에 보이는 곳이었다. 사저 앞으로는 드넓은 논밭이 위치했고, 논밭 사이로는 차가 한 대 겨우 지나갈 만한 길이 하나 나 있다. 사저 내 대나무 울타리 뒤편에는 임시 가림막도 설치됐다. 5월 11일 여러 언론사가 망원렌즈로 사저 내부를 촬영하자 급하게 마련됐다고 한다. 사저의 큰 창 너머 은은한 조명 빛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안으로 가는 길은 외부인 출입이 철저히 통제됐다. 사저 인근에 배치된 경찰들만 대략 30~40명으로 추산됐다. 마을에 들어설 수 있는 입구는 총 4곳. 입구마다 경호 인력이 2명가량 배치됐다. 사저 바로 앞에도 경호원들이 보였다. 외부인들은 삼엄한 경비 속에서 이동해야 했다. 평산마을 한 70대 남성 주민은 “불편해도 어쩔 수 있느냐”며 “조용했던 곳인데 참 아쉽다”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반대 집회 등으로 인한 소음 등 불편을 호소하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었다. 5월 12일 한 극우 단체는 문 전 대통령 사저에서 100m 정도 떨어진 도로 위에서 국민교육헌장 등을 틀어 놓았다. 일정한 시간을 사이를 두고 마이크에다 문 전 대통령을 향한 욕설도 이어 갔다. 스피커 소리가 평산마을을 쉴 새 없이 가득 채웠다. 일부는 이를 따라하며 동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채증팀을 투입해 소음을 측정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오후 1시 10분경 경찰은 이 집회의 소음이 68dB를 넘겨 집회 단체에 1차 유지명령을 내렸다. 현행 집시법에 따라 확성기 소리는 주거지역의 경우 65dB(주간 기준)를 넘겨선 안 된다. 평산마을 주민은 “하루 종일 저러고 있다. “밤새 스피커를 틀어놔서 잠을 못 잤다”며 “처음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도무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고통을 토로했다.
동네 입구에서 인근엔 문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현수막도 10개 넘게 설치됐다. ‘사악한 문재인 정권 국민들만 개고생!!’, ‘문재인 자신이 살고자 국민을 버렸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집회 참여자들이 문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욕설을 주고받으며 실랑이하는 모습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 부산에서 온 한 60대 여성은 “전직 대통령 앞에서 이렇게 떠들어도 되는 세상이 됐다”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말했다.
5월 12일 문 전 대통령의 첫 외출 모습도 보였다. 낮 12시 45분경 자택에서 차량 2대가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일부 언론 카메라에는 파란색 넥타이를 맨 문 전 대통령과 검은 옷의 김정숙 여사가 찍히기도 했다. 문 전 대통령은 이날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귀향 후 첫 외출.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인사드리고 통도사에도 인사 다녀왔다”고 남겼다. 문 전 대통령 선친 묘소는 평산마을에서 20여 분 떨어진 양산 상북면에 위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 귀향으로 인근 카페 역시 활기를 도는 듯했다. 평산마을에서 1km 내외로 떨어진 곳에 3층 규모의 루프탑 카페는 통창 구조로 돼 있어 영축산 자락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 카페 관계자는 “지난해 말에 가게 문을 열었다”며 “아주 많이는 아니지만, 문 전 대통령 귀향 이후에 더 많은 분들이 와주신다”고 전했다.
양산=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