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벤처서 전략적 분사 이후 투자 유치…콘텐츠 기반으로 커머스 사업 진출 예정
#언론인 준비생에서 스타트업 대표로
1990년생인 이명진 아루 대표의 원래 꿈은 시사교양 PD였다. 중앙일간지 인턴기자를 거쳐 KBS 명견만리에서 에디터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2년간의 에디터 생활 중에도 방송국 공개채용을 통한 정규직 PD의 길을 뚫고자 공부를 병행했다. 하지만 최종 면접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는 새로운 길을 찾았다. 2017년 KBS 에디터를 그만두고 NHN에 입사했다. 직무는 서비스 기획이었다. 하지만 이명진 대표는 NHN에서 원하던 경험을 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조직인 특성상 신입직원이 신규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론칭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명진 대표는 자신의 아이디어를 성장시키고 싶은 욕심을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2019년 NHN에서 나와 에스모바일의 신규 프로젝트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직 후 1년간은 기존에 진행해오던 프로젝트 관련 업무를 맡았다. 그러다 기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어렵게 됐고, 이 대표는 신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이명진 대표는 “에스모바일 대표님은 사업 아이템을 선정할 때 기준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해외 사례를 찾아본 다음 우리나라에도 적용하면 좋을 것과 본인의 삶에서 느꼈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라며 “다행히도 평소에 하고 싶던 사업 아이템과 관련된 메모를 많이 해놨다. 약 10개의 사업 아이템을 소개했고, 에스모바일 대표님께서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하셨다”고 말했다.
아이템을 선정하는 데는 긴 시간을 쏟진 않았다. 어릴 때부터 성 지식이 부족해 겪었던 불편함을 해소해줄 콘텐츠를 제작하면 좋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례로 20대 초반 이명진 대표는 산부인과에 방문하면 일주일 만에 나을 질염을 1년간 달고 살았던 적이 있다. 당시 신체 변화에 대해 부끄러워 부모님이나 친구에게 물어보기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 정보는 넘쳤지만, 정확한 정보를 선별하기란 쉽지 않았다. 특히 정보를 검색하는 과정에서 왜곡된 성 의식에서 시작된 정보들을 접하면서 불편함을 느꼈다. 2020년 9월부터 서비스 기획에 나섰고, 당해 12월 여성 성지식 플랫폼 ‘자기만의방’이 탄생했다.
이명진 대표는 “서비스를 기획할 때 중앙일보와 KBS에서 함께 일한 후 세계일보 기자로 입사한 이아란 아루 편집장을 데려왔다. 선한 영향력을 바탕으로 서비스를 만들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제 마음과 통했던 것 같다”며 “책임과 윤리를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정확한 성 지식 콘텐츠를 제작하고 싶었다. 기존의 언론사 문법을 아는 사람이 각종 준칙을 준수하면서 글을 작성해왔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서비스 론칭 이후 마케팅을 하지 않았음에도 반응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내 벤처의 한계도 명확했다. 투자 관련 제안이 지속해서 들어왔지만, 투자를 유치하기란 쉽지 않았다. 에스모바일 대표도 이를 인지했고, 외부 투자를 통해 성장하기 위해서 전략적 분사를 결정했다. 기존 사업과 중복되는 부분이 없었고, 투자를 받아야 빠른 시간 내에 규모를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21년 9월 자기만의방 운영사 아루는 개별 기업으로 독립했다. 이후 3개월 만에 4곳의 벤처캐피털(VC)로부터 6억 원의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이명진 대표는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많이 없어서 사업성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과를 내고 있다”며 “독립 이후 스타트업 유튜브 채널 EO에서 진행한 스타트업 오디션 ‘유니콘 하우스’에서 총 400여 지원 팀 중 3위로 입상했다. 플랫폼 서비스로는 1등을 기록했다. 이후 퓨처플레이, 소풍벤처스, 실리콘밸리 기반의 igniteXL 등의 투자사가 성장 발전 가능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했다. 내년 초 시리즈A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콘텐츠 기반해 커머스 사업 진출 예정
자기만의방은 300건이 넘는 성 지식과 섹슈얼 콘텐츠를 제작해서 서비스 중이다. 콘텐츠 중 3분의 1이 무료고 나머지가 유료 서비스지만 데이트 강간 약물, 데이트 폭력, 2차 가해 등의 여성 범죄 관련한 콘텐츠는 모두 무료다. 현재 콘텐츠는 텍스트와 섹스 테라피 ASMR뿐이지만, 향후 영상과 웹툰 등으로 다각화할 예정이다. 5월 기준 가입자는 1만 6000명이고, 가입자의 20%는 유료 구독을 경험했다. 고민을 마음 놓고 털어놓을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과 여성 건강을 기록할 수 있는 월경 주기 다이어리도 제공 중이다. 국내에서 우머나이저를 총판하고 있는 그린쉘프와 지금 막 성인이 된 사람들을 위한 ‘섹스 오리엔테이션’이라는 핸드북을 제작해 2만 권을 전달할 계획이다.
이명진 대표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범죄 관련 콘텐츠는 무료로 제공한다. 피임기구를 제거하거나 훼손하는 행위인 ‘스텔싱’이 범죄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다”며 “전 세계 2억 명의 여성들이 ‘FLO’ 앱을 통해 월경 주기를 계산하고 있다. 해외에선 딥시(Dipsea)가 오르가슴, 자위, 섹스 테크닉 등을 위한 여성향 섹슈얼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죄책감 없이 소비할 수 있는 성 콘텐츠를 제작하는 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성 콘텐츠로 고객과 신뢰를 쌓은 아루는 지식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여성에게 잘 맞는 상품을 추천하는 커머스 사업으로 외연을 확대할 예정이다. 현재 4주 후 재방문 고객(리텐셜)이 54%인데, 올해 상반기까지 리텐셜을 초기 당근마켓, 토스 수준(60%대)으로 더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하반기에는 커머스 오픈을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내년에는 해외 기업과의 협약을 통해 해외 진출을 노리고 있다.
이명진 대표는 “펨테크는 해외에서도 지금 막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이미 성 콘텐츠를 외국어로 번역하고 있다. 투자사인 igniteXL은 해외 기업과 연계해주려고 도움을 주고 있다”며 “특히 고객 인터뷰를 하면서 커머스를 빨리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객들이 아루에서 제품을 판매해달라고 요청해온다”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