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 연기부터 코믹까지 “물 올랐다” 호평…“얼굴보단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 되고파”
“지켜야 할 이미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거나, ‘난 이런 건 못 해’라는 건 이제 없어요. 나이가 한 살씩 먹어가면서 조금씩 그런 마음이 변해 갔는데 특히 올해는 나이 앞자리가 바뀌니까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이런 거 할 수도 있지!’ 이런 마인드(웃음). 사실 제가 서른 살 땐 지금보다 겁이 많았거든요. ‘이런 거 해도 괜찮을까?’ 그런 두려움이 지금은 완전히 없어진 것 같아요. 그땐 뭐가 그렇게 겁이 났었을까요? 그때도 이런 걸 해봐도 좋았을 텐데 말이죠.”
박해진은 종영까지 4화를 남겨둔 MBC 토일드라마 ‘지금부터, 쇼타임!’에서 귀신을 보는 신통한 능력을 지닌 마술사 차차웅으로 분했다. 서늘할 정도로 완벽한 외모와 그보다 더 싸늘한 독설이 트레이드마크지만 속내를 파고들면 어딘가 나사가 하나 빠진 듯한 허당 같은 매력을 지닌 인물이다.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열혈 순경 고슬해(진기주 분)와 함께 귀신 공조 코믹 수사를 그려나가는 차차웅을 보며 박해진은 그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굉장히 완벽한 친구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허당기가 있는 인물이죠. 무대에선 누구보다 완벽하길 원하면서도 원래 성격에서는 허당스러움이 드러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저와 아주 비슷한 모습인 것 같아요(웃음). 저는 진짜 허당이거든요, 헛똑똑이. 또 이제까지 한국 드라마에서 차차웅만큼 속물적인 주인공 캐릭터가 있었나 싶었어요(웃음). 저는 마냥 멋진 역할은 취향이 아니거든요. 그런 점에 있어서도 딱 제가 차차웅 캐릭터라고 생각했죠.”
캐릭터에 대한 욕심은 ‘개그 욕심’으로 이어졌다. 언뜻 보기에 차갑고 완벽해 보이는 외모와 동시에 허술해 보이는 일면도 함께 보여줘야 하다 보니 그 중간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그럼에도 매 신마다 ‘어떻게 하면 더 웃기게 찍을 수 있을까’를 혼자 고민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코믹 연기에 대한 박해진의 열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진짜 매 신마다 개그 욕심을 냈던 것 같아요(웃음). 특히 귀신들과 나오는 장면은 따로 콘티가 있는 게 아니라 저희끼리 바로바로 현장에서 만들어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애드리브도 많았고, 또 차차웅이 마술을 하는 신은 웃겨야만 하잖아요. 사실 찍을 땐 현타(현자 타임, 자괴감을 재미있게 표현한 신조어)가 와요. 아무 것도 없는 데서 쇼하고, 멋있는 척 카드 마술을 하다가 방귀에 불이 붙는다거나 하는 신을 찍으면(웃음). 그래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예 그냥 웃기는 데에만 집중해서 찍으려고 노력했죠.”
고락을 함께하며 회를 거듭할수록 짙어지는 고슬해와의 로맨스 기류도 코믹 연기만큼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둘의 전생 서사가 펼쳐질 때 박해진의 전매특허인 정극 연기가 빛을 발하며 그의 캐릭터 연구가 단순히 코믹에만 집중된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줬다. 그렇게 시청자들의 마음까지 뭉클하게 만든 두 사람이었지만 정작 박해진은 “노력했는데 로맨틱하게 안 보이면 어떡하나 전전긍긍했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상대역인 진기주와 너무 친해져서 로맨틱한 남녀보단 ‘전우’에 가까운 사이가 되다 보니 설렘이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반성이었다.
“서로 설레고 손도 못 잡아야 하는 설정인데 저희가 너무 친해서 스킨십도 자연스럽다 보니 걱정됐죠(웃음). 사실 이렇게 고생을 같이 하다 보면 안 친해질 수가 없거든요. 촬영 들어가고 초반에 제일 고생스러웠던 사극 장면을 한 달 정도 같이 찍어서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진)기주 씨는 저보고 늙은이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저희 나이 차가 여섯 살인데 기주 씨가 워낙 동안이라 가지고….”
전생 서사에서 박해진은 데뷔 이후 사극 캐릭터에 첫 도전한 것으로 새롭게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생의 차차웅과 전생의 풍백을 오가며 동시에 현대극과 사극 연기를 번갈아 보여주면서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는 호평도 받았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그의 차기작 리스트에 정통 사극이 드디어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인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지금 생각하면 40대인 실제 저의 감수성이 담긴 캐릭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제까지는 제 세대를 거슬러서, 제 나이를 역행하는 캐릭터를 많이 해 왔으니까요. 그것보다는 제 안의 40대 박해진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꺼내 보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이번에 사극 연기를 짧게나마 해보면서 정말 사극 배우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사극이 주는 분명한 매력을 느끼면서 좋은 사극이 있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요즘 퓨전 사극은 로맨틱한 소재를 많이 쓰는데 그런 것도 좋겠지만 역사를 고증해서 할 수 있는 정통 사극을 해 보고 싶어요. 제 나이로 퓨전 사극은 좀 안 될 것 같기도 하고(웃음).”
올해 데뷔 16년 차를 맞으면서 동시에 한국 나이로 앞자리 숫자가 바뀐 박해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기에 더 이상 ‘리미트’를 걸고 싶지 않다는 말을 강조했다. “박해진이 그 얼굴로 이런 연기를 해?”라는 놀라움보단 “박해진이니까 이런 연기도 할 수 있겠다”는 수긍과 인정을 받고 싶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꼰대인턴’ 이후로 작품을 보는 시야가 더욱 넓어졌다는 박해진은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몸 사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캐릭터의 방향에 있어서도 멋짐이란 수식어를 벗어나고 싶어요. 16년간 연기를 해 왔는데 아직까지도 연기보다는 외모로 많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멋지고 잘난 친구가 많은데 아직도 연기나 이런 부분들도 뚜렷하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구나, 계속 외모로만 나오는구나 그런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되더라고요. 언젠가는 외모보단 연기력으로 이름이 불리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박해진이란 배우를 떠올렸을 때 1번이 연기였으면 좋겠습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