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 대통령 부인 예방·중진 의원 부인들과 오찬, 비선 논란까지…‘차라리 제2부속실 만들라’
#조용한 내조? 광폭행보!
6월 16일 미국 금리가 폭등세를 보인 급박한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새 정부의 경제정책방향 보고회에 참석했지만, 국내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부인 김건희 여사 관련 기사가 쏟아졌다. 김건희 여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인 권양숙 여사를 예방한 데 이어, 이날은 고 전두환 씨 부인 이순자 씨를 찾아갔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의 경남 양산 평산마을 사저 예방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 여사가 국민의힘 중진 의원 부인들과 오찬 모임을 가진 사실도 뒤늦게 전해졌다. 대통령실은 6월 16일 “김건희 여사가 6월 14일 국민의힘 4선 이상 중진 의원들의 부인 11명과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오찬을 가졌다”고 밝혔다.
이 모임은 권성동 원내대표 부인이 “대선 때 많은 의원이 고생했는데 먼저 중진 의원들 부인들을 초청해서 인사하는 자리를 갖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해 성사됐다. 김 여사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맙다. 사모님들 역할이 큰데 내가 당연히 그런 자리를 만들어서 감사 인사를 하고 싶다”고 화답하면서 지방선거 직후인 약 2주 전 약속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 모임과 관련해 기자들과 만나 “중진 의원 부인들이 선거 때 고생도 많이 하시고 했으니 감사도 표시하고 격려도 표시하면서 한 번 뵙자(고 한 것)”이라며 “(김 여사가) 굉장히 예의를 갖춰서 얘기했다. 중진 의원 부인들이 나이가 많으니 ‘사모님’했다가 ‘언니들’했다가, 참 좋았고 (김 여사가) 솔직하고 소탈하다 하더라”라고 전했다.
이에 따라 ‘사모님·언니들’이란 제목을 단 기사들이 이날 하루 종일 쏟아졌고, 김 여사는 뉴스의 중심이 됐다. 김 여사는 중진 의원 부인들이 봉사모임을 만들어주면 본인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의원 부인들에게 했던 ‘적극 참여’ 약속처럼 김 여사의 최근 활동은 대선 과정 강조했던 ‘조용한 내조’를 완전히 탈피한 모습이다. 김 여사의 공개 활동은 윤 대통령 취임 직후부터 본격화됐다. 지난 5월 20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깜짝 등장해 인사를 한 데 이어 답례선물을 직접 준비했고, 청와대 개방 기념 KBS1 ‘열린음악회’ 때도 등장해 시민들과 함께 관람했다.
김 여사는 6월 6일 현충일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추념식에 참석, 현충탑에 직접 분향한 데 이어 추념식 내내 윤 대통령 옆자리에서 함께했다. 김 여사가 비에 젖은 윤 대통령 옷을 손수건으로 직접 닦아주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기도 했다. 국가 기념일 행사에 윤 대통령 내외가 부부 동반으로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서 김 여사는 자신이 운영해온 전시기획사 코바나컨텐츠 홈페이지를 폐쇄했고, 5월 31일에는 13년 만에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김 여사는 2009년 코바나컨텐츠 설립과 함께 사내이사 겸 대표에 취임해 3년 임기로 네 차례 연임했다. 잔여 임기는 2024년 9월까지였다. 대표직 사임은 퍼스트레이디로서의 활동을 본격 시작할 수 있는 준비를 완전히 마친 것으로 해석됐다.
#비선 논란 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의힘이 가장 싫어하는 단어가 ‘비선’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건희 여사의 권양숙 여사 방문 과정에서 비선 논란이 불거졌다.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방문해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는 과정에서 김건희 여사 뒤에 선 여성이 누구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해당 여성이 무속인이라는 설도 나왔다.
대통령실은 “여성은 충남대 무용학과 김 아무개 교수”라며 “김 교수는 김건희 여사와 ‘십년지기’로 무속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명했다. 그러자 대통령 부인의 공적 행보에 지인을 대동하는 것이 맞느냐는 지적이 나왔다.
