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전 합의 시도·2차 가해 의혹 속 혐의 부인 문자 남긴 채 잠적…박 의원의 피해자 직권면직 여부 주목
‘성비위 의혹’이 제기된 박완주 의원이 경찰 수사에서 피해자 측과 진실공방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박 의원은 5월 15일 “당과 나에게도 불가피하게 제명의 길을 선택한 것”이라며 “어떠한 희생과 고통이 있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입장을 내놨다. 당의 제명 결정은 수용하지만 성비위 의혹을 전면 부인한 것으로 해석된다.
박 의원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강제추행, 직권남용,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등의 혐의를 받는다. 피해자 측은 5월 16일 영등포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경찰은 박 의원이 현직 국회의원 신분인 점 등 사안의 중요성이 큰 것으로 판단, 서울경찰청 여성청소년범죄수사대에 사건을 이송했다. 경찰은 고소인 조사를 마치는 대로 조만간 박 의원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다.
서울경찰청 여청과장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수사 초기 단계다. 진행된 게 거의 없다. 고소인 조사 등 박완주 의원 출석 날짜까지 여러 수사가 남았다”고 전했다. 또 “피해자가 여성으로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본인과 관련된 어떤 내용도 일체 안 나갔으면 좋겠다는 입장이다. 2차 피해 우려가 크기 때문에 수사와 관련된 어떤 내용도 말씀 드리기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민주당은 사건이 수면 위로 올라온 직후 박 의원을 곧바로 제명 조치했다. 앞서 박지현 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5월 12일 “‘박완주 사건’은 2021년 말에 발생한 심각한 수준의 성범죄”라며 “민주당을 대표해 피해자분과 그 가족분들 그리고 국민 여러분께 사과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은 5월 16일 의원총회에서 박 의원 제명을 최종 의결했다.
민주당은 5월 17일 박 의원 징계 안건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에 제소했다. 진성준 원내수석부대표 등 민주당 소속 167명 중 24인만이 안건에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징계안을 통해 “국회의원 박완주는 2021년 12월경 저녁 자신의 보좌관인 피해자를 상대로 강제추행 및 성희롱 발언 등을 하였고, 이로 인하여 피해자는 중등도의 우울증을 겪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병했다”고 주장했다.
징계안에 따르면 박 의원의 위조 사직서 마련 지시로 피해자 면직을 통한 2차 가해 정황도 포착됐다. 피해자와 협의 없이 제3자가 '대리서명'해 위조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것. 징계안에는 “피해자가 2022년 1월경 진단서를 제출하며 질병 휴직을 요청하였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피해자가 지난 4월 22일 민주당 젠더폭력신고센터와 윤리감찰단에 신고하자 4월 29일 피해자와 협의 및 면직 예고 없이 다른 직원을 통해 사직서에 임의 서명하여 의원면직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박 의원의 새로운 2차 가해 의혹도 제기됐다. 5월 13일 KBS 보도에 따르면 박 의원 측이 사건 무마를 전제로 피해자 측에게 억대의 금전 보상과 재취업 일자리 알선으로 은폐 및 회유를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박 의원은 ‘피해자가 먼저 합의를 빌미로 보상을 요구해왔다’는 취지로 2차 가해를 했다고 한다.
국회 윤리특위는 박 의원 징계안을 검토·의결할 예정이다. 다만 윤리특위에서 이 사건이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윤리특위는 5선의 김진표 의장을 비롯 민주당 5인, 국민의힘 6인, 정의당 1인으로 총 12인으로 구성돼 있다. 5월 25일 기준 윤리특위에 회부된 징계안은 총 20건이다. 심사진행 단계는 △접수 △위원회 심사 △본회의 심의 △의결이다. 본회의까지 올라간 건은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없다.
윤리특위 소속 의원실 관계자는 5월 23일 통화에서 “박완주 건은 윤리특위에 회부가 됐고, 안건 상정을 하려면 전체 회의를 열어야 하는데, 열리지 않고 있다. 김진표 의원이 현재 위원장인데 국회의장 선거가 끝난 후 하기로 했다(통화 당시 의장 선거 전, 의장 선거는 5월 24일). 선거 이후에도 다시 정치 상황 봐서 눈치 보지 않겠느냐. 지금까지 봐서는 (징계를) 안 하려고 하는 듯하고, 유야무야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더불어민주당 보좌진협의회(민보협) 관계자는 수사 상황을 지켜볼 것이란 입장을 전했다. 민보협 회장인 이형석 의원실 이동윤 보좌관은 통화에서 “박완주 건은 피해자가 형사고소를 했기 때문에 법정 다툼으로 갈 것이다. 당에서 할 수 있는 조치(제명) 등을 다 했고, 윤리위에 제소된 상태다. 이후 결정은 저희가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찰 조사가 아직 나오지 않은 상황인데 국회 차원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박 의원의 직권면직 신청 결과 여부에도 눈길이 쏠린다. 박 의원은 피해자가 ‘제3자 대리서명’으로 인한 의원면직 절차를 문제 삼자 지난 4월 29일 의원면직을 취소하고, 직권면직을 요청했다. 직권면직 요청 사유에는 “더 일할 의사가 없다는 의사표시와 무단결근”으로 기재했다.
국회법에 따라 국회의원은 보좌진 의사에 반해 면직을 요청할 경우 사무총장에게 직권면직요청서를 30일 전까지 제출하고, 보좌진에게는 한 달 전에 미리 예고해야 한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해고예고제도를 국회에 적용한 것이다. 이에 따라 피해자는 5월 29일이면 면직이 될 예정이다.
하지만 피해자에 대한 박 의원의 직권면직 신청은 무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8조에는 피해자 등에 대한 불이익조치의 금지 조항을 명시하고 있다. 피해자 또는 성폭력 발생 사실을 신고한 자를 고용하고 있는 자는 성폭력과 관련하여 피해자 또는 성폭력 발생 사실을 신고한 자에게 파면, 해임, 해고 등 불이익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8조에 따라 면직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적용 여부에 대한 법적 검토 중에 있다. 논의 중에 있어서 정확히 언제 (결정이) 날지 말씀 드릴 수가 없다”고 전했다.
한편, 박 의원은 국회에도 출근하지 않고 잠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실 관계자는 통화에서 “의원님이 안 계셔서 입장을 말씀 드릴 수가 없다”고 전했다. 일요신문은 여러 차례 박 의원에게 통화를 시도하고 문자 등을 남겼다. 박 의원에게 보낸 메시지는 ‘읽음’ 표시인 ‘1’이 사라졌지만, 취재진에게 답은 오지 않았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