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상품 평가 속 위해성 논란에 영업활동 주춤, 규제와 경쟁 심화 이중고…식약처 “절차에 따를 뿐”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비자시민모임·소비자권익포럼·미래소비자행동과 최연숙·김성주·최혜영 국회의원 등이 7일 개최를 준비했던 ‘1, 2, 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의 위해성 논란’이 모다모다 측의 반발에 결국 무산됐다.
모다모다 관계자는 “THB가 유해하다고 주장하는 패널들만 섭외한 데다 발제자들이나 연설자 중 몇몇은 염색샴푸 시장에서 경쟁하는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들이다. 연휴 빼고 하루 전날 저희에게 토론자를 섭외하라고 연락이 왔는데 기말고사 기간에 출강하시는 교수님들을 섭외해 발표 자료까지 부랴부랴 준비시키는 게 가능한 일이냐”고 반발했다. 모다모다 상품을 시장에서 내쫓으려는 여론 작업이라고 본 셈이다.
모다모다는 2021년 8월 국내에 머리카락 색을 갈색으로 바꿔주는 ‘모다모다 프로체인지 블랙샴푸’를 내놓았다. 카이스트 이해신 석좌교수가 사과나 바나나 등 과일에 있는 페놀성 화합물이 산소와 만나면 갈색으로 변하는 원리에 착안해 만든 제품으로 ‘자연 갈변’을 일으키는 폴리페놀 성분을 사용해 인기를 끌었다. 출시 이후 지금까지 320만 병 이상의 생산량을 돌파했으며 론칭 이후 모든 홈쇼핑 방송에서 전회 매진됐을 정도로 호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2021년 말 식약처에서 해당 샴푸의 위해성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산화제 대신 촉매제로 쓰인 1,2,4-트리하이드록시벤젠(THB)에 잠재적인 유전독성(DNA나 염색체에 직접적으로 손상을 주는 성질) 성분이 있다는 것. 유럽에서는 THB 성분 사용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 식약처 제동에 올해 1분기 모다모다 매출은 직격탄을 맞았다. 미국에서는 미주 한인 사회를 중심으로 한국 정부의 규제 사실이 퍼져나가며 매출이 꺾였고 국내에서는 소비자 우려와 안전성 논란을 의식한 모다모다 스스로 영업활동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는 홈쇼핑 횟수도 '0회'를 기록했다.
식약처는 올해 1월 THB를 화장품 사용금지 원료로 지정할 방침이었으나 3월 25일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가 별도의 검증이 필요하다며 제동을 걸었다. 규개위 녹취록에 따르면 규개위 위원 대부분이 외국 논문만 보고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고, 기존 법 분류체계에 들어가지 않는 신기술에 유연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는 만큼 위해성을 재검증할 것을 권고했다. 결국 4월 22일 식약처가 1년의 재검토 기간을 갖고 위해성 검증 절차에 돌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모다모다도 영업활동을 정상화했다.
그러나 모다모다가 영업에 차질을 겪던 기간 대기업에서 염색샴푸 시장에 치고 들어왔다. 아모레퍼시픽은 올 4월 새치를 까맣게 물들여주는 ‘려 더블이펙터 블랙샴푸’와 ‘려 더블이펙터 블랙 트리트먼트’를 출시했다. 출시 닷새 만에 초도 물량이 품절되고 SSG닷컴, G마켓, 이마트에서 배송 품절을 비롯해 뷰티·헤어 카테고리 1위를 달성하기도 했다. LG생활건강도 지난 5월 염색 기능을 지닌 한방 헤어 브랜드 ‘리엔 물들임 새치커버 샴푸’와 ‘리엔 물들임 새치커버 트리트먼트’를 내놓았다. 출시 직후부터 이마트와 홈플러스, 롯데마트를 포함한 오프라인 매장에서 헤어 카테고리 전체 판매 1위를 점하며 연일 완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LG생활건강 내부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아모레나 저희나 염색샴푸는 이미 어느 정도 개발된 제품이었던 걸로 알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검토 단계에 있던 건데 만들어놓고 관심 없다가 모다모다가 잘 팔리니까 뒤늦게 부랴부랴 준비해서 출시한 것”이라고 귀띔했다. 화장품업계의 한 관계자는 “헬스케어 스타트업 셀리턴이 론칭한 LED마스크가 식약처 규제로 주춤한 사이에 다른 기업들이 시장 점유율을 높였던 것처럼 중소기업에서 만든 혁신상품이 규제 걸려 헤매는 동안 대기업에서 빠르게 보완해서 치고 들어오는 경우는 흔하다”라고 말했다.
