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금 올리고 부동산 굴리고…사기업식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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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1월 2일 전남 나주의 한전 신사옥 착공식에 참석한 김중겸 한전 사장(왼쪽)과 김황식 국무총리. 연합뉴스 | ||
지난 5월 김중겸 사장이 현대건설 사장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을 당시 재계 관계자 중에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사의를 밝히기 불과 두 달 전 현대건설 정기주주총회에서 김 사장은 현대건설이 현대차그룹에 매각됐음에도 또 다시 대표이사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대표이사로서 새로운 임기를 시작한 지 두 달 남짓밖에 되지 않은 시기에 특별한 이유도 없이 불쑥 사표를 던졌으니 이런저런 말이 나오는 건 당연했다. 그중 하나가 김중겸 사장이 김쌍수 사장의 뒤를 이어 한전의 새로운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한전 사장을 희망하는 사람이 10여 명에 달했다. 하지만 김중겸 사장이 경북 상주 출신에다 고려대를 졸업했다는 이력이 보태져 강력한 후보로 부상했다. 김중겸 사장의 이 같은 이력은 한편으로는 오히려 ‘낙하산’, ‘고소영 인사’라는 말이 나오면서 한나라당 내에서마저 비토세력을 키우는 데 영향을 줬다. 그러나 김 사장은 예상대로 한전 사장에 내정됐다.
내정 후 취임하기 전에도 김 사장은 큰일을 겪었다. 지난 9월 15일 발생한 정전사태가 그것. 김 사장 입장에서는 당시 내정자 신분이었다는 것이 다행스러우리만치 엄청난 사태였다. 한전 사장으로 취임하기까지 김중겸 사장에게는 걸림돌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자연스레 돌파구가 마련됐다. 어찌 보면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볼 수 있다.
김중겸 사장이 한전의 후임 사장으로 내정됐다는 사실에 반발이 거셀 즈음 김쌍수 전 사장이 임기를 3일 남겨놓고 느닷없이 사의를 표명했다. 전기요금 인상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지 않아 눈덩이 적자를 방관했다며 소액주주들에게 소송당한 것이 억울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지난 9월 15일 정전사태도 김중겸 사장에게는 도리어 득이 되는 일이었다. 사장으로 취임하기 전이어서 그나마 책임을 면할 수 있었던 데다 김쌍수 전 사장의 사퇴 이유와 맞물리면서 자연스레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당위성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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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요금은 지난 8월 이미 4.9% 인상된 바 있다. 정부에서도 전기요금 추가 인상에 난색을 표명했다. 최중경 전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9월 14일 “연내 전기요금을 또 인상하는 것은 어렵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이유로 한전이 정부와 협의 없이 이사회 의결을 강행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와 한전의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연내 추가 인상하기 어렵다’고 밝힌 정부 입장을 고려해 한전이 주도해서 여론을 형성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 비준이 공교롭게도 김중겸 사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미 FTA 협정문 16조 ‘지정 독점’ 조항에는 ‘전기 수도 가스 철도 등 공공요금은 상업적 판단에 따라 책정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는 다시 말해 한전이 작심하고 전기요금을 인상하려 하면 적어도 명분상으로는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때마침 김쌍수 전 사장도 한전 이사회 의결에 대해 “정부가 전기요금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면 안된다”며 힘을 실어줬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기억할 것이 있다. 김중겸 사장이 직접 “국내사업은 철저히 공익성, 해외사업은 수익성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지난 10월 31일 월례조회에서 한 발언이다. 풀어 말하면 국내에는 전기를 싸게 공급하되 수익성 높은 해외사업을 활발히 펼쳐 국내 사업에서 발생하는 재무구조상 부족분을 메우자는 것이다.
공기업 특성을 고려한다면 전적으로 옳은 말이다. 전기요금 인상에 연연하지 말고 현대건설 재직 시 경험을 살려 원전과 플랜트 등 한전의 해외사업에 박차를 가해 수익구조를 개선하라는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그런 김 사장이 전기요금 인상에 나선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김중겸 사장은 또 커다란 키를 하나 더 쥐고 있다. 한전 본사가 위치한 서울 삼성동 부지 개발이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계획에 따라 한전은 2013년 전남 나주로 내려가야 한다. 이미 신사옥 착공식까지 치렀다. 한전이 내려가고 남을 삼성동 부지는 ‘강남의 마지막 남은 금싸리기’로 불린다. 지난 10월 7일 삼성생명이 한전 본사 근처에 있는 한국감정원 사옥을 2328억 원에 매입한 것도 개발 기대감을 한껏 높이고 있다.
김중겸 사장은 삼성동 부지 개발에 대해 매각하지 않고 직접 개발할 뜻을 밝혔다. 단순히 매각하면 양도소득세가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우리가 투자해 수익을 내면 재무건전성이 높아지는 만큼 정부에 투자를 건의할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사장까지 지낸 오랜 건설사 경력을 활용한다면 금싸라기 땅에 대한 개발 수익을 짭짤하게 챙길 듯하다.
한전은 지난 11월 2일 전남 나주에서 신사옥 착공식을 했다. 이와 관련해 재미있는 일 하나. 한전의 신사옥 시공사가 많은 사람의 예상을 깨고 현대건설이 아닌 대우건설컨소시엄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기술제안 점수에서는 현대건설이 우위였지만 가격 면에서 대우건설이 유리했다는 전언이다. 이를 놓고도 일각에서는 ‘친정’ 현대건설에 대한 김 사장의 감정이 실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