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거리·차에서 생활하며 불안에 떨어…‘디즈니의 부 흐르는 곳’ 달콤한 착각 속 몰려들어
그런데 이는 엄연히 디즈니 월드 안에서나 통하는 이야기다. 디즈니 월드에서 한 발짝만 벗어나도 세상 밖의 풍경은 꿈을 꾸기에는 너무나도 가혹하다. 오히려 악몽과도 같다. 현재 디즈니 월드 게이트 앞에서는 무려 수천 명의 집 없는 사람들이 모텔에서, 거리에서, 혹은 차 안에서 불안에 떨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왜 유독 이곳에는 이렇게 노숙인들이 많이 모여 살고 있는 걸까. 영국의 ‘메일온라인’이 취재한 디즈니 월드 앞의 진풍경을 소개해 본다.
디즈니 월드 인근에 위치한 ‘와와 주유소’의 주차장에는 낡은 2006년형 ‘링컨 타운카’ 한 대가 벌써 몇 달째 주차돼 있다. 차 안에는 온갖 종류의 소지품들과 옷걸이에 걸린 셔츠, 베개, 옷가지들, 비닐 가방들이 널브러져 있다.
마치 자그마한 방 한 칸을 떠오르게 하는 이 차의 주인은 스티브 럼프(50)다. 아니, 이 차가 곧 럼프의 집인 셈이다. 현재 차 안에서 먹고 자며 생활하고 있는 럼프는 “모텔보다 여기가 더 편하다”고 말한다. 전직 마라톤 선수이자 형사행정학 학위가 있는 그는 한때 로스쿨에서 1년 동안 공부하면서 법조인 꿈을 키웠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하지만 다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후 장애 판정을 받았고, 결국 모든 꿈을 포기하게 됐다.
지난해 여자친구와 함께 뉴햄프셔에서 플로리다로 이주해온 그는 일자리를 찾기 전에 먼저 ‘파라다이스 인’ 모텔에서 월세 1200달러(약 150만 원)를 내고 살았다. 하지만 ‘와와 주유소’에서 잠시 주유비를 지불하러 편의점 안으로 들어간 사이 차량 뒷좌석에 둔 신분증 서류와 현금 1600달러(약 200만 원)를 몽땅 도난당하고 말았다.
그때부터 차에서 생활하게 됐다고 말하는 럼프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모든 걸 잃었다”라며 체념하는 투로 말했다. 여자친구는 차 안에서 살고 싶지 않다면서 결국 노숙자 캠프로 떠났고, 그때부터 그는 홀로 차 안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럼프는 “모텔 방은 역겨웠다. 곳곳에는 바퀴벌레가 기어 다녔고, 침대에는 곰팡이가 피었으며, 매트리스에는 커다란 얼룩이 있었다. 심지어 문 아래에는 커다란 틈이 있어서 밤이 되면 도마뱀이나 거미를 비롯해 무엇이든 방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라며 치를 떨었다. 그러면서 “1200달러를 내고 살기엔 돈 낭비였다. 나는 내 차가 편하다. 그런 모텔보다 여기가 더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그는 장애 수당으로 생활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부족해 지금은 생계를 위해 과감한 방법을 하나 더 사용하고 있다. 다름 아닌 혈장을 팔아 생계비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럼프는 “네 번 기부하면 한 달에 800달러(약 100만 원)를 받는다. 앞으로도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라는 바람을 내비쳤다.
럼프처럼 디즈니 월드 인근에서 노숙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은 현재 수천 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은 후 집세를 내지 못해 노숙인이 된 지역 주민들뿐만 아니라 타지역에서 새로 이주해온 사람들도 많다.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오는 이유는 ‘디즈니의 부’가 넘쳐흐르는 지역에서라면 자신들의 삶이 더 나아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이 얻은 것이라곤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치솟는 집세뿐이었다. 그 결과 집을 구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디즈니 월드로 향하는 번화한 192번 국도를 따라 늘어선 알록달록하게 칠해진 허름한 모텔에서 생활하거나, 인근의 숲 속 야영지나 버스 정류장에서 노숙을 하고 있으며, 그것도 아니면 럼프처럼 차 안에서 살림을 차린 채 살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젊은 사람도 있고 늙은 사람도 있으며, 백인, 흑인, 라틴계 등 다양한 인종들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길거리로 내몰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면서 시름에 잠겨 있기도 하다.
