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프링 전쟁 포문 ‘안씨 독점’ 삐거덕
▲ 국내 침대업계 1·2위인 에이스침대와 시몬스 침대는 안유수 에이스침대 회장의 장남과 차남이 사장을 맡고 있다. |
국내 가구업계 1위 한샘이 최근 생산 체제를 갖추고 매트리스 시장에 본격 진출할 것을 밝혔다. 한샘은 세계 최고 수준의 매트리스용 스프링 제조 기계 회사인 스위스 레멕스사(社)의 설비와 기술을 들여왔다. 이 회사의 기술과 기계 중에는 업계 1위인 에이스침대도 오랫동안 독점 사용해온 것이 있다. 한샘은 레멕스사가 올 초 새롭게 개발한 기술과 기계에 대한 독점 사용권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한샘은 10월 초 매트리스 신제품 ‘컴포트아이’를 선보이면서 “매트리스 시장에서도 1위 기업으로서 면모를 보이겠다”며 침대·매트리스 시장의 지각변동을 자신했다.
웅진코웨이도 지난 12일 레스토닉코리아와 제휴해 매트리스 렌탈서비스를 시작할 것을 알렸다. 홍준기 웅진코웨이 사장이 “침대 매트리스를 정수기 비데 공기청정기 등 렌탈 마케팅 성공제품의 뒤를 잇도록 집중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힐 정도로 의욕에 차 있다. 이들이 자신감을 보이지만 안씨 일가가 장악해온 침대·매트리스 시장은 그리 녹록지 않다.
황해도 사리원에서 출생한 안유수 회장이 에이스침대(옛 에이스침대공업사)를 설립한 것은 1963년. 안 회장은 침대라는 한 우물만 파면서 업계 선두에 올라섰고 지금까지 그 위치를 유지해오고 있다. 안 회장과 두 아들, 즉 안성호 에이스침대 사장과 안정호 시몬스침대 사장의 노력과 성과는 분명 평가할 만하다. 매트리스부문에서 해외 의존도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하며 해외에 수출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세계 침대업계 1위인 ‘씰리침대’ 등을 들여와 ‘에이스씰리침대’라는 이름을 썼지만 지금은 당당히 ‘에이스침대’라는 이름을 걸고 세계무대에 진출하고 있다. 안 회장은 1992년 시몬스침대와 계약을 맺으며 국내 침대시장에서 점유율 1, 2위 업체를 모두 거느리게 됐다. 안 회장은 2001년 차남 안정호 사장에게 시몬스침대 대표를 맡겼고 2002년에는 장남 안성호 사장에게 에이스침대를 맡기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안씨 삼부자가 국내 침대시장의 지배력을 강화해나가면서 이런저런 잡음이 일어났다. 업계 일각에서는 ‘안씨일가 독점체제’를 지적하고 있다. 현재 연간 8000억 원이 넘는 침대·매트리스 시장의 1위 업체는 에이스침대로 점유율은 약 30%며, 2위는 점유율 12%의 시몬스침대로 알려져 있다. 안성호·정호 형제가 시장의 42%를 점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터에 안유수 회장이 미국의 대표 침대업체인 썰타침대와 계약하고 대표를 맡은 부분이 비판을 받는다. 안 회장이 국내 썰타침대 대표를 맡은 건 지난 2002년. 장남 안성호 사장에게 에이스침대를 맡기고 경영에서 물러난 해다. 안 회장은 당시 “아들들의 경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직접 ‘경영은 이렇게 하는 것’을 다시 한 번 보여주고 싶다”는 말로 경영 복귀를 선언한 바 있다.
썰타침대는 한때 에이스침대, 시몬스침대에 이어 업계 3위라는 평가를 받았다. 결국 국내 침대업계 1, 2, 3위를 모두 안씨 삼부자가 접수한 셈이다. 게다가 ‘경영이 뭔지 보여주겠다’던 안유수 회장은 현재 썰타침대 경영에 그다지 관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서는 안유수 회장이 오래 전 썰타침대 대표직에서 물러났으며 썰타침대와 안씨 일가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하지만 썰타침대가 여전히 안씨 일가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기자는 취재 과정에서 에이스침대 측으로부터 “썰타침대는 현재 시몬스침대가 맡고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대해 시몬스침대 측은 답변 대신 홍보대행사를 연결해줬다. 민감한 대목임에도 답변을 피한 것이다. 홍보대행사 관계자는 “처음 듣는 얘기”라고 밝혔다.
안 회장이 썰타침대를 법인이 아닌 개인사업자 형태로 운영하고 이유도 차남인 안정호 시몬스침대 사장에게 맡겼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긴 했다. 이 같은 점이 사실이라면 안 회장은 ‘가족 독점, 브랜드 독점’이라는 비난에 자유롭지는 못할 듯하다.
마케팅 면에서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의 공통점이자 특징 중 하나는 ‘노(No) 세일’이다. 에이스침대는 45년이 넘게 할인판매를 한 차례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안성호 사장은 이를 품질에 대한 자신감이자 자랑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세일을 하지 않은 이유가 비단 거기에만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시몬스침대와의 가격담합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실제로 지난 2009년 1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침대 소비자 판매가격의 할인판매 등을 금지하는 ‘가격표시제’에 합의하고 이를 실행해온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에 시정명령과 함께 각각 과징금 41억 9500만 원, 10억 3300만 원을 부과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는 일반 대리점이 할인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합의하고 이를 실행해왔다.
공정위는 심지어 침대가격표를 대리점에 전달한 후 일반인을 고용해 모니터링을 실시, 가격할인 등을 한 대리점을 적발하고 계약해지 등의 방법을 쓴 것으로 확인됐다. 에이스침대와 시몬스침대는 공정위의 명령이 부당하다며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2009년 12월 서울고등법원이 공정위의 손을 들어준 데 이어 올해 9월 대법원도 공정위의 명령이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렸다.
한샘과 웅진이 쟁쟁한 경쟁자로 떠오른 것에 대해 에이스침대 측은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한샘은 지난 2007년 씰리침대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바 있지만 판매가 부진했던 바 있다. 그러나 단순히 물건을 들여와 파는 것과 생산라인을 갖추고 생산·판매를 책임지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한샘·웅진의 출사표처럼 과연 침대·매트리스 시장에서 지각변동이 일어날지 주목된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