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률이 생존율’ 눈물 젖은 코미디도 있다
▲ tvN의 <코미디 빅리그>는 11개 팀이 10주 동안 개그를 겨뤄 1위를 차지하면 상금 1억 원을 받게 된다. |
이제는 <슈퍼스타K 3>를 즐겨보는 시청자들은 탈락자 호명 전에 ‘60초’를 기다려달라고 할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인 터라 광고를 보며 기다려준다. 몇 개의 광고가 나오는지 알 수 없어 리모컨으로 채널을 돌리던 때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CJ E&M 방송부문 관계자는 “중요한 장면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시청자들은 기꺼이 60초를 할애한다. 자연스럽게 방송 시간이 길어지며 시청률에도 도움이 된다. ‘60초 후에 공개됩니다’는 <슈퍼스타K> 시리즈가 낳은 최고의 멘트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방송가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에게 시청률은 곧 ‘생존율’이다. 때문에 방송 관계자들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보다 자극적인 소재를 찾는다. 최근 순위제도를 앞세운 프로그램이 연이어 제작되는 것과 이와 무관치 않다.
tvN 개그프로그램 <코미디 빅리그>가 대표적이다. 이 프로그램은 KBS에서 <개그 콘서트>를 10년간 연출했던 ‘코미디 장인’ 김석현 PD가 CJ E&M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야심차게 내놓은 작품이다. 11개 개그팀이 매주 개그를 선보인 후 순위를 정한다. 10주 동안 승부를 벌여 가장 많은 승점을 쌓은 개그팀에게 1억 원이 주어진다. <개그 콘서트>+‘나는 가수다’라고 할 만하다.
개그맨들은 공연을 펼친 후 심판대에 오른다.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것이 그들의 몫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웃음기가 싹 가신다. 몇몇 개그맨들은 성적을 받아 들고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한 KBS 예능국 PD는 “거액의 이적료를 받고 둥지를 옮긴 PD들이 시청률 압박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실력을 증명할 방법은 시청률밖에 없기 때문이다. <개그 콘서트>의 산파 역할을 하고 전성기를 맛 본 선배 PD가 시청률에 매이는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토로했다.
순위제를 통해 시청률 면에서 가장 큰 재미를 보고 있는 프로그램은 단연 MBC ‘나는 가수다’다. ‘가수의 재발견’이라는 측면에서 ‘나는 가수다’는 가요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3년 넘게 침체기에서 허덕이던 <일밤> 역시 ‘나는 가수다’ 덕에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일밤> 살리기’라는 중책을 맡았던 김영희 PD가 시청률 제고를 위해 생각해낸 것이 바로 ‘경연’이었다.
자신이 만든 순위제가 논란이 돼 김영희 PD가 경질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졌으나 순위제는 ‘나는 가수다’가 포기할 수 없는 아주 매력적인 카드였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순위가 없었다면 ‘나는 가수다’가 <열린 음악회>나 <가요무대>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결국 순위제도는 ‘나는 가수다’의 생명줄이었던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나는 가수다’에서도 가장 시청률이 높은 구간은 단연 순위를 발표하는 순간이다. ‘60초’는 없지만 ‘나는 가수다’에는 ‘편집’이라는 무기가 있다. 녹화 방송이기 때문이다. 제작진은 출연진의 사전 인터뷰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모든 출연자에게 ‘만약 꼴찌가 된다면’과 같은 질문을 던져 그들의 반응을 살피는 장면을 내보낸다. 이 관계자는 “클라이막스를 오랫동안 유지하고 싶은 건 모든 제작자의 마음일 것이다. 결국 시청자들이 짜증을 느끼지 않을 정도를 헤아리며 편집의 묘를 살리기 위해 제작진은 머리를 싸맬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녹화 방송인 ‘나는 가수다’의 결과를 두고 ‘보안이 생명’인 이유도 시청률과 관련이 있다. 수많은 시청자들이 탈락자가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나는 가수다’를 마지막까지 챙겨 본다. 때문에 스포일러로 인해 탈락자가 공개되면 시청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니 제작진 입장에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탈락자의 신분이 노출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지금과는 달리 2000년대 이전 음악 프로그램은 가요계에서 절대적 힘을 갖고 있었다. KBS 2TV <가요톱텐>과 같은 프로그램 속 순위는 해당 가수의 인기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정성 논란에 휩싸이며 한동안 가요 프로그램에서 순위는 사라졌다. 이후 가요 프로그램의 인기와 시청률은 나란히 하향곡선을 그렸고 결국 지상파는 다시 순위 프로그램을 하나둘씩 부활시키기 시작했다.
▲ <슈퍼스타K 3> 4차전에서 김도현이 탈락하자 동료들이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뉴시스 |
SBS 예능국 관계자는 “<SBS 인기가요>는 별도의 순위는 매기지 않고 가장 인기 있는 가수 일곱 팀을 ‘테이크7’으로 묶는다. 그중 한 팀에게는 뮤티즌송을 안긴다. 뮤티즌송은 사실상 1위에 해당되지만 굳이 1위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 공정한 순위를 매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테이크7’ ‘뮤티즌송’과 같은 제도를 두는 것은 대중들이 순위에 민감하다는 것 또한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요즘 지상파와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순위를 강요하는 프로그램이 연이어 등장하는 것 역시 결국은 시청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방편이라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안진용 스포츠한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