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세 부켈레 대통령 코로나19 기점 독재자로 변해…국가 디폴트 위기 속 갱단과의 전쟁 벌여 무고한 시민 희생
지난해 9월, 엘살바도르 정부가 비트코인을 법정화폐로 공식 채택한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각국 정부에서는 우려스런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크고, 범죄에 악용될 수 있으며,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였다. 엘살바도르 국민들 사이에서도 반대 의견이 거셌으며, 발표 직후인 지난해 10월에는 4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벌이기도 했었다.
이런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지가 확고했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40)은 지속적으로 비트코인에 대한 핑크빛 전망과 포부를 밝혀왔다. 비트코인 채권을 발행하겠다는 계획과, 전세계 최초로 ‘비트코인 도시’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하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연일 폭락을 거듭하면서 핑크빛 전망은 잿빛으로 바뀌어 갔다. 비트코인 가격이 3만 달러(약 3770만 원) 아래로 추락하자 정부 재정에 빨간불이 들어오기 시작했으며, 지난 5월 기준 엘살바도르 정부의 비트코인 평가 손실액은 3800만 달러(약 49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부켈레 대통령이 정부 차원에서 지금까지 구입한 비트코인은 총 2301개, 구입 가격은 총 1억 447만 달러(약 1348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하고 있음에도 부켈레 대통령은 연일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민들에게는 계속해서 사모으라며 추매를 독려하고 있는 상태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을 믿고 추매했던 시민들은 비트코인 가격이 끝없이 하락하자 결국 파산 위기에 놓이고 말았다. 국민만 그런 게 아니다. 사정이 이러니 국가 채무 불이행, 즉 디폴트 우려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을 거치면서 범죄와 폭력에 시달려왔던 엘살바도르 시민들에게 이런 혼란은 더욱 고통스럽기만 하다. 부켈레 정부가 약속했던 번영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2019년 2월, 대통령에 당선된 부켈레는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자신을 선택하면 모든 게 나아질 것이라고 국민들에게 약속했다. 미국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갱단을 퇴출하고, 마약 중독률을 낮추고, 무엇보다도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어 내는 한편, 부패와 타락한 정치를 근절하겠다고 했다.
이 말을 믿은 엘살바도르 국민의 절반 이상은 전직 광고 담당자이자 홍보 전문가였던 훈남 스타일의 그에게 표를 던졌다. 하지만 이는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중미의 작은 나라인 엘살바도르는 이미 2018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살인율을 기록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 유명했다. 그만큼 폭력이 만연해 있는 나라였다.
취임 초반에는 상황이 나아지는 듯했다. 폭력 사건은 줄어들었고 경제는 회복되는 기미를 보였다. 비트코인이 공식적인 결제 수단으로 도입되면서 엘살바도르는 한때 선구자로 인식되었다.
무엇보다 엘살바도르 국민들은 실로 오랜만에 죽음의 공포와 혼돈 이외의 문제에 대해 이렇게 범국민적으로 논의를 하게 된 점에 고무돼 있었다. 예년보다 많은 관광객들이 서핑을 즐기거나 치킨을 먹기 위해 엘살바도르를 찾아왔다. 도시는 다시 활기를 띠었고, 잠시였지만 40세의 젊은 대통령은 모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듯 보였다.
이런 희망은 오래 가지 못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부켈레 정부는 점차 잔혹한 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은 점점 독재자로 변해갔다.
군부대에 의해 시행된 통행금지 명령으로 국민들을 통제하는 데 익숙해진 정부는 코로나 유행이 잠잠해진 후에도 계속해서 국민들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이에 ‘포쿠스’는 “부켈레 대통령은 다른 나라의 독재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바이러스와의 싸움을 핑계로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듯하다”고 지적했다.
폭정에 항의하는 정치인과 법조인은 대통령의 명령에 따라 일자리를 잃은 반면 대통령의 권력을 보장하는 법률안들은 속속 통과됐다. 이미 오랜 기간 동안 내전, 군사 독재, 억압을 겪으면서 고통 받아왔던 사람들은 점점 불안해졌다. 위기를 느낀 시민들은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고, 비트코인 도입에도 반대했다.
부켈레 대통령에게는 새로운 적이 필요했다. 바이러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자 화살이 갱단들에 돌아갔다. ‘갱단과의 전쟁’을 선포한 부클레 정부는 갱단을 가리켜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비난하면서 국가의 절망과 빈곤의 책임을 전국에 흩어져 있는 갱단에 돌렸다. 갱단을 소탕하기 위한 무차별적인 학살과 국가 차원의 폭력이 난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다.
