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네트워크 버리고 새 네트워크로…“감옥에나 가라” 냉소적 반응, 커뮤니티 통과도 힘들어
테라폼랩스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인 UST와 루나를 발행한 회사다. UST는 루나와 시세가 페깅(고정)돼 알고리즘으로 가치가 유지됐지만 페깅이 깨지면서 루나와 UST 모두 가치가 나락으로 떨어졌다. 루나의 가치는 1개 약 14만 원, 시가총액 약 50조 원에 달했지만 현재 루나 가치는 1원도 안 된다.
루나는 가치가 ‘0’에 가깝게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발행량이 어마어마하게 늘어난 것도 숙제다. UST 페깅이 깨지면서 이를 맞추기 위해 루나가 무한에 가깝게 발행됐다. 백서에 따르면 루나 유통량은 10억 개였지만 현재 6조 개 이상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상태다.
루나 생태계가 사실상 불에 타 재가 되면서 이를 둘러싼 커뮤니티는 어수선하다. 일부는 가치가 0에 가깝게 떨어진 루나를 단타 거래를 위해 매수하기도 했고 또 일부는 루나 생태계가 회복될 가능성에 베팅해 매집하기도 했다. 가상자산 투자자 양 아무개 씨는 “로또 긁는 심정으로 100만 원어치 샀다. 예전에는 100만 원어치면 루나 10개였는데, 지금은 100만 개 이상 살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유통량이 늘어난 가장 큰 문제는 각각의 보유자들 셈법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기존 보유자들은 가치가 10만 원일 때 샀지만 뒤에 산 사람들은 1원도 안되는 가격에 샀다. 기존 투자자들은 수억 원을 들여 1만 루나를 보유하고 있다면, 뒤에 매수한 사람은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에 매수할 수 있었다. 기존 보유자들은 완전히 가치가 다른 상황에서 동등하게 대우할 수는 없는 일 아니냐는 것이다.
테라 주도자인 권도형 대표, 김서준 해시드벤처스 대표 등 창업자나 초기 투자자 지분이 휴지조각이 된 상황에서 이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구매한 루나를 동등하게 대우하는 결정이 나오기는 어려워 보인다. 5월 17일 권 대표는 루나 가치 폭락으로 작동을 멈춘 테라를 재건하겠다는 ‘테라 회생 계획2’를 내놨다. 권 대표 계획안의 두 번째로 첫 번째 안은 이미 부결됐다.
두 번째 계획안도 첫 번째와 비교해 조금 더 구체적이 됐다는 정도 외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권 대표 계획을 요약하자면 하드 포크를 통해 새로운 네트워크로 옮겨가면서 새로운 코인을 발행하겠다는 제안이다. 이 과정에서 UST가 디페깅되기 전인 5월 7일 이전 루나 보유자들에게 프리미엄을 주겠다고 했다.
권 대표 계획에 따르면 먼저 하드 포크를 통해 기존 네트워크를 버리고 새로운 네트워크로 옮긴다. 새로운 네트워크에는 알고리즘 스테이블 코인이 없다. 기존 코인은 루나 클래식으로, 새로운 코인을 루나로 부른다. 새로운 코인은 5월 7일 이전 루나 보유자에게 35%를, UST 보유자에게 10%를 분배한다. 공격 이후 참여한 루나 보유자에게는 새로운 코인의 10%를, UST 보유자에게는 20%를 분배한다. 기존 루나, UST 보유자에게 우선권을 주겠다는 것이다. 나머지 25%는 테라 재단이나 개발자를 위해 쓰겠다고 했다.
즉, 기존 엄청나게 발행된 루나 자체를 어찌할 수 없으니 기존 루나는 버리고 새로운 루나 체계로 가겠다는 계획이다. 권 대표는 “잿더미에서 새롭게 일어날 수 있는 기회”라며 “테라 생태계와 커뮤니티는 보존할 가치가 있다”고 했다. 이어 권 대표는 “비록 괴롭긴 하지만 루나는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와 전 세계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들었을 이름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제안에 즉각 반발이 나오기 시작했다. 자오창펑 바이낸스 대표는 권 대표 제안을 보고 SMH라는 글을 남겼다. SMH는 ‘Smack my head’(에휴)라는 뜻으로 어이없음을 표했다. 이어 자오창펑 대표는 “온체인(블록체인)과 오프체인(거래소) 모두에서 특정 시점 이후의 모든 거래를 무효화할 수는 없다”며 “포크만으로는 가치를 얻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세계 최대 가상자산 거래소로 꼽히는 바이낸스는 2018년 약 300만 달러를 투자해 1500만 개 루나를 받았고 시세가 약 2조 원에 달하기도 했다. 현재 바이낸스가 보유한 루나 가치는 약 1000만 원으로 평가된다.
권 대표 회생안에 한 사용자는 “아무도 새로운 체인으로 갈아타는 걸 원하지 않는다. 차라리 루나를 모두 태워버리고 알고리즘을 고쳐 UST 페깅을 복구하는 쪽으로 가라”고 했다. 이 의견은 가장 많은 사용자의 추천을 받았다. 또 다른 사용자는 “루나가 다른 체인으로 갈아타면 수많은 테라 디앱(애플리케이션)이나 UST는 어떻게 되나”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이에 권 대표는 댓글로 “많은 개발자는 새로운 체인으로 옮겨 탈 것이다”라고 답했다.
현재 권 대표가 올린 회생안은 부결 쪽으로 흐르고 있다. 대부분의 유저가 새로운 코인을 발행해서 나눠주는 방법으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볼 수 있다. 권 대표는 새로운 탈중앙화 거래소 출범을 예고하기도 했다. 피닉스 파이낸스라는 트위터 계정은 ‘잿더미에서 열반으로 날아오른다’는 문구와 함께 ‘최고의 테라 2.0 DEX(탈중앙화 거래소)를 론칭하겠다’는 사진을 올렸다. 권 대표는 이 트윗을 리트윗했다.
루나 침몰 이후 회생안과 새로운 거래소 출범 등 여러 방안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들은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로 믿었던 ‘실탄’이 소멸됐다는 것이 꼽힌다. 테라 생태계를 위해 거액의 준비금을 보유하고 있던 루나 경비대(LFG) 계좌가 거의 비었기 때문이다.
기존 LFG 계좌는 약 8만 개 비트코인 등 다양한 가상자산을 보유하며 계좌 가치만 5조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최근 업데이트된 LFG 지갑 내역에는 비트코인 300여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UST 페깅을 맞추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맞추지 못했고 돈만 날린 셈이다. 비트코인 외에 LFG가 가진 다른 가상자산을 합쳐도 약 4000억 원에 불과해 기존 보유자에게 보상책을 마련하면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기에는 부족한 자금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루나 사태를 떠나 권 대표 개인을 향한 업계 반응도 회의적이며 비난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권 대표가 잘나갈 때 했던 막말도 잘나갈 땐 ‘스웩’(허세)이었지만 이제는 패륜적 발언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기존 루나나 UST 보유자들도 권 대표가 회생 방안 등 트윗을 올릴 때마다 ‘감옥이나 가라’는 분위기다.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도 루나 사태를 두고 경고 메시지를 한 바 있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 지금 새로운 코인을 만든다고 해서 성공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