모텔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텔에서 수개월 동안 장기 투숙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모텔들이 행여 고객들이 거주권을 주장하고 나서는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최대 2주 동안만 머물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게차 운전사인 드마코 존스(40)의 경우에도 이런 이유 때문에 2주마다 모텔을 옮겨 다니고 있다. 윈터파크에 있는 아파트를 잃은 뒤 갈 곳을 잃은 존스는 다섯 명의 어린 자녀들과 여자친구인 가르시아(32)와 함께 ‘파라다이스 인’ 모텔에 방을 하나 잡아 이사했다.
그는 “코로나로 인해 근무시간이 단축됐고, 결국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연체된 청구서들이 쌓여 갔는데 도무지 지불할 능력은 되지 않았다. 나는 가족들을 책임져야 했다. 나에게는 좋은 아파트, 세 개의 침실, 두 개의 욕실이 있었고 한 달에 월세로 1300달러(약 160만 원)를 지불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집을 떠나야 했다. 그게 두 달 전 일이다”라며 씁쓸해 했다.
무작정 우버를 타고 키시미로 이사온 그는 “이건 분명히 내가 살고 싶은 방식이 아니다. 내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인생도 아니다. 내 계획은 하루 빨리 모텔을 나가는 것이다. 이제 계기가 생겼으니 다시 아파트를 구해볼 생각이다”라며 다짐을 밝혔다.
데릭 스펜서와 브리애나 메이저 부부(23)의 경우에도 사정은 비슷하다. 키시미 시내에 있는 ‘하트 메모리얼 중앙도서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낡아빠진 파란색 시보레 임팔라가 현재 네 가족의 보금자리다. 지난 4월, 이 지역으로 이사를 온 부부는 과거 애리조나주 서프라이즈에 아파트를 한 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궁핍해진 생활 형편 때문에 결국 집을 잃고 말았다.
브리애나는 “우리는 새로운 시작을 하기 위해 키시미에 왔다. 아이들이 다니기 좋은 학교를 찾고, 좋은 직장을 구하려고 한다”고 말하면서 “아파트를 구하려고 노력했지만 아직은 안정적인 수입이 없기 때문에 아파트를 사는 일은 뒷전으로 밀렸다”라고 털어 놓았다. 지금 네 가족의 우선순위는 밥을 먹고, 몸을 씻고, 평범한 사람처럼 생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몸을 씻기 위해서는 인근 공공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으며, 도서관이 밤에 문을 닫으면 근처의 레이크프론트 공원에 있는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고 있다. 이 모두는 가능한 청결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다.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고 있으며, 밤에는 때때로 문을 열어둔 채 잠을 자기도 한다. 다만 이런 경우 중간에 한 번씩 일어나 혹시 위협을 가하는 사람은 없는지 주변을 살피곤 한다.
현재 스펜서는 조경사로 일하고 있으며, 메이저는 몇 주 내에 탬파에 있는 ‘얼티밋 메디컬 아카데미’에서 헬스케어 온라인 과정을 졸업할 예정이다. 스펜서는 “차 안에서 생활하는 건 정말 힘들다. 특히 남자인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나만 바라보고 있는 아이들이 있다. 매일 힘들지만 하루하루가 모두 다른 날이기 때문에 간신히 힘을 내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해군 참전용사인 클리퍼드 몰리(64)와 아내 제니(53)는 한때 방 두 개짜리 집을 소유했지만, 길거리로 내몰린 후에는 한동안 올랜도 국제공항에서 거주했다. 하지만 부부에게는 공항 생활이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제니가 뇌졸중을 앓기 시작하자 따뜻한 곳에서 지낼 필요가 있었던 부부는 지난 4월, 오하이오주 톨레도에서 올랜도 지역으로 이사를 왔다.