길거리에서는 경찰들이 갱단 조직원으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향해서 경고 없이 총을 발포하기 시작했으며, 갱단 조직원들은 조직원들대로 서로가 서로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결국 지난 3월 마지막 주 주말 이틀 동안에만 70명이 살해되는 참혹한 일이 벌어졌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목숨을 잃었으며 무고한 시민들도 희생됐다.
정부는 갱단들이 이러한 대량 학살을 저질렀다고 밝혔지만 일부 시민들은 이 말을 곧이 듣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정부가 간접적으로 살인을 저질렀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고, 무엇이 폭력 사태를 촉발했고, 누가 누구를 공격했는지 정확히 판단하기란 어렵다는 것이었다.
부켈레 대통령은 즉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수도인 산살바도르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고, 군과 경찰은 닥치는 대로 갱단을 추적해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문신을 한 사람은 누구나 범죄자로 간주돼 체포됐다. 실제 갱단이든 아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 결과 2주 만에 9000명 이상의 용의자들이 체포됐고 이들 가운데 일부는 거리에서 사살됐다.
“그는 독재자다”. 갱단의 조직원인 프란체스코라는 남성은 부켈레 대통령에 대해 이렇게 비난했다. 갱단 소탕 명목으로 24시간 비상사태가 선포돼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는 그는 “그래도 이렇게 집 안에 숨어있는 게 감옥에 가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고 말했다. 감옥에서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바닥에 앉아서 생활해야 하며, 짐승처럼 한데 몰아 넣어진 다음 두들겨 맞기 일쑤였다고 했다.
목까지 문신을 한 그는 과거 자랑스럽게 여겼던 갱단이라는 표시가 지금은 치명적인 낙인이 됐다며 씁쓸해 했다. “나쁜 짓을 했다”고 인정하는 그는 “이 나라에서 목숨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사람들은 50센트(약 600원)에 죽임을 당한다. 사람들을 죽이는 게 쉬운 이유다. 살인은 일상 생활의 일부가 됐다”고 털어 놓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엘살바도르 갱단들 사이에서 살인은 더이상 부도덕하거나 위협적인 행동이 아니다. 오히려 자랑스런 경력으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엘살바도르에서는 7만 명이 범죄 조직에 속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프란체스코의 말에 따르면, 엘살바도르의 어린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갱단의 유혹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낮은 교육 수준과 사방에서 손짓하는 유혹 때문이다.
일단 갱단에 합류하기로 작정하면 일정 기간 동안 모퉁이에 서서 경찰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는다. 그 다음 단계로 입회식을 치르고 최종적으로는 살인에 가담하게 된다. 이는 갱단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는 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렇게 성장하면서 어린이들은 점차 살인에 익숙해지는 악마로 변해간다.
누구나 반복해서 폭력에 노출되면 점차 무뎌지기 마련이다. 코로나19 대유행 초반 희생자들이 속출했던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사태 또한 빠르게 잊혀갔으며, 우크라이나 키이우의 폭격당한 집에서 촬영한 틱톡 비디오도 마찬가지였다. 뭐든지 반복되면 어느 순간 진부해진다.
산살바도르의 한 목사는 “부켈레는 이 나라가 가진 가장 중요한 자원을 소홀히 하고 있다. 그는 국민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래서 엘살바도르에는 희망이란 게 없다고도 했다. 과거 갱단으로 활동했던 이 목사는 엘살바도르에서는 내전이 반복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그는 평화롭게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지쳤다. 왜냐하면 엘살바도르에서는 여태껏 평화라는 것이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갱단들은 끊임없이 서로를 죽여왔고, 한 명이 죽을 때까지 고문을 일삼았다. 이것이 지금까지 엘살바도르가 작동해왔던 방식이다. 문제는 부켈레 대통령도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아무도 자신에게 반항할 수 없을 때까지 고문을 하고 있다.
'포쿠스'는 "그는 한때 모든 것을 더 좋게 만들고 싶었지만, 결국은 그 자신이 맞서 싸우려고 했던 존재가 되고 말았다. 바로 폭력배다"라고 지적했다. 요컨대 그 자신이 어느덧 폭력배가 되고 말았다는 의미다. 폭력은 또 다른 폭력을 낳을 뿐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