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덩이에 뿔 날라 이눔의 의자 화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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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어떤 직장이든 컴퓨터는 업무처리의 필수 용품이다. 이 때문에 고급 노트북을 지급하거나 최고 사양으로 무장한 컴퓨터를 지급하는 회사가 많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팬시·문구업체에 근무하는 Y 씨(32)는 하루에도 몇 번씩 컴퓨터 때문에 열통이 터진다. 한창 업무를 보다가도 갑자기 멈춰버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친구는 집보다 회사 컴퓨터가 훨씬 빨라서 컴퓨터 때문에 일부러 늦게 퇴근할 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후진 컴퓨터 때문에 일거리를 들고 집으로 가서 일할 때가 많거든요. 친구 말로는 컴퓨터가 날아다닌다던데 저는 자료가 날아갈까봐 노심초사하면서 작업을 합니다. 인터넷 창을 3개만 띄워도 속도가 확 느려져요. 바꿔달라고 해봤지만 제가 사용하는 컴퓨터에 중요자료가 많다고 쉽지 않다는 핑계만 대네요. 그럼 아예 외장하드로 백업하면 될 텐데 그런 방안은 생각도 안 해보고 늘 같은 대답만 하니 짜증이 납니다.”
컴퓨터만큼이나 직장인과 밀접한 것이 의자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한다. 장시간 앉아있어야 하기 때문에 건강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전자업체에 근무하는 M 씨(34)는 불편한 의자를 견디다 못해 결국 사비로 의자를 마련했다.
“의자가 불편하니까 허리 통증도 심해지고 업무에 집중이 잘 안됐어요. 야근은 반복되는데 그 의자에서는 도저히 하루에 12시간씩 앉아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친구 회사는 의자만 200만 원에 가까운 제품이라고 하더군요. 그 정도까지는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좀 편한 의자였으면 좋겠는데 위의 눈치가 보여서 바꿔달라고 말도 못하겠더라고요. 결국 얼마 전에 개인 비용을 들여 의자를 구입했습니다. 물론 퇴사할 때 가져갈 거죠.”
의자만큼이나 건강과 직결된 것이 사무실 공기다. 공기 순환이 안 되면서 사무실 내 감기 환자도 늘고 알레르기를 앓는 직원들도 생긴다. 이에 건물 자체적으로 자동 환기장치가 구비돼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공기청정기나 가습기 등으로 실내 공기 정화에 노력을 기울이는 회사가 많다. 제조업체에 근무하는 O 씨(여·28)는 그런 노력들은 먼 나라 이야기라고 말한다.
“휴게실에 환기 장치가 잘 안 돼 있는데 다들 거기서 담배를 피워요. 공간이 분리돼 있다고는 해도 담배연기가 제 자리까지 넘어오죠. 게다가 제조업이라 밖에서 먼지도 많이 발생하고요. 목이 따갑고 피부에 트러블도 생기고 힘들어서 공기청정기랑 가습기 좀 사달라고 계속 요구하니 제 책상에만 두고 쓸 만한 장난감 같은 걸 사줬어요. 효과는 거의 없는데도 회사에서는 어쨌든 사줬으니까 됐다는 반응입니다. 중소기업인 언니네 회사는 기관지가 안 좋은 여직원들에게 따로 분리된 공간에서 일할 수 있게 해주고 대형 공기청정기도 마련해 줬다고 하네요.”
작은 부분이지만 직원들을 크게 씁쓸하게 만드는 것도 있다. 소형 사무기기나 사무실 비품들이다. 무역회사에 다니는 J 씨(여·29)는 상사가 복사나 출력 업무를 부탁할 때 가장 짜증이 난다.
“요새는 복사에 출력, 팩스까지 한 번에 초고속으로 처리해주는 좋은 기계도 많다죠. 우리 사무실은 다 따로 있는데 어디 가서 찾기도 힘든 구형 제품들입니다. 복사하면 글자와 바탕 구분이 잘 안 갈 정도로 흐리거나 아예 까맣게 되는 건 다반사예요. 출력 한번 하려면 프린터 앞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 하죠. 회사 소개서라도 한번 출력하는 날에는 아예 다른 일을 해 버릴 정도로 느립니다. 이게 얼마나 업무 효율을 떨어뜨리는지 회사에서도 알 텐데 도대체 바꿔주질 않아요. 이 정도도 투자 안하는 회사를 계속 다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실제로 이직 후 작은 부분에 큰 행복을 느끼는 직장인도 있다. 의류업체에 근무하는 C 씨(여·36)는 옮긴 회사가 이전 회사에 비하면 천국 같다고 이야기한다. 한마디로 일할 맛이 난단다.
“이전 회사는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유명한 브랜드였는데도 직원들이 사무실 비품도 함부로 사용을 못했어요. 사무용 파일 폴더는 제일 싼 제품이었는데 그마저도 재사용해야 합니다. 볼펜도 100원짜리 제일 저렴한 제품만 사용해야 했고요, 붙이는 메모지 같은 건 아예 사용을 못했습니다. 지금 회사는 메모지 모양도 종류별로 다 쓸 수 있고 필기도구도 얇고 잘 써지는 고급 제품이더군요. 비교가 돼서 그런지 이런 것만으로도 일할 때 신이 나더라고요. 계산기같이 작지만 꼭 필요한 비품도 이전에는 완전히 고장 나야 바꿔줬지만 여긴 조금만 불편해도 바로 교체할 수 있으니 편할 밖에요.”
점심 식사 후 혹은 일하는 중간 중간 가지는 커피 타임은 직장인에게 꽤 중요하다. 물류회사에 다니는 P 씨(30)는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커피를 먹느니 개인적으로 따로 사다 먹겠다고 말한다.
“정수기도 제대로 관리가 안 되는 것 같아서 의심스러운데 어느 날 아무 생각 없이 먹던 커피를 살펴보니 흔히 알고 있는 브랜드가 아닌 거예요. 사실 맛이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짝퉁’이었습니다. 경비절감도 좋지만 커피가 얼마나 한다고 검증도 안 된 제품을 사용하는지 씁쓸했죠. 어떤 회사는 직원 전용 카페테리아에서 원두커피를 마실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안마의자도 구비해 놓았다고 그러더군요. 우리 회사는 휴게실은커녕 커피도 이 모양이니 어깨가 처집니다.”
한 취업포털에서 남녀 직장인 1026명을 대상으로 ‘회사에서 이것만 지원해 준다면 업무 효율 200% 높일 수 있다’란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의자가 1위, 공기청정기가 2위, 3위가 다양한 식음료 지원이었다. 이밖에 사례에서 언급된 문구용품이나 소형 사무기기도 순위에 있었다. 실제로 200%까지야 효율이 올라가진 않겠지만 10%만이라도 효과를 볼 수 있다면야 ‘짠돌이’ 작전보다는 의자를 바꿔주는 게 낫지 않을까.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