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인상 없이는 적자 탈피 힘들어…장기적으로 독립적인 산정 위원회 마련 의견도
지난 6월 21일로 예정됐던 올 3분기 전기요금 인상안 발표가 이번에도 연기됐다. 한전은 정책당국에 kwh(킬로와트시)당 3원 인상을 요청했지만 정부는 다각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며 결정을 보류한 상황이다. 정부는 올해 2분기에도 연료비 조정단가를 돌연 연기했다가 인상 없이 동결하겠다고 발표했다. 고유가에 따른 물가상승이 서민경제에 부담을 주는 상황에서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안을 두고 숙고하는 모양새다.
전기요금 동결은 정부 입장에서도 부담이 되는 결정이다. 한전의 재무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한전은 연료비와 전력구입비 증가 탓에 올해 1분기에만 약 7조 8000억 원의 영업적자를 기록한 상황이다.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8조 3525억 원 감소했다.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LNG와 석탄 등 연료가격이 크게 상승한 데다 신재생에너지의무공급(RPS) 의무이행비율이 9%에서 12.5%까지 늘어난 탓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LNG가격과 유연탄 가격은 각각 142%와 191% 증가했다.
한전은 지난 5월 13일 1분기 경영실적 발표와 함께 비상경영체제를 확대하며 자구책을 발표했다. 한전은 보유 중인 출자 지분 중 최소한을 남기고 매각을 추진하고 부동산 매각과 해외 사업 구조조정 등을 통해 6조 원가량의 수익을 올려 재무를 개선할 방침이다. 6월 20일에는 정부 권고를 받아 경영악화에 따른 책임을 지고 한전과 9개 발전 자회사의 기관장·임원진 전원이 성과급을 자율 반납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전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적자 구조 탈피는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가 만지작거리는 카드는 도매시장 전력 가격이다. 전기요금인 소매가격을 인상하는 대신 발전사업자들이 한전에 판매하는 전기의 도매가격 상승을 제한해 한전의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취지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5월 24일 SMP(전력도매시장가격) 긴급정산상한가격 도입을 위해 행정 예고를 실시했다. 6월 13일까지 관계자들 의견을 수렴한 후 6월 17일 산업부 규제개혁위원회에서 해당 안건을 심의했다.
민간발전협회 측은 “당시 반대 의견도 많았고 위원들 사이에 상당한 격론이 벌어졌는데 산업부 의지가 완강한 탓에 결국 원안대로 통과됐다. 지금은 산업부 손을 떠나 국무조정실 규제개혁위원회로 넘어간 상황이고 아직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말했다.
SMP 상한제가 실시된다면 전기요금을 조금씩 올리는 것과 비교할 때 훨씬 이득이 크다. 황성현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상한 kWh당 133원을 적용할 경우 1분기 기준 kWh당 30원 이상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고 추정했다. 연료비 연동제 상한이 3원에 묶여 있는 것과 비교하면 안정적으로 한전의 손실을 보전해줄 수 있게 된다.
발전사업자들이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발전업계 한 관계자는 “판매 가격 연료비 연동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서 SMP 가격을 묶어버린다는 건 결국 한전의 적자를 민간사에게 전가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공기업은 정부가 보증해준다지만 민간 발전사업자들의 입는 손해는 누가 보전해주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발전사업자 측을 대리하는 김앤장 법률사무소 역시 정부가 추진하는 SMP 긴급정산상한가격제가 “영업의 자유와 재산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발전사업자들이 실제 연료비를 회수할 수 없게 됨에도 손실 보전 규정이 명문화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SMP 상한제만으로는 한전의 적자를 메우기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결국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문경원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SMP 상한제와 요금 인상을 결합해야 2~4분기 한전의 영업적자가 3조~5조 원 수준으로 완화할 수 있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전기 생산에 쓰이는 연료비 변동분이 전기요금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아 적자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한전의 전기요금은 2013년 이후 8년째 동결되다가 지난해 4분기에 연료비 변동분에 따라 kwh당 3원 인상된 것이 전부다. 그나마도 1분기에 인하한 가격을 되돌린 셈이라 2021년 1월에 도입된 연료비 연동제로 인해 전기 요금이 실질적으로 오른 적은 아직 없다. 연료비 상승분을 전기요금에 지속적으로 반영하는 일본,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등 해외 주요국들이 2021년 이후 현재까지 전기요금을 30~50%가량 인상한 것과는 대비된다.
이와 관련해 한전은 요금 산정 구조 자체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한전은 지난 6월 16일 정부에 기준연료비 조정과 연료비 조정폭 확대 등 요금 산정 제도 개편을 동시에 요청했다. 기준연료비는 직전 1년치 평균 연료비로 요금 조정의 기준이 되는 가격이다. 정부가 매년 기준연료비를 정하면 여기에 더해 연료비 조정단가와 기후환경요금 등이 산정돼 전기요금이 결정된다. 문제는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해 초부터 급등하면서 지난해를 기준으로 책정된 기준연료비가 시세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료비 조정단가도 분기당 3원, 연간 5원으로 인상폭이 제한돼 있다. 이 체계 자체를 개편하지 못하면 적자 탈출이 요원한 상황이다.
이와 관련,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6월 20일 한전이 전기 요금을 올리려면 공기업으로서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해 적자를 줄이는 것이 먼저라고 지적했다. 한전 한 관계자는 “일단 지금 단계에서는 추가적으로 더 비용을 절감할 만한 부분이 있는지 검토 중인 상태다”라고 말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물가 때문에 고민이 많겠지만 사실 전기요금 3~5원 올려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므로 조금이라도 전기요금을 인상해 수요자들이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위기 상황에 절약 유인을 주는 게 맞다”며 “정치적 부담 때문에 정부는 항상 전기요금을 낮추려고 하므로 장기적으로는 독립적인 전기요금 심의위원회 등을 만들어서 합리적으로 요금을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결국엔 정책당국이 가격 인상 압력을 버티지 못하고 전기요금을 kwh당 3원 이상 인상하리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에너지정책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이번에 성과급도 반납하라 하고 자구책을 더 가져오라고 요구하는 거 보면 정부가 kwh당 3원 이상으로 전기요금을 올려줄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국민 정서가 싸늘하기 때문에 한전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차원에서 정책당국이 퍼포먼스를 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앞서의 한전 관계자는 “관계 부처 협의가 더 필요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는 통보를 받았고, 우선은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