모다모다 측은 식약처 규제의 적절성을 지적하고 있다. THB는 EU에서는 유해 성분으로 분류되지만 미국 등 그 외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 모다모다 관계자는 “전세계 240개국 중 200여 개 나라가 전혀 문제 삼지 않고 있는 데다 원래 유럽에서 유전독성 문제로 전면 금지한 성분들 대부분은 우리나라에서 1~2% 정도의 한도를 정해 허용해주는데 THB만 과거와 달리 유럽 기준을 그대로 적용해 전면금지를 시켰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식약처 의약품통합정보시스템에 따르면 THB와 마찬가지로 유전독성이 있는 성분으로 알려진 o-아미노페놀, 2-아미노-5-니트로페놀, m-페닐렌디아민 등은 EU와 브라질, 아르헨티나, 아세안을 포함해 중국과 캐나다 등지에서 사용이 금지돼 있지만 국내에서는 1~3%의 농도로 배합기준이 정해져 있어 제한적으로 사용이 가능하다. 시중에서 파는 일부 염모성 화장품에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반면 THB는 EU와 아세안에서만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식약처에서 유독 강경하게 전면금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식약처는 “THB가 위해성 우려가 있기 때문에 절차대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o-아미노페놀을 비롯한 다른 성분들도 화장품법 8조에 따라 올해 2월부터 정기위해평가를 진행 중이다. 조만간 검토결과가 도출되면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대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에는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U는 2021년 한국산 라면에서 검출된 유해물질 2-클로로에탄올(2-CE) 성분이 기준치의 100배를 초과한다는 이유로 수입을 금지했다. 2-CE 검출량이 과도해 프랑스에서 판매하던 오뚜기의 ‘진라면 매운맛’이 전량 리콜 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농심과 팔도에서 만든 EU 수출용 라면도 마찬가지로 리콜 조치를 당했다. THB 논란처럼 2-CE 역시 국내 규정이 없기 때문에 식약처에서 새로 기준을 만들어야 했다. 문제는 국내 기준인 30ppm이 유럽 기준인 0.05ppm에 비해 600배 높게 설정됐다는 것이다. 당시 식약처는 "라면에서 검출되는 용량은 인체에 해를 줄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한다"고 발표했다.
다만 이와 관련해 식약처는 “유럽은 2-CE가 발암물질인 에틸렌옥사이드(EO) 사용에 따라 생성되는 물질로 보고 식품에 잔류된 두 성분의 검출량을 함께 고려하지만 우리나라는 2-CE가 EO와 무관하게 자연 생성될 수도 있는 물질이라고 판단하고 있어서 두 성분에 각각의 기준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EO 자체로는 캐나다와 동일한 방식으로 기준을 정한 셈이니 이치는 틀리지 않지만, 유럽에서 수입 금지 조치를 당했는데 굳이 북미 기준을 준용한 점은 의아해할 만하다”며 “다만 국내 제조 공정에 EO가 들어가지 않는다면 식약처가 감안해서 기준을 여유 있게 정했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
1년의 검증기간을 마친 후에도 식약처가 판매금지 처분을 내릴 경우 모다모다 측은 THB 규제가 없는 나라 중 염색샴푸 시장 규모가 가장 큰 미국으로 본사를 옮기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기에는 현재 판매 상품이 샴푸 라인 하나밖에 없어 우려스럽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이와 관련해 모다모다 측은 7월 초 곧바로 17종의 후속 제품을 공개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기존 제품이 과일에서 추출한 폴리페놀이었다면 후속 제품에는 해조류에서 폴리페놀을 추출한 샴푸나 탈색모의 채도를 중화해주는 보색샴푸 등이 포함된다.
모다모다 관계자는 “혁신기술이 우리나라에서 나왔는데 당연히 한국을 본거지로 상업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지만 워낙 저희한테 규제가 까다롭고 판매 금지 조치까지 당하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일단은 저희가 자체적으로 의약품 정도 수준의 까다로운 임상실험을 진행 중인데 현재까지 모든 실험결과에서 유전독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향후 식약처와의 검증에서도 긍정적인 결론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