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경 대장동 등 4가지 의혹 수사 속도…이 의원 결백 재차 강조, 차기 전당대회가 변수
대선에서 패배한 지 3개월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재명 의원은 부활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 의원은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빈 자리가 된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승리했다. 의외의 박빙 승부를 펼친 끝에 이 의원은 여의도행 티켓 발권에 성공했다. 불체포특권을 얻게 된 이 의원은 이제 자신을 둘러싼 여러 사법 리스크를 총력 방어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전국 단위 선거 국면으로 인해 미뤄졌던 검경 수사가 기지개를 켜는 것을 놓고 민주당 내부 반응은 다양하다. 한 야권 관계자는 “이재명 의원 수사가 몰아친다면 그것 자체가 대한민국이 ‘검찰 공화국’으로 변하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면서 “이 의원을 둘러싼 수사가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수사기관을 이용한 정치탄압”이라고 주장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민주당 전직 당직자는 “전국 단위 선거에서 2연패를 해 분위기가 뒤숭숭한 민주당이 이재명 의원을 둘러싼 방탄·사법 리스크를 해결하는 과정은 법리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상당히 난이도가 높은 사안”이라면서 “법리적으로 불체포특권을 활용하자면 정치적 리스크가 크다. 정치적으로 직접 수사를 받는 정면돌파를 하자니 사법 리스크가 커질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있을 공세에 대처하는 수순 하나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입장”이라고 했다.
이 의원 사법 리스크는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첫 번째는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이다. 2015년부터 2017년 사이 성남시장이었던 이 의원은 성남시 정자동 일대 부지에 건물을 지으려는 두산그룹·네이버·차병원 등 기업들에게 인허가를 제공하는 대신 성남FC 후원금 명목으로 약 160억 원가량을 지급하게 하고 일부 자금이 유용됐다는 의혹 중심에 섰다. 이 의원은 제3자뇌물공여죄 혐의로 고발됐다.
2021년 9월 7일 경기 분당경찰서는 이 사건을 ‘혐의 없음’으로 결론냈다. 그리고 2022년 5월 2일 이 의혹에 다시 불이 붙었다. 분당경찰서가 성남FC 의혹 관련 성남시청을 6시간 30분가량 압수수색한 까닭이다. 경찰은 압수수색 경위에 대해 “검찰 보완수사 요구에 따라 필요한 자료를 확보하는 차원에서 진행했다”고 밝혔다.
두 번째는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다. 2022년 2월 대선 선거운동이 한창일 당시 정국을 격랑 속으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스캔들이다. 이 의혹은 일부 언론에서 이 의원의 배우자 김혜경 씨 측이 경기도 법인카드를 개인 용도로 활용했다는 보도를 하면서 시작됐다.
5급 별정직 공무원이었던 배 아무개 씨가 7급 공무원 A 씨에게 한우와 초밥, 샌드위치 등을 법인카드로 구매하라는 지시를 한 내용이 공개됐다. 사건 쟁점은 배 씨가 어떤 공적 업무를 담당했는지 여부다. 또 이재명-김혜경 부부가 이런 과정을 인지했는지도 관건이다. 이 사건은 경기남부경찰청이 수사하고 있다. 4월 4일 경찰은 이 사건을 강제수사로 전환하고, 경기도청을 압수수색했다.
5월 6일엔 앞서 언급한 압수수색 당시 경찰이 제시한 영장에 이재명 의원과 부인 김혜경 씨가 국고손실 혐의 피의자로 명시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국민의힘이 2월 대검찰청에 이 의혹을 고발할 당시 피고발인으로 이 의원과 김 씨, 배 아무개 씨 등을 명시해 영장에 피의자 신분으로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가 마무리된 뒤 경찰은 이재명 의원 부부 소환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세 번째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이다. 이 의원은 2018년 제7회 전국동시 지방선거 이후인 2018년 10월부터 2020년 9월까지 허위사실 유포에 따른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1~3심을 거쳐 파기환송심 등 오랜 기간 재판 과정을 거쳤다. 이 의원이 변호인단을 수임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다른 개인이나 법인이 대납했을지 모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21년 10월 7일 문재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모여 만든 정당 깨어있는시민연대당(깨시민당)은 대검찰청에 이 의원을 공직선거법 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고발했다. 깨시민당은 이날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출신 이태형 변호사가 이 후보 사건을 맡아 수임료로 현금 3억 원과 주식 20억 원어치를 받았는데도 이 지사(당시 경기도지사)가 거짓 해명을 했다”고 주장했다.
2021년 11월 16일 국민의힘 ‘이재명 비리 국민검증특별위원회’는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이 의원을 고발했다. 고발장은 수원지방검찰청에 접수됐고, 혐의는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위반이었다.