도착 후 처음 몇 주 동안 머물 숙소를 예약해 두었지만 기차가 지연돼 며칠 늦게 도착하면서 예약이 취소돼 버렸고, 결국 마땅한 방을 구할 수 없게 되고 말았다. 보증금 700달러(약 87만 원)도 몽땅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클리퍼드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일주일 동안 호텔에서 묵었다. 호텔비로 600달러(약 74만 원)를 지불하고 나자 남은 돈이 거의 없었다. 결국 우리는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여행객처럼 보이도록 일부러 1층에 있는 렌터카 카운터 근처에 자리를 잡았지만, 이틀 후 쫓겨났다”며 아쉬워했다.
몇 번을 쫓겨났다 다시 들어가길 반복하면서 열흘 동안 공항에서 살았던 부부는 결국 키시미 시내로 향했고, 버스 정류장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는 끔찍한 경험이었다. 제니는 “안전 문제가 가장 큰 걱정이었다. 너무 무서웠다. 길거리에서 사는 건 정말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엉엉 울었다. 노숙자가 되어 버스 정류장에서 살게 된 현실에 절망했다. 우린 절대 이 생활을 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다”고 했다.
노숙 생활에 지친 부부는 결국 오세올라 기독교 사역 센터의 소개로 ‘키시미 포인치아나 노숙자 봉사단’을 알게 됐다. 이 봉사단을 운영하는 바비 오스트리아(61)는 “어느 누구도 그 나이대의 군인들, 특히 퇴역 군인들을 길거리에서 죽어가게 내버려둬선 안 된다”라고 말하면서 “클리퍼드는 지금 이곳에서 노숙자 신세에 직면하고 있는 잊힌 미국인들의 완벽한 예다”라고 강조했다.
오스트리아는 지난 18년 동안 이 지역의 노숙자들을 돕기 위해 헌신해 왔다. 그는 “지금 여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숲 속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모텔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모텔 가격이 너무 비싸져서 아마 일주일 정도 머물다가 다시 차나 도로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오스트리아는 “코로나 대유행 기간 동안 사람들은 임대료를 지불할 능력이 없어 월세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신용등급이 급격히 떨어졌다”고 덧붙였다. 집에서 쫓겨난 후 다시 살 집을 구하기란 너무 어려운 게 현실이다. 까다로운 조건들 때문이다. 우선 임대료의 세 배를 벌 만큼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범죄 경력이 없어야 하며, 파산한 이력도 없어야 한다. 채권추심 중이어도 입주가 허용되지 않는다. 더 놀라운 점은 디즈니 월드 직원들 가운데서도 모텔 방에서 살면서 힘겨운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다.
오스트리아는 3년 전부터 키시미 시내에 있는 노숙자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는 방이 13개가 있으며, 모든 가구가 완비되어 있고, 요리를 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다. 시설 운영을 돕고 있는 앨버트 패러모어(64)는 “나는 인생의 대부분을 노숙자로 지냈다. 하지만 오스트리아가 시설을 연 이후로 이곳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해 이곳에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시작에 다름 아니다”라며 고마운 마음을 표시했다.
특히 오스트리아는 여성 노숙인들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여성들을 길거리에서 구조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성들의 경우에는 노숙을 하다가 강간을 당하거나, 구타를 당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보복이 두려워서 고소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라며 안타까워했다.
오스트리아는 디즈니 월드 인근 지역이 노숙인들 사이에서 이렇게 인기 있는(?) 또 한 가지 이유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즉시 알아채지 못하겠지만, 사실 이곳에는 관광객들 사이에서 관광객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노숙인들이 많이 있다. 주변을 그저 어슬렁거리면서 시간을 보내거나,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어도 전혀 이상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그들은 잠시나마 자신이 평범한 사람이 됐다고 느끼게 된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