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분리행보’에 MB ‘코꿰기’ 작전
▲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가 또 다시 마찰을 빚을 경우 ‘2007년 경선’ 때처럼 네거티브 공격이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사진은 2007년 한나라당 신년인사회. |
수도권 지역의 ‘반 MB 정서’를 체감한 박 전 대표 역시 독자생존에 무게를 두고 있는 모습이다. 여권 양대 계파의 수장이기도 한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또 다시 마찰을 빚을 경우 내년 총선과 대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난 6월 3일 마지막 회동에서 정권재창출을 위한 ‘신사협정’을 맺은 것으로 알려진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간 물밑 대충돌의 내막을 따라가 봤다.
FTA비준안 처리로 어수선하던 지난 11월 1일 오후 국회의사당. 친박 전·현직 의원들 사이에선 다소 뜬금없는 논의가 이뤄졌다. 바로 대통령 ‘형님’ 이상득 의원의 내년 총선 공천 여부였다. 그동안 친박 측은 이 의원이 물갈이 대상에 포함될 경우 그 불똥이 자파 소속 영남권 중진들에게로 튈 수 있다며 이 의원 공천에 긍정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선 “이 의원에게 공천을 주면 내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은 망한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달라진 견해가 주를 이뤘다. 당시 모임을 주도했던 한 친박 전직 의원은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당 안팎에서 이 의원 불출마 여론이 힘을 받을 것이다. (공천을 주면) 이 의원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한나라당 소장파 및 이재오 계와 갈등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국민들의 곱지 않은 시선도 쏟아질 것”이라면서 “박 전 대표로서는 이러한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의원 공천을 밀어붙이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최근 일각에서는 이상득 의원이 지역구 공천을 받지 못할 경우 무소속으로라도 출마를 강행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사실 이 의원과 박 전 대표는 그동안 커뮤니케이션이 비교적 원활한 편이었다. 친박과 친이가 양보 없는 싸움을 벌일 때 이 의원이 중재에 나섰던 것도 이 때문이다. 또한 이 의원과 그의 핵심 측근인 임태희 대통령실장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이뤄진 ‘박근혜-이명박 회동’을 막후에서 성사시킨 당사자로도 여러 차례 거론된 바 있다. 친박 의원들 역시 친이 중에서 이 의원을 그나마 말이 ‘통하는’ 정치인으로 분류한다.
이 의원과 함께 친이의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이재오 계에 대해서는 “절대 함께할 수 없다”며 목소리를 높이는 것과는 상반된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가 천막당사 시절 당을 맡았을 때 이 의원이 사무총장이었는데, 어려움을 함께 겪으며 정이 들었다고 박 전 대표가 술자리에서 말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따라서 박 전 대표가 ‘이 의원 공천 불가’를 수용한다면 이 의원계가 받을 충격파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뜨거운 감자’로 평가받는 이 의원 공천 문제를 친박 일각에서 ‘새삼’ 꺼내든 배경은 10·26 보궐선거 패배와 깊은 관련이 있다. 박 전 대표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장을 내 준 원인을 ‘반 MB 정서’로 이해하고 있는 친박이 이 대통령과의 차별화 전략 일환으로 이 의원 공천 반대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영남권에서 박 전 대표 힘은 재확인 됐다. 이제 수도권이 문제다. 박 전 대표가 이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쪽으로 나갈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론 친박이 장악하고 있는 당이 이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친박 중진 의원들이 이 대통령을 겨냥,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것도 이러한 친박 기류가 표출된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는 지난 10월 29일 “이 대통령은 국민과 한나라당에 사죄한 뒤 자신의 입장을 확실하게 정리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고, 홍사덕 의원도 11월 2일 “MB가 변할 생각이 없다면 그때는 우리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여권 핵심부는 일단 박 전 대표와 함께 간다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지금으로선 마땅한 대안이 없지 않느냐”라는 청와대 고위 인사의 반문(11월 2일)처럼 아직까지는 여권 내에서 박 전 대표에 견줄만한 대권 후보가 없기 때문이다. 대선캠프 출신의 여권 전직 고위 관료는 “현재 박 전 대표는 명실상부 한나라당 최고 실세다. 이 대통령이 남은 임기 동안 국정을 마무리하기 위해선 박 전 대표 협조가 필수적이다.