이 의원을 둘러싼 사법 리스크 하이라이트는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다. 이 의원이 성남시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택지 개발 이익을 공공영역으로 환수하겠다”는 모델을 제시한 뒤 개발이 완료된 성남시 ‘마지막 노른자’ 대장동을 무대로 한 의혹이다. 화천대유자산관리 등 사업 참여 업체 선정 관련 이 의원 개입 여부와 부지 개발에 따른 막대한 이익금의 향방이 해당 의혹 쟁점이다.
이 사건 수사는 제20대 대선 후보 경선 과정이던 2021년 9월 28일 이재명 캠프가 곽상도 전 의원, 김기현 당시 국민의힘 원내대표 등을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하면서 시작됐다. 곽상도 전 의원을 비롯해 화천대유자산관리 주요 관계자 및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이 수사 과정에서 구속됐다.
법조계에 따르면 이 의원과 대장동 개발 핵심 관계자들 사이 확실한 연결고리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두 차례 치러진 전국단위 선거가 수사 속도를 늦춰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은 내부 인사가 마무리 되는 대로 대장동 수사에 속도를 낸다는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성남FC 불법 후원금 의혹과 경기도청 법인카드 유용 의혹 수사는 경찰이 담당하고 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은 검찰이 맡고 있다. 지방선거 커튼콜 이후 ‘검수완박’으로 인해 힘이 빠진 검찰과 강력한 수사권을 쥐게 된 경찰이 모두 이재명 의원을 정면 겨냥하는 모양새다. 이런 상황에서 이 의원은 수사기관 조준 범위 밖에 있는 여의도에 둥지를 틀게 됐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재명 의원을 둘러싼 검경 수사가 추진 동력을 마련하려면 사실상 대통령실이 강력한 의지를 보여야 하는 형국”이라면서 “자의든 타의든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이 이재명 의원 수사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 됐다”고 바라봤다.
굵직한 의혹들이 태동하던 시기와 지금의 이재명 의원 입지가 다른 점도 변수다. 각종 의혹이 불거질 때만 해도 이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 대표적인 비주류 세력으로 꼽혔다. 당내 커뮤니티에서도 반이재명 정서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대선과 지방선거를 치르며 이 의원은 ‘개딸과 양아들’로 대표되는 탄탄한 팬덤을 형성했다.
이 의원으로선 인천 계양을 출마해 당선됐지만 동시에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대패하면서 ‘자생당사(自生黨死: 자신은 살고 당은 죽는다)’라는 비판론이 거세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벌써부터 민주당 내 첨예한 계파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 의원의 수사를 놓고 당 내홍이 벌어질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실제 이재명계와 대립각을 세우는 친문재인계 일각에선 ‘방탄’에 대한 부정적 목소리가 높다.
또 다른 야권 관계자는 “이재명 의원은 지금까지 자신을 향한 빛과 그림자를 5 대 5로 두고 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외줄타기 끝에 살아 남은 정치인”이라면서 “탄탄하게 형성된 팬덤이 그의 지지기반이 됐고, ‘방탄용 출마’가 국회 입성 후 그림자로 작용할 테지만 이번에도 ‘외줄타기 달인’의 면모를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다만 그간 지자체장으로서 외줄타기를 했던 이 의원이 초선 의원 신분으로 달라진 정치 환경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6월 2일 국회의원 당선을 확정지은 뒤 이 의원은 KBS라디오 ‘주진우 라이브’에 출연했다. ‘불체포특권을 주장했냐’는 진행자 질문에 이 의원은 “국회의원들의 면책·불체포특권이 너무 과하다”면서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불체포특권을 활용해야 하냐”고 반문했다. 이어 그는 “‘빈총’을 겨누는데 방탄이 왜 필요한가”라고 덧붙였다. 각종 의혹에 따른 수사에 있어 자신의 결백을 재차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재명 의원을 둘러싼 ‘방탄론’ 비판과 관련해 “이 의원이 방탄용으로 국회에 입성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본다”고 했다. 신 교수는 “수사가 진행돼서 출석을 요구하면 나갈 수밖에 없다”면서 “요새는 방탄국회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 정치권도 무던히 애쓰고 있다. 여기다 민주당 내부가 양쪽으로 갈라져 있기 때문에 국회 입성 자체를 방탄용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다만 신 교수는 “한 가지 변수가 있다면 이 의원이 차기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당대표가 된다는 시나리오”라면서 “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는 야당 탄압 프레임으로 전개될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엔 이 의원에 대한 수사가 다시 한 번 걸림돌을 마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