이 여성은 김 여사의 첫 공개 행보였던 5월 3일 단양 구인사에도 따라간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그는 코바나컨텐츠 전무를 맡아 마케팅 일을 하다가 김 여사와 함께 사임했으며 윤 대통령 선대위에서 생활문화예술지원본부장을, 인수위에서는 사회복지문화분과위 자문위원을 지낸 것이 추가로 드러났다.
이후 대통령실의 대응이 논란을 확산시켰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공식 일정에 왜 지인이 동행했느냐는 질문에 “처음부터 비공개 행사였다”는 취지로 말했다. 봉하마을 방문은 언론에 사전 공지된 공식 행사였고 사진까지 모두 공개됐는데, 궁색한 변명이라는 지적이다.
특히 김 교수 외에 김 여사의 봉하마을 일정에 동행한 대통령실 직원 3명 중 2명이 김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의 직원이었다는 점도 또 다른 논란이 됐다. 공직 채용을 사적 인연과 연계시켰다는 비판을 낳은 것이다.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이번 논란을 박근혜 정부 당시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 지으며 총공세에 나섰다. 신정훈 민주당 의원은 6월 16일 국회 정책조정회의에서 “비선이 공무에 개입하면 국정은 사유화되고 혼란에 빠진다. 국민들은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최순실이라는 사적관계를 공무에 개입시킨 폐해에 대해 알고 있다”고 질타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심복’으로 알려진 윤건영 의원도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김 여사의 봉하마을 방문 자체는 좋은 일이지만 지인을 데려간 건 기본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라며 “대통령이 미국에 갈 때 영어 잘하는 지인을 1호기(대통령 전용 비행기)에 태우는 것과 똑같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김 여사의 활동을 둘러싼 비선 논란은 그 전부터 감지됐다. 5월 2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 잔디광장에서 윤 대통령과 김 여사가 반려동물과 함께 휴식을 취하는 사진이 김 여사의 팬클럽 등을 통해 최초 공개되면서 대통령실의 사진 보안 문제가 불거졌다.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실은 사진 촬영 여부를 모르고 있다가, 팬클럽에 해당 사진이 공개된 이후에야 관련 사안을 인지했다.
6월 13일에는 김 여사가 ‘동물 사랑’을 주제로 진행한 최초의 언론 인터뷰가 공개됐다. 김 여사는 서울신문 인터뷰에서 “동물 존중에 대한 사명이 있다”며 ‘동물권’을 화두로 던진 뒤 “경제 규모가 있는 나라 중 개를 먹는 곳은 우리나라와 중국뿐”이라며 개식용에 반대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 인터뷰가 공개되자 김 여사가 너무 앞서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고, 2030세대를 중심으로 "지나친 권리침해"라는 지적도 나왔다.
#2부속실 설치해야 하나
국민의힘은 일단 김 여사에 대한 민주당의 공세에 차단막을 치는 데 주력하면서도 ‘여사 리스크’를 줄일 묘안을 찾는 데 골몰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대선 공약 파기 비판을 감수하면서 영부인을 보좌할 제2부속실을 설치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내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하태경 의원은 KBS 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부속실을 안 두니 팬클럽이나 김 여사 개인회사 직원들이 부속실을 대체하는 일이 벌어진다”며 “차라리 깔끔하게 사과하고 양해를 구하고 제2부속실을 만드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권성동 원내대표는 6월 16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민주당 지지자들이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꼬투리를 안 잡는 것이 없다”며 “현직 대통령 부인이 전직 대통령 부인을 예방하고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는 장려할 만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어 코바나컨텐츠 출신 인사의 대통령실 ‘사적 채용’ 논란에 대해서는 “민주당도 그렇게 하고 문재인 대통령도 그렇게 했고 그걸 갖고 비난하는 것은 전혀 정당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한 권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제2부속실을 부활하지 않더라도 대통령 부인의 공적 활동을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다. 공약 파기이기 때문에 가급적 하지 않는 게 맞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에 제2부속실 설치 논의 결론이 이른 시일 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