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성·경제성·탄소중립 모두 만족할 수준 아냐…윤 대통령 자문 교수조차 “2035년 이후에나 상용화”
새 정부의 지원 약속에 발맞춰 민간 기업들도 SMR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투자에 나섰다. SK그룹은 지난 5월 17일 차세대 원자로 중 하나인 소듐냉각고속로(SFR) 설계기술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테라파워 측과 포괄적 사업 협력에 필요한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GS에너지와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도 4월 26일 미국 뉴스케일파워와 전 세계에 SMR 발전소를 건설·운영하는 사업개발을 공동으로 추진하기 위해 MOU를 체결했다.
SMR이란 기존 대형 원전의 원자로,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등 주요 기기를 하나의 용기 안에 배치해 모듈화할 수 있게끔 만든 소형 원자로다. 전기 출력은 300메가와트(MW) 안팎으로 기존 원전보다 규모가 작아 도서·산간 지역에도 건설할 수 있어 미래 에너지 시장의 대체재로 주목을 받고 있다.
SMR의 등장은 최근의 일이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원전 현황 보고서에 SMR에 대한 언급이 처음 등장한 것은 2년 전인 2020년이다. 이때만 해도 발전용이 아닌 ‘비발전 특수목적용’으로 언급됐을 뿐이다. SMR의 디자인과 크기는 산업에 쓰이는 열을 생성할 때나 수소 생산 등 특수 목적으로 사용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 SMR이 차세대 발전용 원자로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SMR이 주목을 받게 된 배경에는 미국에서 원전이 퇴출당한 영향도 있다. 태양광 등 미국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급증하면서 출력조절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직성 발전원’ 대형원전이 설자리가 좁아진 것이다. 태양광이 낮 시간대에 전력을 폭발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전력계통 과부하와 이로 인한 대규모 정전을 막으려면 나머지 발전원이 전력 공급량을 줄여야 하는데 원전은 그게 불가능하다.
미국에서 원전의 폐로 흐름이 가속화하자 원자력 업계는 재생에너지를 보조할 수 있는 소규모 원자력 발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탄력적으로 전력 생산을 조절할 수 있는 소형 원자로를 개발하지 못하면 전력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탓이다. 문제는 SMR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SMR의 경우 하나의 용기 안에 주요 기기를 모두 배치하기 때문에 엔진룸 내부의 핵연료교체 등 노심관리가 복잡해지고 원자로 내부 부품 검사나 정비에 불리해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게다가 기존 가압 경수로와 달리 원자로 개수와 내부 부품수는 모듈 수만큼 늘어나게 되어 있다. 예컨대 1000MW짜리 대형 원전 대신 100MW 짜리 SMR 10개를 연결해서 동일한 전기출력을 만들어낼 경우 원자로 안에 들어가는 각각의 부품 개수가 10배로 증가해 복잡해지는 만큼 고장과 사고 위험이 높아진다.
게다가 경제성도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2017년 기준 아르헨티나에 건설 중인 시험용 SMR 카렘-25의 실행데이터에 따르면 kW당 건설 단가가 2만 2000달러(약 2780만 원)에 달할 전망이다. 대형 경수로 원전의 경우 비싸도 kW당 건설 단가가 5000달러(약 640만 원) 수준인 것을 고려하면 비용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기술의 도입은 위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일본은 2018년 '꿈의 원자로'로 불리기도 했던 고속증식로 몬주를 폐기했다. 몬주는 전력을 생산하기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나트륨 유출로 화재가 발생하는 등 22년간 총 250일밖에 가동하지 못했으나 건설비, 유지비, 폐로 비용을 합쳐 약 3조 엔(약 30조 원)의 천문학적인 비용을 소모하는 등 경제성 측면에서 상당한 질타를 받았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70여 종의 SMR이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2020년도 IAEA SMR 원전 현황 보고서에 나와 있는 개발 계획을 살펴보면 이 중 65개가 개발 시작도 안한 것으로 파악된다. 심지어 절반 이상이 이미 60년 전부터 사용되던 경수로(PWR) 기술을 응용한 모델이기 때문에 모듈화랑 무관하다. 이와 관련, 박종운 동국대 에너지시스템공학과 교수는 “대부분 학술논문이나 개념 스케치 수준인 데다가 이미 한참 전에 중단된 것들까지 전부 활발히 개발 중인 SMR인 것처럼 묶어서 상용화 예정인 것처럼 나열한 것은 왜곡 및 과장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국내의 혁신형 소형모듈원자로(i-SMR) 사업이 포함됐지만 역시 아직 개발이 시작되지 않은 데다가 국내에서도 이렇다할 호응이 없는 상태다. i-SMR 사업은 올해 5월 예비타당성 조사 과정에서 2000억 원가량 예산이 삭감됐다. 원안대로 통과됐을 경우 2028년까지 6년간 5832억 원을 들여 새로운 SMR을 개발할 계획이었으나 예산이 3분의 1 가까이 잘려나가면서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i-SMR 사업에 대해 원자력업계 한 관계자는 “우리 고유 기술도 아닌 미국 CE와 영국 롤스로이스가 1989년에 제안한 SIR과 AP1000의 피동계통 기술을 모방한 수준”이라며 “개발용 원전 조감도조차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예산을 다 받았어도 실제 성과로 이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SMR이 탄소중립 달성을 위한 핵심 발전원이라는 얘기도 나오지만 실제 탄소중립과는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국내에서 SMR은 이미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2021년 8월 말에 선정한 ‘39개 탄소중립 중점기술’에서도 배제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2030년까지 SMR을 상용화한다는 주장도 막연한 목표일 뿐 뚜렷한 근거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새로운 유형의 원자로를 개발한 후 인·허가를 받고 부품 공급을 안정화하기까지 약 30~40년은 걸린다고 진단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에너지정책 자문을 맡았던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조차 페이스북에 ‘SMR 상용화는 203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적기도 했다.
실제로 투자자 심리도 싸늘하다. 전세계에서 가장 먼저 SMR을 실용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는 뉴스케일파워 주식은 5월 24일(현지시간) 기준으로 8.96달러(약 1만 1320원) 수준이다. 지난 5월 3일 상장 당시보다 주가가 10% 하락했다. ‘한미 원전동맹’ 발표 이후 5월 23일 장 초반 소폭 상승했던 국내 원전 관련주들 역시 차익 매물 출회와 함께 대체로 약세로 돌아선 상황이다.
앞서의 박종운 교수는 “비용이나 안전, 탈탄소나 상용화 가능성 측면 어디를 봐도 SMR이 경쟁력이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국내 에너지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우선 MOU만 맺은 채로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