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는 일은 되도록 피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또한 퇴임 후 안전판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도 ‘차기 영순위’ 박 전 대표와의 협력은 유지해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재광 정치컨설턴트는 “둘의 관계에 있어서 주도권을 박 전 대표가 갖고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현직 대통령이 차기 대권에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 대통령이 내년 대선에서 힘을 못 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이 대통령으로선 최대한 박 전 대표와의 우호적 관계를 지속하려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청와대 일각에서는 박 전 대표의 ‘변심’에 대비한 대응책 마련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져 관심을 끈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친박 내부에서 이상득 의원 총선 불출마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알고 있다. 이 의원은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친박과) 충돌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청원 홍사덕 등 친박 의원들의 ‘반 MB’ 발언 역시 예의주시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의중이 담겨 있다고 봐야하지 않겠느냐. 우리가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상정하고 여러 가능성을 검토 중”이라고 덧붙였다. “친박과 갈라서는 것도 (그 가능성에) 포함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최악의 경우 친박-친이 대립이 극에 달했던 ‘2007년 경선모드’로 간다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내곡동 사저 이주가 논란에 휩싸이자 이 대통령 주변에서는 박 전 대표가 퇴임 후를 확실하게 ‘커버’해줄 것인가를 놓고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기도 했다. 보다 더 안전한 ‘보험’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이다.
현재 임태희 대통령실장이 이 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고, 비서실과 정무라인 일부가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친박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접촉하며 동향파악에 나서는 한편, 정치권 인사들을 통해 향후 대책 수립에 필요한 조언을 듣는 데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사실상 박 전 대표와 관련된 업무를 전담하고 있는 셈이다.
청와대 정무 관계자는 “이 대통령 직속부대를 꾸리는 게 여러 방안 중 핵심이다. 차기 대권 후보가 누가 되든 국회 내에서 일정 지분을 확보하고 있어야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협상이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여기서 언급되고 있는 일명 ‘MB 친위대’는 이 의원이 이끌고, 핵심 SD계 인사들인 임태희 실장, 박영준 전 차관 등이 그 뒤를 받친다고 한다. 물론 이 의원 등이 모두 총선 공천을 받았을 때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여권 핵심부가 이 의원 불출마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이 연장선상에서 보면 쉽게 납득이 간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임 실장이 10·26 보궐선거 이전인 10월 초 ‘친박 대응팀’을 꾸렸다는 것이다. 당시는 안철수 원장의 급부상으로 ‘박근혜 대세론’이 흔들릴 때였다. 이는 이 대통령이 친박 진영의 선제공격이 없더라도 판세에 따라 자체적인 생존 방안 마련에 나설 수 있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져 미묘한 파장이 예상된다. 윤호석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가 힘들다고 판단되면 이 대통령이 범 반박 세력이 시도하는 정계개편에 힘을 보태주거나 제3후보론을 띄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청와대의 이러한 움직임이 가시화될 경우 ‘이명박-박근혜’ 간 사활을 건 전면전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한다. 지난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펼쳐졌던 네거티브 공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친박에서는 여권 핵심부가 광범위하게 수집,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진 ‘박근혜 X 파일’의 봉인이 열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현직 대통령을 거스르면 집권하지 못한다는 정치권 속설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 친·인척 문제 등을 암묵적으로 덮어주기로 한 대신 퇴임 후를 보장받았다는 ‘빅딜설’도 돌지 않았느냐”면서 “이 대통령과 어떤 스탠스를 취하는 게 유리할지 박 전 대표가 진지하게 고민해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