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발사용 능력·슈팅 정확도 PL 최고…몸값 8000만 유로·경제효과 2조 원 “더 이상 증명할 게 없다”
#시즌 마지막날 일궈낸 수상
프리미어리그에서 연일 '최초'의 기록들을 써내려가고 있던 손흥민은 지난 5월 7일 리그 20골을 달성하며 대한민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 기록을 작성했다. 이후 3골을 추가하며 유럽 빅리그에서 우리나라는 물론 아시아 최초 득점왕까지 달성했다.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득점왕 레이스였다. 손흥민은 5월 22일 리그 최종전 노리치 시티와 경기에서 극적으로 2골을 추가하며 기존 득점 1위 모하메드 살라와 어깨를 나란히했다. 손흥민이 이날 두 번째 골을 넣는 순간, 잠시나마 단독선두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하지만 살라가 득점에 성공해 공동 득점왕 자리에 올랐다.
시즌 중반까지 손흥민의 골든부트 수상은 예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손흥민은 지난 세 시즌간 12골, 11골, 17골을 기록했다. 상승 기류에 있었지만 20골 이상 다득점은 예상하지 못했다. 지난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골과 도움을 동시에 달성했기에 이번 시즌 역시 도움 기록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지만 손흥민은 후반기 득점 페이스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리그 32라운드 애스턴 빌라전이 결정적이었다. 손흥민은 이날 혼자 3골을 몰아치며 득점 선두 살라를 추격하기 시작했다. 공교롭게도 이 시점부터 경쟁자 살라는 주춤했다. 시즌 초반 무서운 기세로 골을 몰아치던 그는 4월과 5월 열린 9경기 중 2경기에서만 골맛을 봤다.
살라가 주춤한 사이 손흥민은 착실하게 골 기록을 쌓아올렸다. 해트트릭 이후 2경기에서 침묵했으나 이내 멀티골을 작성했다. 시즌 막판 순위 싸움이 중요한 상황서 손흥민의 한 골 한 골은 개인뿐 아니라 팀에도 단비 같았다. 리버풀, 아스널 등 난적을 상대로 연속골을 넣은 손흥민은 결국 리그 최종전에서 멀티골로 득점왕 등극에 성공했다.
#'월드클래스 논쟁' 종지부
잉글랜드 프로축구 1부리그는 1992년부터 '프리미어리그'로 재편됐다. 이번 시즌은 프리미어리그라는 이름으로 맞은 서른한 번째 시즌이었다. 이번 시즌을 포함해 네 번의 시즌에서 공동 득점왕이 탄생했다. 3명이 동률로 함께 수상한 경우도 있었다. 이에 40개에 육박하는 골든부트 트로피가 제작됐다.
하지만 황금 축구화를 수상한 인물로 범위를 좁히면 그 주인공의 숫자는 급격히 줄어든다. 시대를 평정했던 공격수들이 여러 차례 득점왕을 수상했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수상 경험이 있는 인물은 25명뿐이다. 손흥민은 24인의 전설적인 공격수들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손흥민이 토트넘 소속으로 프리미어리그에서 공격포인트를 만들어내고, 챔피언스리그까지 진출해 결승전에서 뛰는 등 맹활약이 이어지자 '손흥민은 월드클래스인가'라는 화두가 나왔다. 명확한 기준이 없는 질문이었다. 논쟁에 참여하는 이들은 공격포인트, 경기력, 팀 내 영향력, 팀 성적 등 다양한 기준을 들이밀었다.
손흥민의 아버지 손웅정 씨의 한 인터뷰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손웅정 씨가 아들에 대해 "절대 월드클래스 아니다"라고 부인하는 장면이 짧게 편집돼 소비되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는 2018년에 진행된 것이다.
득점왕까지 오른 현재 손흥민에 대한 평가는 이견이 거의 없이 월드클래스로 인정하고 있다. 이상윤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은 "나도 그 월드클래스라는 기준이 대체 뭔지 모르겠다"고 웃으며 "손흥민은 2~3년 전부터 충분히 세계적 기량을 보여주고 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는데 이번 득점왕으로 다시 한 번 증명했다. 이제는 손웅정 선배님도 인정하시지 않을까(웃음)"라고 말했다.
#손흥민 기록이 더 가치 있는 이유
각 리그에서 매 시즌 탄생하는 득점왕이지만 손흥민의 23골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35경기에서 기록한 23골이 전부 페널티킥 없이 필드골로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팀 내 20골가량을 득점한 공격수에게는 페널티킥을 찰 기회가 주어진다. 그만큼 선수의 슈팅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흥민 소속팀 토트넘에는 해리 케인이라는 또 다른 '명사수'가 존재한다. 토트넘에서 발생하는 페널티킥은 대부분 케인이 전담해왔기에 손흥민에게는 기회가 없었다. 페널티킥을 차지 않은 것이 득점 레이스에는 불리하게 작용했지만, 그럼으로써 되레 필드골 23개의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받고 있다. 경쟁자 살라는 이번 시즌 리그에서 페널티킥으로 5골을 추가했다.
세부적인 면을 살펴보면 손흥민의 골 기록에는 더욱 큰 박수가 따른다. 손흥민의 이번 시즌 리그 골은 왼발 12골, 오른발 11골로 구성됐다. 프리킥이나 코너킥을 처리할 때 손흥민은 오른발을 사용한다. 오른발이 더 익숙한 듯 보이지만 인플레이 상황에서는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한다. 이는 손흥민이 더 많은 골을 넣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손흥민은 이번 시즌 토트넘의 프리미어리그 첫골과 마지막골을 모두 장식했다. 당시 두 골은 손흥민의 양발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다. 팀의 리그 개막전, 맨체스터 시티와 경기에서 손흥민은 상대 박스 오른쪽에서 반대편 골문 구석을 향한 왼발 슈팅으로 골망을 흔들었다.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는 시즌 첫골과 대칭을 이루듯 반대편에서 오른발로 골을 만들었다. 손흥민은 대다수 해외축구 정보 사이트에서도 주발에 대해 '양발(Both)'이라는 정보가 명시돼 있다.
이번 시즌 손흥민의 골 기록은 '순도' 면에서도 높은 평가가 뒤따른다. 프리미어리그 공식 홈페이지에 따르면 손흥민은 이번 시즌 86회의 슈팅을 시도해 그중 49개를 유효슈팅으로 연결했다. 슈팅 정확도는 57%다. 유효슈팅 49개 중 23골이 들어간 것이다.
반면 살라는 139개(유효슈팅 60개, 슈팅정확도 43%), 크리스티아노 호날두는 110개(유효슈팅 44개, 슈팅정확도 39%)의 슈팅을 시도했다. 팀 동료 해리 케인은 133개의 슈팅을 시도해 그중 55개(슈팅정확도 41%)가 골문 안쪽으로 향했다. 손흥민이 경쟁자 중 가장 예리한 슈팅력을 보였음을 알 수 있는 지표다.
#2조 원의 남자 손흥민?
마이클 조던과 크리스티아노 호날두. 농구와 축구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이들은 자신의 이름을 딴 사업도 진행했다는 공통점을 공유한다. 조던은 스포츠 스타기도 하지만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젊은 시절부터 자신을 후원하던 스포츠 용품사와 손을 잡고 '조던' 브랜드를 론칭, 현재까지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신발 중 하나가 됐다. 호날두도 자신의 이니셜과 등번호를 딴 'CR7'이라는 이름으로 향수와 속옷 사업 등을 진행 중이다.
손흥민도 이들의 대열에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손흥민은 지난 24일 낯선 티셔츠를 입고 귀국했다. 그간 손흥민이 유려한 패션 감각을 선보여왔기에 그의 티셔츠에 눈길이 쏠렸다. 한쪽 가슴에 새겨진 'NOS'라는 문구는 자신의 성인 'SON'을 뒤집은 디자인이었다. 손흥민은 'NOS7'이라는 상표를 출원하고 오는 6월부터 브랜드를 출범할 것으로 전해졌다. 손흥민은 앞서 2016년 '7STOHM'이라는 이름으로 디자인까지 참여해 모자를 출시하기도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6년 만에 다시 도전하는 의류 사업의 향방에 관심이 쏠린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손흥민의 가치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손흥민은 이미 광고업계에서도 그 가치를 증명한 바 있다. 한 식료품 광고 출연 이후 업체에서 광고 효과를 톡톡히 보며 큰 만족감을 드러냈다는 후문이 전해진다. 2022년은 월드컵을 앞두고 있기에 손흥민과 광고를 원하는 업체 모두 '특수'를 기다리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손흥민의 경제적 가치는 2조 원을 훌쩍 넘긴 것으로 평가받는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스포츠정책과학원은 손흥민의 경제적 파급 효과를 1조 9885억 원이라고 발표했다. 그사이 손흥민은 두 시즌 연속 10골-10도움을 달성했고 리그 득점왕까지 올랐다.
경기장 내에서 높은 가치도 '진행형'이다. 해외축구 이적 정보 사이트에서는 손흥민의 현재 몸값을 8000만 유로(한화 약 1083억 원)로 매기고 있다. 리그 내 그보다 높은 이적료 금액으로 평가받는 선수는 살라, 케인, 필 포든, 케빈 데 브라위너, 브루노 페르난데스, 로멜루 루카쿠, 라힘 스털링까지 단 7명뿐이다. 8000만 유로는 어린 선수의 가치가 더 크게 매겨지는 스포츠계 특성상 만 30세를 맞은 손흥민으로선 거금이다. 손흥민보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7명 중 손흥민보다 나이가 많은 선수는 데 브라위너 1명뿐이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추정치일 뿐 실제 이적이 이뤄진다면 더 큰 금액으로 거래될 수도 있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큰 이적료가 책정된 만큼 손흥민의 이적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높지 않다. 손흥민은 2021년 7월 토트넘과 재계약하며 2025년 6월까지 계약을 연장한 바 있다. 재계약을 하며 손흥민은 기존 14만 파운드(약 2억 2300만 원) 규모에서 20만 파운드(약 3억 1800만 원)로 주급을 올린 바 있다. '거물급'으로 성장했다는 점도 손흥민의 이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이다. 선수로서 이미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연령대이기에 향후 이적이나 재계약으로 1회 정도 주급 인상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손흥민의 이적 가능성을 '0'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유럽축구 이적시장은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며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 손흥민에게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번 여름은 세계 최고 공격 자원인 킬리앙 음바페가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당초 파리생제르망에서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이 유력했지만 급작스레 파리에 남는 선택을 했다. 그간 음바페 영입을 위해 자금을 아껴왔던 레알로선 어떻게든 보강을 하려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음바페와 유사한 위치에서 활약하는 공격 자원 영입에 나선다면 유럽 내 연쇄이동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레알이 손흥민을 직접 영입하지 않더라도 레알에 에이스를 뺏긴 팀에서 손흥민을 노릴 수도 있는 것이다.
이상윤 해설위원은 "손흥민은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맹활약을 했고 월드컵에서도 3골을 넣었다. 이번 득점왕까지 하면서 더 이상 증명할 것은 없다고 본다. 커리어에서 남은 것은 우승밖에 없다"며 "내 욕심 같아서는 우승할 수 있는 팀으로 이적을 했으면 좋겠다(웃음). 하지만 당분간은 토트넘에 남는 선택을 했다. 한 팀의 레전드가 되는 선택도 존중한다. 토트넘에서 우승을 만들어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커리어를 완성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토트넘은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우승 청부사' 안토니오 콘테 감독이 시즌 도중 부임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종 4위에 오르며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따내고 손흥민이 득점왕에 등극하는 등 성과를 냈다. 이에 고무된 구단 최대주주가 1억 5000만 파운드(약 2300억 원) 증자에 나설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구단의 투자 증대는 손흥민의 커리어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